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개하다'는 말을 써서는 안되는 이유
매국노와 애국지사. 친일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이만큼 대비가 선명한 용어도 없을 겁니다. 우리는 매국노(賣國奴)를 거의 최상급의 욕으로 씁니다. 그만큼 매국노라는 말에는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매국노들은 오로지 돈과 권세에 눈이 먼 자들이었고, 도덕적으로도 못된 놈들이었다는 이야기죠.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 같은 경우는 며느리와 정을 통해 아들이 자살했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에는 그 정도로 부도덕적인 놈이니까 나라를 팔아먹을 수 있었겠구나.. 하는, 매국노라 불린 이들의 행위에 대한 일종의 설명의 기능이 포함돼 있습니다.
국권을 남의 나라에 넘긴다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사건을 맞아 충격에 빠진 사람들은 이것이 정상적인 인간들의 결정이었다고 생각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런 나쁜 결정을 한 이들이니 분명 나쁜 놈들일 것이라는 생각이지요.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매국노라 부르는 이들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었습니다. 국제정세에 밝았고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정치적 능력을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물론 지식이나 업무적 능력은 도덕성과는 별개입니다. 아무리 명석하고 잘났어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놈들이었다고 해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개인적 탐욕으로 나라를 판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에 모두 포함되는 매국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매국의 영원한 아이콘, 이완용이 독립협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만민공동회를 이끌었던 인물이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 자리에 세워진 독립문. 청나라와의 사대관계를 청산하고 독립국가로서의 위상을 새롭게 한 독립문 건립(1896년)에 가장 많은 돈을 기부하였으며, 독립문 현판 글씨도 그가 썼다는 설이 유력할 정도로 조선의 독립을 염원했던 이가 이완용이었습니다.
오해하실까봐 짚고 넘어가자면, 저는 이 글에서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들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국노들은 누구이며 왜 나라를 팔아먹었는가를 추적하여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완용을 변하게 했을까요? 일제가 준 관직? 재산?
일인지하 만인지상.. 일국의 총리대신까지 지낸 인물입니다. 그가 돈과 명예가 부족해서 나라를 팔았을까요? 친일파들을 단순히 개인적 탐욕으로 가득찬 이들로 바라보는 것은 을사늑약 이후의 한국사와 현재를 이해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크게 다를 것 없거나 오히려 뛰어난 이들이었고, 그런 그들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결과가 '매국'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그들이 '나라를 판' 결정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매국노라 부르는 이들을 '나라를 팔아야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제국주의 국가들의 세력이 날로 확장되던 19세기 말. 조선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위기였습니다. 이때 조선의 앞날을 걱정했던 지사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조선을 부강하게 하고 독립을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이 노력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납니다. 개화가 우선이냐 독립이 우선이냐 하는 것이죠. 개화, 즉 개방을 통해 우수한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여서 나라를 부강하게 하자는 주장과, 나라의 독립이 지켜지는 가운데 나라의 힘을 키우자는 주장입니다.
얼핏 봐서 거의 같은 주장 같지만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개화파의 입장은 나라가 강해지고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다면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아도 상관 없다는 말이 되고, 독립파는 아무리 살기에 불편함이 없어도 나라가 없다면 소용이 없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백성을 잘 살게 하기 위해 독립과는 관계없이 개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급진개화파의 입장은,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의 가사를 쓴, 그러나 이후의 친일행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윤치호의 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는 조선의 독립 문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현재와 같은 정부를 두고는 독립해도 민족에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반대로 애족적이고 인민의 복지에 호의적인 관심을 가진 더 나은 정부를 가진다면 다른 나라에 종속됐다 해도 재앙은 아닙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아끼는 많은 지식인들이 이러한 생각에서 친일을 선택했습니다. 애국지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안중근 의사 또한 처음에는 일본에 우호적이었습니다. 러일전쟁(1904-1905) 이후, 일본을 제국주의의 침탈에서 조선을 보호하고 개화를 이끌어 줄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러나 안중근 의사는 곧 일본의 야욕을 깨닫고 독립운동에 투신합니다. 안중근 의사가 남긴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서 날 것이며 나라 없는 백성이 어디서 살 것입니까"라는 말에 나라 없이는 아무것도 있을 수 없다는 독립지사들의 주장이 담겨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잘 사는 것과 독립. 무엇이 더 중한가 자신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일신의 안녕과 영달을 뿌리치고 추상적이고 실속없어 보이는 독립이라는 가치를 선택할 수 있을까요? 독립이 무엇이길래 수많은 독립투사들은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하나뿐인 목숨을 아낌없이 내던질 수 있었을까요?
