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퇴장이 의미하는 것은...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을 맞는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축제였습니다. 당연합니다. 탄핵은 4년 동안의 국정농단을 심판하고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가는 초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1600만명의 사람들이 4개월 동안 주말마다 촛불을 든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번 일이 영 달갑지 않은 분들이 계시는 것 같습니다. 기어이 아스팔트에 피를 흘린 열혈 지지자들이나 삼성동 자택 앞에서 밤을 지새는 박사모 회원들 뿐만이 아닙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의 부모님, 조부모님은 청와대에서 나와 삼성동으로 들어가는 박근혜를 보며 연민의 정을 감추지 못하십니다.
심지어 최순실-박근혜의 국정농단에 함께 분노하시고 탄핵에 찬성하신 분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한 짓은 나쁘지만 저렇게 쫓겨나는 것을 보니 불쌍하다는 것이죠. 이를 보는 그분들의 아들, 딸, 손자, 손녀인 우리들의 마음은 착잡합니다. 그분들이 지난 세월을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알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더 나은 기회를 주시기 위해 정작 당신들은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입고 싶은 거 못 입고 살아오신 세월입니다. 그렇게 살아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힘으로 호의호식하며 국정을 파탄에 이르게 한 사람이 불쌍하다니요.
정작 불쌍한 사람은 당신들이고, 당신들이 불쌍하다는 사람은 당신들을 불쌍하게 만든 사람이라고 외치고 싶은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대체 우리 어르신들은 왜 박근혜가 불쌍하다는 걸까요?
불쌍하다는 것은 우선, 쫓겨난 군주에 대한 백성들의 감정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익숙하지 않은 옛 세대는 대통령과 과거 왕조시대의 왕을 구별하기 어려워하십니다. 일제에 의해 조선왕조의 맥이 끊기고, 해방 후에도 민주주의 정권이라 하기 힘든 권위주의 정부들이 계속해서 들어섰습니다.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기 시작한 것이 30년이 안되니, 그 이전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에게는 대통령이 곧 왕이라는 생각이 아직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분들에게는 왕이 백성들에게 쫓겨났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을 겁니다. 실제로 며칠 전 삼성동 자택 앞에서 한 지지자가 '마마'라는 말을 사용해 화제가 됐었죠.
두 번째는 박근혜 개인의 비극적 인생사입니다. 23살이던 1974년 어머니 육영수가 피살당하고 5년 후인 1979년 10월 26일. 아버지마저 김재규의 총에 사망합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불행하게 살아왔다는 것이 어르신들이 박근혜가 불쌍하다는 주된 이유죠.
특히 아버지의 죽음은 박근혜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한 인터뷰에서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동물의 왕국'이라 말하며 그 이유로 '동물들은 배신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 데서 그 영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생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최태민과 최순실 등 자신을 위해주는 이들의 말만 들었던 것도 그 때문이라 추정됩니다.
이런 불행한 가정사는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부모님이 모두 나랏일 하다가 돌아가시고 박근혜 자신도 결혼도 안하고 나라를 위해 애쓰니 불쌍해서라도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러나, 대통령이 된 이후 박근혜는 그 권력을 철저히 자기 자신과 측근들을 위해서만 사용했습니다. 민주주의도 시스템도 망가뜨린 국정농단에 국민들은 분노했고, 드디어 헌정 최초의 대통령 탄핵을 이루어냈지요. 탄핵은 찬성과 반대가 80:20에 이를만큼 그 어느때보다 일치된 국민들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은 박근혜가 불쌍하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말이죠. 아직까지도 그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분들도 계시고 탄핵될 만큼 그렇게 큰 잘못을 했느냐는 분도 계십니다. 권력을 잃은 대통령에 대한 마지막 연민일까요, 아니면 지켜왔던 태도를 쉽게 바꾸지 못하는 관성 때문일까요?
