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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Nov 30. 2016

박정희는 어떻게 신(神)이 되었나?

박정희 신격화의 문화적 배경

모든 분들이 힘든 나날을 보내고 계실 줄 압니다. 변하지 않는 현실에 답답함도 느끼실 겁니다. 하지만 아직 지칠 때가 아닙니다. 짬을 내어 휴식도 취하시고 공부도 하면서 길고 추운 겨울을 이겨냅시다. 오늘 말씀드릴 내용은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것입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이 컸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기간(1963~1979)에 한국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박근혜에게 표를 주었다는 분석이죠.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은 단순히 경제발전을 이뤄낸 위인이라는 평가를 넘어섭니다.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1,2위를 지켜왔고, 한국 현대사의 위대한 대통령에서 나아가 단군 이후 민족 최고의 영웅, 최근에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이라는 말까지도 나왔죠.


박정희 대통령 재임시절에 한국이 많은 발전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시절은 전 세계의 경제가 호황이던 시기였습니다. 더구나 경제발전의 주체, 즉 머리카락까지 잘라서 팔고 휴일도 없이 밤새도록 공장에서 코피를 흘렸던 것은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이었습니다. 경제발전의 공이 박정희 한 사람에게 모두 돌아갈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며칠 전 BBC는 최근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불거진 한국 부정부패의 기원을 박정희 시대로 분석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경제발전에 가려진 박정희 시대의 그림자는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역사와 반공주의, 반민주주의적 권위주의의 잔재 등에서 지금까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를 신으로 떠받드는 이들은 대체 누구일까요? 박정희 뿐만 아니라 그 아내 육영수 까지 신격화되었습니다. 요즘과 같은 시국에서 어제(29일)는 충북 옥천에서 육영수의 숭모제가 열리기도 했지요. 정치적으로 전혀 검증되지 않고 최씨일가와의 부정한 소문이 파다했던 박근혜조차 그의 딸이라는 이유로 한 나라의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습니까.


박정희를 신격화하는 이들은 단지 '이상한' 사람들일까요? 그렇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51.6%의 국민들이 그의 딸을 대통령으로 만들지 않았던가요? 그분들 중에는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들도 계십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들을 모두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해 버릴 수만은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박정희를 신으로 격상시킬 수 있었던 한국인들의 공유된 의식구조가 있다고 봅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그 이유를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언젠가 또 일어날 지 모를 이런 일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이성과 합리로 설명하기 힘든 집단적 심리의 이면에는 그 집단이 공유해 온 집단무의식이 있습니다. 융(C.G. Jung)이나 분트, 르봉 등이 지적해 온 부분이지요. 한국인들의 집단무의식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전통종교 무속(巫俗)입니다. 


무속은 무당이 신들의 힘을 빌어 신도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종교입니다. 무속에는 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무속의 신들은 강력한 힘으로 인간세계에 개입하는데요.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무속신(神)의 이미지와 일치합니다.


천신, 지신, 산신 등의 자연신, 옥황상제나 부처 등의 외래신 계열이 더 위계가 높지만 사실 무당들이 많이 모시는 신들은 우리의 삶과 보다 가까운 이들입니다. 장군, 대감, 처녀, 동자 등등이 그들이지요. 그 중에서도 강한 신력으로 많이 모셔지는 신은 장군(將軍)신입니다. 


강력한 힘을 지녔으나 자연의 순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자연신(하늘, 해, 달, 별)이나 높이 계시지만 인간세계와는 왠지 거리가 느껴지는 종교계열의 신들과 달리, 장군이나 대감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현실세계의 권력자들이었습니다. 평소에 그 힘을 목격할 수 있었던 존재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더 가까운 신이 되었던 것이죠.