독립의 핵심요소인 주권은 자결권, 즉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합니다.
내가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지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은 독립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살 곳도, 해야 할 일도, 만날 사람도 일일이 정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은 종속된 삶이겠지요.
독립지사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것이 이 독립인 반면, 개화가 우선이라는 친일파(매국노)들은 결국 조선인들은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결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조선인들이 미개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국제관계와 나라의 흥망성쇠를 약육강식, 적자생존으로 설명하는 사회진화론이 대세였던 20세기 초, 일찌감치 제국건설에 뛰어든 서구열강이나 일본에 비해 조선은 진화의 하위 단계에 머물러 있는 나라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미개하다(primitive)는 것이죠.
조선인들은 미개했기 때문에 발전하지 못했고 그 결과 못살고 불행합니다. (아마도 상당수의)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 사실이 너무나 가슴 아프지만 이 미개한 조선인들의 능력으로 서양이나 일본같은 발전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현실적으로 조선인의 힘으로 독립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조선과 조선인을 위해 이들의 운명을 다른 이들에게 맡기자고 결정한 것입니다. 나름 백성을 위한 결정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에서 비롯된 결정을 우리가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에서 친일청산이 어려운 진짜 이유입니다.
친일파로 분류된 많은 인사들은 자신들이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야 말로 진짜 한국을 위해서 애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죠. 많은 사립대학교와 대기업들의 창업주들이 친일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논리들이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논리의 시작점에는 '한국인들은 미개하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미개하기 때문에 뭘 해도 안 되고, 무엇을 하던 제대로 할 턱이 없다는 것이죠. 그런데 위대한 선각자 아무개께서 미개한 한국인들을 깨우치기 위해 학교(또는 기업)를 세우셨고 그 결과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루었다는 겁니다. 친일은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었고요.
우리가 장난으로라도, 꿈 속에서라도 '미개하다'는 말을 써서는 안되는 이유는 미개하다는 말이 진화의 단계에서 비롯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진화란 지질학적인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지질학의 시간은 기본이 수백만년 단위죠. 그러니까 미개한 한국인들이 진화..라는 걸 하려면 수백만년도 모자란다는 말입니다. 당연히 '한국인들은 안 돼'가 나오는 것이죠.
이러한 인식(미개)의 문제점은 우리 사회가 찾아야 할 대안의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점입니다. 누군가 미개하다면 해결책은 진화밖에 없는데, 미개한 상태에서 진화된 상태로 가는 것은 수백만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까요.
언제부턴가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논의의 장에 '미개'라는 용어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누군가를 미개하다고 말하는 것은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자세가 아니며, 더 나은 대안을 찾겠다는 자세도 아닙니다. 우리가 미개해서 그렇다는 것은 우리에겐 답이 없다는 선언과 다름없습니다.
답답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마저 차단해버린다면, 남은 선택은 한 가지 입니다. 우리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는 일을 포기하고 그 결정을 '더 잘 해줄 수 있는' 다른 이들에게 맡기는 것이죠. 그것을 쉬운 말로 '나라를 팔아먹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친일파, 매국노라 욕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나라와 백성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나라와 백성을 어떤 존재로 보았느냐에 따라 매국노와 애국지사의 길이 갈라진 것입니다. 그 길은 우리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에서부터 나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우리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피땀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면, 습관처럼 되뇌이는 '미개하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