저는 여기에 한 가지 해석을 추가하고자 합니다. 대개 이성적으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현상의 이면에는 무의식적 동기가 숨어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박근혜가 불쌍하다는 어르신들에게는 어떤 무의식이 숨겨져 있을까요? 과연 어르신들에게 박근혜란 누구일까요?
2012년 12월. 운명의 18대 대선 바로 다음날, 마산에 볼 일이 있어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열차에서 내려 역사 안에 들어서자, TV에는 박근혜의 젊은 시절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아마 육영수 여사 사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할 때의 영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놀랐던 것은 TV 앞에 모여든 노인들의 표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TV안으로 빨려들어갈 듯이 영상에 몰입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그 안에서 무언가 소중한 것이라도 찾으려는 듯이 말이죠. 그들의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젊은 시절이었습니다.
70년대는 6.25가 끝난지 한 세대 정도가 흐른 때였습니다. 전쟁으로 고향을 버리고 부모님과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이들이 전쟁의 아픔을 삭여가던 시절이면서, 잿더미에서 빈손으로 시작했지만 조금씩 커지는 희망을 붙잡고 발버둥치던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보내던 청춘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60대 이상은 70년대에 2,30대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코피 쏟아가며 일을 해도 늘어가는 저금에 웃음지었고 돈이 없어 새우깡에 깡소주를 마시면서도 좀더 나은 내일을 꿈꾸던 시절이었지요.
그 가운데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가 있었습니다. 박정희 재임시 이루어진 경제 성장은 당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민주주의의 후퇴,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뿌리, 권위주의적 문화의 정착 등 부작용도 컸지만 일제시대와 6.25라는 처절한 절망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은 크나큰 흔적을 남겼습니다.
박근혜는 이른바 그 시대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지요. 1974년 어머니 육영수가 피살된 후, 23세의 박근혜는 퍼스트레이디 역할로 대중 앞에 전면적으로 등장합니다. 물론 이전부터 신비스러운 로얄패밀리의 일원으로 공주 이미지를 가져 온 박근혜였으나 어머니 사후, 공주는 아버지의 곁에서 권력과 일체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대를 살던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박근혜는 단지 대통령의 딸이 아니라 그들의 젊음 그 자체였다는 사실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초석이 된 70년대, 그 영광의 순간들 속에서 늘 웃고 있는 그녀는 곧 자신들의 젊은 시절의 상징이자 삶의 의미입니다.
숨가쁘게 살아오신 그분들의 일생에 70년대는 향수로 남아있습니다. 80년대의 민주화운동, 90년대의 문민정부와 IMF, 2000년대의 IT혁명과 신자유주의.. 한국의 사회변화는 LTE급이었습니다. 사실 여기 적응하고 사는 것 자체가 이미 기적입니다. 그러나 사회는 더 큰 변화를 계속해서 요구합니다.
변화에 지친 이들이 선택하는 것은 익숙함입니다. 2007,8년도부터 '복고열풍'이 크게 유행했죠. 음악다방과 DJ들이 장발과 통기타의 향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사라진 60년대 교복을 입고 70년대식 선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였죠. 그들이 그리워한 것이 단지 과거의 흘러간 유행이었을까요?
복고열풍의 본질은 과거가 아니라 과거의 내 젊음입니다. 달라진 세상, 혼란스러운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찬란하게 빛났던 과거의 나 만큼 그리운 것이 또 있을까요? 2012년 새누리당 대선후보 박근혜가 제공한 것은 그러한 그리움이었습니다.
그리고 4년 후...
과거에서 돌아온 유신의 공주는 탄핵으로 청와대를 비웠습니다. 그러나 박근혜와 같은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에게 박근혜의 퇴장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어왔던 가치들이 틀렸다는 것을 뜻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들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당신들 또한 이미 그것을 아실 터입니다.
박근혜가 불쌍하다는 어르신들의 한탄은, 돌아올 수 없는 당신들의 청춘에 대한 연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