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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Apr 07. 2017

예비군은 왜 '개'가 되는가?

본격! 예비군 심층심리 분석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울려퍼질 이 거리를~

예비군들이 걷고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들려오는 4월의 캐롤, 벚꽃엔딩과 함께 봄이 왔습니다. 길어진 햇빛을 받으며 벚꽃잎 흩날리는 거리거리에 군복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봄은 예비군 훈련의 계절이기도 하죠.


그런데 봄바람의 상큼함과는 달리 예비군의 이미지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멀쩡한 남자도 예비군복을 입으면 개가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무리 있어 보이는 직장에 반듯한 이미지였더라도 군복을 입으면 남자들은 놀랄만큼 다른 모습이 됩니다.

예비군 기본복장

풀어헤쳐진 상의, 거꾸로 쓴 모자, 잠기지 않는 허리띠, 양말 속으로 들어간 바지 등. 자유분방한 옷차림으로 상징되는 예비군들의 행동은 반항 그 자체입니다. 제발 빨리 좀 걸어달라는 또는 총 좀 땅에 끌지 말아달라는 후배(조교)들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것은 물론 교관의 말에도 사사건건 딴지를 걸고 으르렁거리죠.


이런 불굴의 예비군 정신을 잘 요약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얼마 전, 하의에 넣어 입던 상의를 빼 입으라는 지시가 내려왔을 때 예비군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그럼 이제 넣어 입어야겠군.


예비군들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무엇이 신체건강하고 제 역할 똑바로 다 하던 멀쩡한 사람들을 한 순간에 '개'로 만드는 것일까요? 멀리 갈 것 없이 제 경험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저 자신이 1급 현역으로 26개월 복무하고 예비군에 민방위까지 마친 퇴역(?) 군인이니까요.


끝날 것 같지 않던 군생활이 끝나고 꿈에 그리던 개구리 마크(예비군 마크)를 달았을 때의 기분은 말로 다 표현 못할 정도였습니다. 새 생명을 얻은 듯하다고 할까요? 부대를 내려오는 길섶의 잡초 한 포기까지 예뻐보였습니다.

개구리 마크

전역의 기쁨도 잠시, 예비역들에게는 가혹한 재사회화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2년 동안의 삽질과 작업에 머리가 굳은 만큼 수업은 따라가기 힘들고, 같이 입학했던 여자 동기들은 어느새 토익이 몇 점이네, 어느 회사에 원서를 썼네 하면서 저만큼 앞서 있습니다.


얼굴 모르는 후배들은 아저씨라고 따돌리고.. 예비역들의 유일한 친구는 같은 예비역들 뿐입니다. 과 행사에 삼삼오오 모인 예비역들은 어느새 군대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뒤처진 2년을 따라잡느라 힘이 부치고 갑자기 느껴지는 삶의 무게가 버거워질 무렵, 예비역들은 하나 둘, 군대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아직도 첫 번째 군대꿈이 기억나는데요.

어?

오후의 햇살이 비쳐드는 훈련소의 커다란 강당에 머리를 박박 민 훈련병들 사이에 내가 앉아 있습니다. 입대 첫 날인 것이죠.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칩니다. 손을 들고 교관에게 '저는 군대 갔다왔는데요'라고 말해 보지만, 교관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며 군생활 한 번 더 해야 한다고 합니다.


땀에 젖은 채 외마디 비명과 함께 깨어난 후로도 가슴은 한참동안 방망이질쳤습니다. 솔직이 말씀드리자면, 울었습니다. 하도 억울해서요.. 그 뒤로 잊을 만하면 가끔씩 군대 꿈을 꿉니다. 전역한지 18년차, 40이 넘은 지금도 마찬가지죠. 삶이 힘들거나 일이 잘 안풀릴 때면 한번씩 꾸는 것 같습니다.


군대이야기, 군대꿈, 예비군 훈련에서의 반항.

예비역 복학생들의 전형적 행동유형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군대 갔다온 동기들만 보면 끊임없이 군대이야기를 했고, 잊을만 하면 한 번씩 군대 꿈을 꾸었으며, 예비군 훈련에 가면 크고 작은 반항을 실천했습니다.



예비군들의 행동 이면의 숨겨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사 3학기쯤 학교의 예비역들에게 개방형 설문을 돌려서 자신이 생각하는 군대의 의미를 조사했던 적이 있습니다.

응답들을 분석해 보았더니 군대의 의미는 곧 ‘상실’이었습니다.


군대에 다녀와서 자신감도 생기고 여러 가지 사회적 기술도 늘었지만, 만약 군대를 가지 않았다면? 에 대한 질문에 절대 다수의 예비역들은 ‘보다 의미 있는 것’을 했을 것이라고 답했던 것이죠. 군대에 가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상태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의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는 군대였기 때문에 그 안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2년이라는 군생활은 군대가 아니었다면 가질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힘든 교육훈련? 고된 작업? 빡센 내무생활? 군대의 진정한 공포는 그런 데 있지 않습니다. 꿈에 군대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땀을 흘리고 비명을 지를 만큼 다 큰 사내들을 공포에 빠뜨리는 것은 다시 군대에서 2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인 것이죠.


한국남자들에게 군대는 트라우마로 남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면 군대 꿈은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증상으로 보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란 심각한 외상을 보거나 직접 겪은 후에 나타나는 불안장애의 한 종류입니다.


군생활 중에 경험하거나 목격한 죽음, 사고, 재난, 폭력 앞에 병사들의 정신은 심각한 충격을 받습니다. 더구나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력감과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절망감 등은 이러한 충격을 더한층 증폭시키죠.


그 결과, 외상적 사건은 반복적으로 기억에서 떠오르고 그때마다 그 일들을 직접 겪는 것 같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게 됩니다. 따라서 환자(예비역)들은 이러한 경험들이 다시 기억나는 것을 회피하려 애쓰게 됩니다.


예비역들의 끊임없는 군대이야기는 외상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막고 분열된 자아를 통합하려는 노력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군대이야기의 레퍼토리들은 대개 긍정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은 호날두가 된다는 군대스리가의 위엄. 사격실력 등 확인할 길 없는 전투력과 분야를 가리지 않는 허세 가득한 무용담들.


군대이야기는 예비군의 허세가 아니라 나의 군생활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려는 노력입니다. 군에서 제대하고 경험하는 거의 모든 일들은 나의 2년이 어쩌면 아무 의미없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계속해서 강조해 주거든요.

아...

이런 예비역들에게 예비군 훈련은 그토록 잊고 싶었던 군대에서의 외상적 경험들을 한꺼번에 되살리는 자극으로 다가옵니다. 군대분위기 잔뜩 나는 교장 입구의 표어에서부터 막사, 군복, 멀리서 들려오는 총 소리, 날카로운 호각소리와 교관의 외침, 햇볕 받은 훈련장의 흙냄새와 야외 화장실의 지린내까지 말이죠.


요약하자면, 예비군들의 반항은 군대라는 살아있는 권위에 대한 무의식적 부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군대 있을 때는 감히 할 수 없었던 행동들을 통해 온몸으로 군대의 권위와 맞서고 있는 것이죠. 때로는 한심해 보이는 예비군들의 행동들은, 더 이상은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의이자 더 이상은 너희들 마음대로 움직이는 내가 아니라는 처절한 외침입니다.


그 처절한 존재의 증명이, 기껏 고무링을 차지 않는 것이라든가 웃옷 단추 두어 개를 더 푸는 것으로밖에 표출될 수 없다는 사실이 한층 서글프게 느껴집니다.


흩날리는 봄날의 벚꽃잎처럼 그들의 젊은 날들은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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