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아름다운 나라가 되었나
요즘 많이 보이는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탄핵반대집회에서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 성조기 말입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내 문제에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는 왜때문에 등장하게 되었을까요? 탄핵이 잘못된 일이니 미국에게 해결해 달라는 것일까요?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도 아니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외국인들의 눈에도 이상해 보이기만 하구요. 이런 경우에 많은 사람들은 '저들이 이상해서 그렇다'는 단순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쉽게 답을 찾을 수 있긴 하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은 그분들이 성조기를 드는 이유를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분들은 결국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한자로 아름다울 미(美)를 씁니다. 아름다운 나라..라는 뜻이죠. 다른 나라도 그럴까요? 일본은 쌀 미(米)자를 쓴 미국입니다. 쌀 나라, 부유한 나라라는 뜻이겠죠.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 이름은 사실 발음에서 온 것입니다.
1853년 페리 제독과 함께 일본에 도착한 미국인들은 스스로를 '아메리칸'이라고 불렀습니다. 근데 'American'의 강세는 'me'에 있어서 A의 발음은 약하게 잘 안들립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미국인American을 '메리깽'이라고 불렀는데요. 메리깽을 한자로 옮기면서 쌀 미(米)가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쌀 미자 미국 표기를 썼었는데요. 언제부턴가 아름다울 미(美) 미국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왜 미국에 아름답다는 의미를 덧붙인 것일까요?
1910년 을사늑약으로 500년 조선의 운명은 종말을 맞습니다. 망국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조선이 망한 이유를 찾아야 했지요. 때는 사회진화론에 근거를 둔 제국주의가 한창이던 시기였습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조선이 망한 것은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답이 나옵니다.
왜 힘을 갖지 못했나? 조선은 유교 나라였습니다. 자, 유교 때문이라는 답이 나옵니다. 500년 조선이 해 왔던 모든 일들은 잘못된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나, 나라를 되찾으려면? 힘을 길러야 합니다. 힘은 어떻게 기를까? 당대 사람들은 적어도 유교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유교를 대신할 두 가지의 사상이 한국에 전해집니다.
바로, 기독교와 공산주의입니다.
당시 한국 사람들에게 기독교는 단지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나라를 지탱하던 유교를 대체할 사상이자 개인들의 정신세계에 안정을 줄 질서 그 자체였지요. 더구나 부국강병의 모델로 여겨진 서양 제국들은 대부분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따라서 기독교 = 부국강병이라는 도식이 성립되었지요.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러시아에는 최초로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섭니다. 세계는 19세기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초기 자본주의의 역기능에 몸살을 앓고 있었고, 그 해결책의 하나로 제국주의가 시도되었으나 제국주의의 폐해 또한 심각해지던 상황이었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많은 지식인들은 공산주의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로 보았습니다.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됩니다. 이러한 과정은 황석영 선생의 소설 '손님'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미국에 대한 의미부여가 나타난 쪽은 기독교입니다. 미국은 국제질서에 새롭게 등장한 강대국으로 프로테스탄트(개신교)의 나라였습니다. 구한말의 지식인들은 미국을 접하고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기독교(개신교)를 유교를 대체할 국가의 사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당시 한국에 왔던 많은 선교사들의 출신국도 거의 미국이었습니다. 이들은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와 병원 등을 세워 한국의 근대화에도 많은 이바지를 한 바 있습니다. 언더우드, 세브란스, 아펜젤러, 스크랜튼 등 낯익은 이름들도 많으실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급박한 국제정세에서 미국의 힘을 이용하고자 했던, 그리고 미국의 시스템을 배우려고 했던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미국과 기독교는 민초들에 의해 조금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미국과 기독교가 결합된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미국이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죠.
이는 일정 부분 선교사들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선교사들의 본래 목적은 선교입니다. 조선사람들을 기독교화시키기 위해 선교사들은 '쉬운 전략'들을 사용했습니다. 다시 말해, 미국의 발달한 문명과 풍요를 보여주고 '기독교(개신교)를 믿으면 잘 살게 된다'고 한 것이죠.
미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입니다. 그게 무엇 때문입니까? 기독교를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유교와 유교적 질서를 버리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기독교는 그야말로 새 질서였습니다. 기독교 세상에는 양반도 노비도 없고 배움과 풍요가 가득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미국은 기독교의 신이 가장 사랑하는 신의 나라, 제사장의 나라였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더 확고하게 만든 것이 6.25입니다. 다시는 없어야 할 동족상잔의 비극 6.25는 표면상으로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싸움이었습니다. 여기서 미국은 '공산주의의 마수'에서 한국을 구해줍니다.
6.25로 인해 미국이 가진 이미지들이 한층 증폭되는 계기가 되죠. 임진왜란 때의 명나라가 연상될 만큼(재조지은: 再造之恩)말입니다. 이로써 한국에게 있어서 미국은 새로운 질서이자 선진 문명의 대명사요, 부와 권력의 원천이면서, 나라를 되찾게 해 준 구원자이자 신의 뜻을 대신 수행하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미국에는 천국(天國)의 이미지가, 미국인에게는 천사(天使)의 이미지가 덧씌워졌습니다. 미국인과 친하다는 것, 미국에 줄이 있다는 것은 부귀와 권세를 보장받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미국은 한국인의 동기 속으로 깊숙히 들어왔습니다.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미국은 곧 '선(善)이자 질서'를 뜻합니다. 따라서 미국에 반하는 모든 것들은 '악(惡)이자 무질서'일 수밖에 없겠죠. 공산주의, 북한.. 최근의 아랍에 이르기까지 미국에 반하는 모든 것들은 한국에서 좋은 의미를 갖기 힘듭니다. 우리나라에서 '반미(反美)'가 갖는 뉘앙스를 떠올려보시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이것이 '그들이 성조기를 드는 이유'입니다.
일제시대와 6.25, 개발독재시대를 거치며 많은 한국인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 것들은 '경제'와 '발전', '선진화'와 '안보' 등이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온 분들에게 세계에서 박근혜는 한 사람의 정치인이 아닙니다. 당신들이 옳다고 믿고 살아온 세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분들 입장에서는 지금 그 세계가 깨어지려는 순간인 것입니다. 평생을 옳다고 믿어왔던 가치들 말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무의식에서 이러한 무질서를 바로잡아 줄 단 하나의 질서는 바로 '미국'인 것이죠. 한국의 보수가 친미, 반북인 이유입니다. 한국 개신교가 보수이면서 친미, 반북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습니다. 미국의 수퍼파워도 중국, 러시아, EU 등 여러 세력에 의해 도전받고 있고, 그럼에도 미국의 영향력이 적지 않다고 하나 미국의 영향력의 원천이 신(神)이라고 믿는 사람도 없습니다. 특히나 국제적 경험을 쌓기 시작한 40대 이하에서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생각들이죠.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은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분들의 마음 속에서 미국은 여전히 세계 제일의 나라이자 신을 대리하는 절대적 권위를 지닌 나라입니다. 지금의 혼돈을 단숨에 바로잡아줄 힘을 가진 나라죠.
그분들이 드는 성조기는 이 혼돈이 빨리 해결되기 바라는, 그것도 당신들이 익숙한 방식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그분들의 바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지금 그분들의 혼란이 얼마나 큰 지도 잘 보여주는 지표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