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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May 23. 2017

바보의 문화적 의미

한국인들이 바보에 공감하는 이유

한국사람들은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IQ조사에서 늘 최상위권에 자리하고 있고,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역시 OECD 1~3위 내에 꼭 들 정도지요.

세계 IQ 지도

한국사람들이 이렇게 똑똑한 것은 우선 교육열 때문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계적으로 IQ가 높고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하는 나라들 중에는 아시아 국가들이 많은데(일본, 중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 이들 나라들은 유교문화권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유교문화권의 나라들은 입신양명과 같은 사회적 성취를 중시하며 그를 위해 교육에 큰 비중을 둡니다. 어린 시절부터 성취지향적 교육을 받다보니 두뇌개발이 잘 이루어지는 면이 있겠지요.


또 하나의 이유는 아마도 경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좁은 지역에(국토면적 108위/193개국)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살다보니(인구밀도 11위/193개국), 적은 기회를 얻기 위해 경쟁이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심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머리가 좋아야겠죠.


그런데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한국에는 의외의 현상이 존재합니다. 바로 바보 캐릭터가 상당히 많다는 것인데요. 전설적인 바보 캐릭터 영구를 시작으로 맹구, 빡구, 대구 등 X구 자 돌림 바보들은 물론, 맹구와 함께 출연했던 오서방이나 브레인 서바이벌로 시작해 동네 바보형 이미지를 구축한 정준하..


백치미를 뽐내는 솔비, 채연, 홍진경 같은 바보 누나들, 은지원이나 하하, 김종민처럼 대놓고 무식을 자랑하는 무식자 캐릭터들. TV에는 시대와 성별을 가리지 않는 수많은 바보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바보 캐릭터의 역사는 깊습니다. 심형래씨의 영구로 유명해진 영구는 1972년 TV드라마 '여로'에서 정욱제씨가 연기한 캐릭터에서 출발했습니다. 동네에 TV있는 집들이 많지 않던 시절, 온 동네 사람들을 TV 앞으로 불러모아 눈물짓게 하던 전설적인 드라마였지요.


특히, 떡진 머리 한 가운데의 버짐, 휘날리는 콧물, 과장된 표정, 우스꽝스런 몸동작 등 심형래가 재창조한 영구는 이후 바보 캐릭터들의 전형이 될 만큼 영향력있는 캐릭터가 됩니다. 각종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잊을 만 하면 한번씩 재창조되는 전형적 바보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보 캐릭터가 코미디 프로에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2005년 개봉한 '말아톤'의 초원이, 20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은 영화 '맨발의 기봉이(2006)'의 기봉이, 강풀의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한 '바보(2008)'의 승룡이, '수퍼맨이었던 사나이(2008)'의 황정민,  '7번방의 선물(2013)'에서 류승룡이 연기한 용구 등 영화에서도 바보 캐릭터는 꾸준합니다.


한국에서는 왜 이렇게 바보 캐릭터가 사랑받는 것일까요? 실제로도 똑똑한 사람들이 살고있고 또 똑똑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운 한국에서 바보에 대한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어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요? 똑똑한 사람들이 자기들보다 좀 떨어지는 이들을 비웃기 위해 만들어 낸 가학적 캐릭터들일까요?


한국에서 사랑받는 바보 캐릭터들의 면면을 보면 한국사람들이 그들을 비웃거나 놀리려는 목적으로 바보를 등장시키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바보를 통해 보통 사람들이 갖지 못한 어떤 것을 찾으려는 듯 보입니다.

강풀의 '바보'

바보들은 순수합니다(순수하게 그려집니다). 돈이 되는 것도 명예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지만 순수하게 뭔가를 하고, 순수하게 그것을 지켜냅니다. 마라톤에 대한 때묻지 않은 열정을 가진 초원이가, 어머니, 여자친구, 딸에 대한 지순한 사랑을 보여준 기봉이가, 승룡이가, 용구가 그러하지요.


바보 캐릭터의 시초는 1925년 발표된 나도향의 소설 '벙어리 삼룡이'라 할 수 있는데요. 나도향은 동네 머슴인 벙어리 삼룡이를 통해 신분과 돈을 초월한 숭고한 인간애와 구원을 그려냈지요. 1935년 발표된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에서도 백치에 벙어리인 아다다는 세상의 물질주의에 대한 극명한 대비를 보여줍니다.


바보들의 일반사람들과 '같지 않음', 즉 촌스러운 외모나 어리숙한 행동, 말주변은 그러한 대비를 더욱 강조해 주는 효과를 낳습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한국사람들은 정말이지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더우기, 고난과 기회가 공존했던 혼돈의 현대사를 지내오면서 한국사람들은 정말이지 치열하게 똑똑해야만 했습니다.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에 새롭게 만들어진 나라. 법과 제도, 새 질서가 정비되지 않은 시절. 허약한 법의 틈새를 파고들어간 사람들은 기회를 잡았고 성공할 수 있었죠.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온갖 일들을 했고, 또 해야만 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는 윤태호 작가의 '인천상륙작전'을 추천합니다.)

살아남기 위한 일들 중에는 양심을 버려야 하는 일, 정의에 눈감는 일, 내 끼니를 위해 남을 등치는 일들이 포함됐지요. 그러한 모든 일들이 '살기 위한 것'으로 정당화되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양심을 지키며 깨끗이 살아오신 분들도 물론 계시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을 겁니다. 


일제강점기와 동족상잔의 비극을 거치며 극심한 가치관의 혼란을 경험한 한국인들에게 바보는 잃어버린 인간의 순수함을 상징하는 존재가 아니었을까요. 한껏 똑똑하게 산다고 살아온 세상, 그러나 마음 한 켠에는 알 수 없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남아있었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을까? 다른 길은 없었을까? 내가 버려 둔 이들과 함께 올 수는 없었을까. 내가 지키지 못한 무언가를 지킬 수는 없었을까? 


바보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간직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느라, 살아 내느라,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고 가졌으나 지키지 못했던 가치들을, 바보는 지키고 있었던 것이죠. 순수한 열정, 지고지순한 사랑,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끝까지 지키는 우직함..

한국사람들의 바보 사랑은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들에 대한 그리움일 것입니다.


하지만, 바보에 대한 그리움은 더 이상 그리움으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당연하고 소중하지만 이제까지 잊혀졌던 가치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이제는 다시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내게 손해가 되는 일일지언정 남을 위한 길을 가는 것이 바보라면, 그들이 찬사를 받는 그런 시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아이들에게, 법대로 원칙대로 살면 잘 살 수 있다고, 그렇게 사는 것이 똑똑한 거라고 당연하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이 더 이상, 바보 캐릭터가 사랑받지 않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누군가를 잃어버리고 나서 그리워하는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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