무속신이 된 임경업 장군

박정희는 장군이었습니다.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던 당시의 계급은 소장(투스타)이었지요. 대통령이 되면서 군인 신분은 아니게 됐지만 분단된 남북의 상황은 박정희에게 나라를 지키는 수호신장(守護神將)의 이미지를 계속 활용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박정희의 신력(神力)을 더욱 드높인 것은 경제개발의 성과입니다. 무속신앙에서 사람들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을 찾습니다. 그 문제란 병을 낫고, 사업이 잘 되고, 시험에 합격하고, 가족이 잘 되고, 부자가 되고, 내가 잘 사는 것들입니다. 이 점에서 무속은 매우 현세적인 종교라고 할 수 있지요.


사실 무속에는 천계나 내세의 개념이 희박합니다. 본래 신들은 인간과는 다른 세계에 속한 존재들이지만 무속의 신들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시로 인간계를 드나들거든요. 무속이 종단이나 교파, 경전 없이 민중의 삶 속에 깊숙히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구한말에서부터 일제강점기와 625동란을 겪은 한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욕구는 '잘 사는 것'이었습니다.  새마을 운동의 캐치프레이즈였던 '잘 살아보세'는 이러한 욕구를 절묘하게 파고들었지요. 박정희 재임기간 동안의 한국의 경제적 발전은 그것을 충족시켰습니다.


물론 한국의 발전은 당시 세계경제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고 성장의 지표들은 과장되었으며 그 성장의 여파로 왜곡된 정치와 경제가 아직도 한국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지금도 많은 수의 한국인들은 현대 한국의 발전은 박정희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발전=박정희, 뗄레야 뗄 수 없는 도식이지요.

복(福)과 안전을 주는 현세의 신. 그것이 한국인들의 무의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갖는 의미인 것입니다. 


세종로 한복판을 노릴 만큼 곳곳에 들어서고 있는 박정희 동상, 국정교과서라는 무리수를 두어서까지 되살리려 했던 박정희에 대한 신격화는 이러한 문화적 배경에서 가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그와 똑같은 이미지를 활용한 정치인이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 말이죠. 바로 북한입니다. 김일성 3대를 비롯, 김일성의 어머니(강반석), 김정일의 어머니(김정숙)에 이르기까지 신격화하고 있는 북한의 배경에도 무속신앙이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과연 한 민족...

항일투쟁 경력을 통한 장군이라는 호칭. 남북 대치 상황에서의 수호신 이미지. 그리고 밥상에 '이밥에 고깃국'이 끊이지 않는 지상낙원이라는 현세에서의 복. 박정희와 김일성은 데칼코마니입니다. 이러한 신앙체계를 활용하여 김일성은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체계를 완성했으며, 남한도... 으흠... 결과적으로 같은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무속을 없애고 미신을 타파하면 될까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아닙니다. 세월호 구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해경을 해체하는 것이 세월호 사건의 본질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말이죠.


박정희의 신격화. 박정희 신드롬을 이용한 박근혜의 당선. 그 배경에는 무속신앙이 있지만 무속신앙이 문제의 본질은 아닙니다. 이것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욕망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왜 박근혜에게 표를 주었을까요? 아버지 박정희가 우리에게 주었다고 믿는, 그것을 다시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요? '잘 사는 것' 말입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큰 집에 살고 더 좋은 차를 굴리고 더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 말입니다. 박근혜가 아버지처럼 그것을 해 주리라 믿었던 것 아니었을까요?


결과적으로, 그녀가 우리에게 해 주기 바랐던 그 모든 것들은 최순실과 정유라, 그리고 그 부역자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의 '현세적' 욕망이 우리를 현세에서 잘 살게 해 주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응당 나에게 왔어야 했을 그 부와 권세가 엉뚱한 이들에게 갔다는 것 때문일까요? 지금은 조금 냉철하게 우리가 거리로 나서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입니다.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으로 이 사태가 종결지어져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되돌아보고 그것이 불러올 결과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은 결과와 그것을 위한 더 나은 절차를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의 욕망이 돈과 아파트, 명예와 권세와 같은 '현세의 복'에 그칠 때, 신(神) 박정희는 여전히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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