빌헬름 분트와 잊혀진 심리학
오늘은 심리학의 야사(野史) 하나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이 이야기는 심리학을 웬만큼 공부했다는 사람도 잘 모르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문화심리학의 기원과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습니다.
그럼 이야기 속으로~
심리학자들은 현대 심리학의 시작을 1879년으로 봅니다. 그 해는 바로 빌헬름 분트(Wilhelm Wundt, 1832-1920)가 독일의 라이프치히(Leipzig) 대학에 '심리학 실험실'을 만든 해입니다.
물론 1879년 이전에도 '인간의 마음'이라는 주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꾸준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몸과 마음을 서로 분리된 것으로 본 데카르트의 이원론(二原論)도 그렇고 조선 성리학의 심학(心學)도 마음의 생성과 역할에 대한 이론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론에 대한 논쟁이 대표적이지요.
그러나 그러한 접근들 대신 1879년의 '그 사건'을 심리학이 시작된 해로 삼는다는 것은 '심리학 실험실'의 탄생이 현대 심리학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중요한 현대심리학의 정체성은 바로 '과학적 방법론'입니다.
1879년 이전까지, 인간 존재와 인간의 마음에 대한 물음에 답을 제공했던 것은 철학(Philosophy)이었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던 당대의 학자들은 사유, 즉 생각을 주된 방법론으로 삼는 철학에 미진함을 느끼고 과학적 방법으로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고자 했습니다. 분트의 심리학 실험실은 그런 분위기에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때를 기점으로 심리학은 철학에서 분리됩니다. 주제는 공유하되 방법론적 관점을 달리한 것이지요.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면 '철학박사(ph.D)' 학위를 주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래서 초기 심리학자들 중에는 원래 철학자였던 분들이 많습니다. 미국심리학의 기틀을 세운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도 그중 한 분이지요.
그렇게 라이프치히 대학의 철학교수였던 분트의 심리학 실험실에서는 정신과정의 속도, 지각할 수 있는 자극의 크기 등 인간의 마음 중 측정가능한 것들을 대상으로 지각, 주의, 사고 등의 주제를 연구했습니다. 이러한 주제들은 현재도 도처의 인지 및 지각심리학 실험실들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심리학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분트가 실험심리학 외에도 또 하나의 심리학을 중요하게 언급했다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웬만한 심리학개론서에서도 찾기 힘든 그 이름은 바로 민족심리학(Völkerpsychologie)입니다.
민족심리학은 어떤 민족의 정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의 언어, 풍습, 민속, 전설, 신화 등을 해석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심리학입니다. 분트는 인간에게는 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할 수 있는 감각이나 지각 외에도, 기호나 상징을 만들고 사용하는 고등정신기능이 있기 때문에 이를 연구하는 심리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분트는 처음부터 심리학은 자연과학적 실험심리학과 사회문화적 심리학,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주장했었습니다. 이 두 가지 심리학이 같이 있어야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분트의 생각이었죠. 그러나 분트의 이러한 생각은 이후 심리학이 과학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간과되어 왔습니다.
심리학이 현재의 모습으로 발달하게 된 것은 미국 심리학의 영향이 큽니다.
분트의 심리학 실험실에는 여러 나라의 유학생들도 있었는데요. 그 중에 미국에서 온 티치너(Titchener)란 양반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미국에 분트의 실험심리학적 전통을 옮겨오게 됩니다.
영국에서 독립한 뒤, 신생국으로서의 모습을 갖춰가던 미국은 추상적이고 검증하기 곤란한 정신역동이론(정신분석학) 같은 심리학 이론보다는 눈에 확실히 보이고 앞뒤가 딱딱 떨어지는 실험심리학을 아무래도 더 선호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시기 미국철학은 '실용주의'로 요약되니까요.
그러나 이 과정에서 민족심리학은 완전히 잊혀지고 맙니다. 자타공인 분트의 후계자라고 일컬어지던 티치너는 민족심리학을 "분트가 노년에 취미삼아 한 일"로 깎아내려 버리지요. 분트의 노년 20년 동안의 유일한 주제였는데도 말입니다. 이후, 미국에서 실험심리학은 행동주의의 파도를 타고 완전히 심리학의 주류가 되지만 민족심리학은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그 결과로.. 무려 1990년대가 되도록 '문화'는 심리학의 주제에서 밀려나 있었습니다. 이 길고도 슬픈 이야기도 언제 따로 다루도록 하지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이 스토리에는 미국심리학을 필두로 하는 소위 주류심리학과 문화심리학의 뿌리깊은 반목의 세월이 녹아있습니다.
한편, 심리발달의 사회문화적 영향을 강조한 민족심리학의 전통은 사회학(Mead, H.)이나 인류학(Boas, F.)으로 이어졌으며 러시아의 심리학자 비고츠키(Vygotsky, L)에게 전해져 문화심리학의 이론적 전제가 되는 '구성주의'의 뿌리가 됩니다. 분트의 생각이 돌고 돌아 다시 심리학으로 돌아온 것이죠.
..사실 분트의 민족심리학이 문화심리학의 직접적인 뿌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각 문화가 저마다의 이유를 갖고 발달해 왔다는 다원적 관점을 가진 문화심리학과는 달리, 분트의 민족심리학은 인류가 발달해 온 보편적 과정에 대한 이론을 구축하기 위한 수단 정도의 의미를 갖습니다.
분트가 활동했던 19세기 말은 사회진화론을 바탕으로 한 제국주의의 물결이 한창이었습니다. 그 역시 시대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기 힘들었겠지요. 하지만, 특정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민족의 언어, 풍습, 민속 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민족심리학의 입장은 현재 문화심리학의 언어분석이나 사회적 표상이론 등의 관점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인간 이해를 위해서는 과학적 방법과 함께 사회문화적 관점 역시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했던 빌헬름 분트.
새가 날기 위해서 좌우의 날개가 모두 필요하듯이 인간 이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족심리학은 잊혀졌지만 문화심리학이 지금, 작은 날개를 퍼덕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