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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Jun 26. 2017

트럼프의 격노가 의미하는 것은?

숭미(崇美)의 종교성에 대한 고찰

며칠 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사드상황에 대해 '격노했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탄핵이 진행중이던 지난 정부의 말미에 갑자기 도입된 사드(THAAD). 새롭게 출범한 정부에서는 배치과정의 절차를 문제삼으며 사드도입 전반을 재검토중입니다.


이걸 가지고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국이 은혜를 모른다'며 격노했다는 것입니다. 6.25때 가장 많은 군대와 물자를 보내준 것은 물론 지금도 한국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미국의 결정에 어떻게 토를 달 수 있느냐는 것이겠지요.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불거진 이 사건에 언론은 대미외교에 적신호가 켜졌다며 들썩거렸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격노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격노한 적이 없습니다. 이 기사는 거짓으로 밝혀졌죠. 

내막은 이렇습니다. 


트럼프 격노설의 유일한 근거는 일본 아사히 신문입니다. 그리고 아사히 신문 기사의 출처는 한국이었습니다. 한국 주재 아사히 신문 기자가 한국 내 어디선가에서 '카더라' 소식을 주워듣고 쓴 기사를 한국 언론들이 대거 받아다가 특종인것처럼 보도한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 기사를 쓴 이들은 트럼프가 격노했다는 뉴스가 어떠한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했을까요? 한국인들에게 한미관계란, 미국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한국에서 미국(美國)의 의미는 특별합니다. 한국인들에게 미국은 그냥 큰 나라, 초강대국이 아닙니다. 미국은 부(富)와 선(善)이며 법(法)이자 기준(standard)입니다. 구한말, 500년을 이어 온 유교를 잃은 한국은 미국을 새로운 질서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 다른 글(그들은 왜 성조기를 드는가?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69)을 참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미국의 의미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전래와 더불어 미국에는 '제사장의 나라', '신의 대리국'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는데요. 기독교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미국의 의미도 급격하게 종교성을 띠게 됩니다. 6.25와 냉전은 이러한 미국의 이미지를 한층 강화시켰죠.


미국의 종교적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예가 2015년 3월 5일 발생했던, 리퍼트 미국 대사의 피습사건입니다.

사건은 한 시민운동가의 일탈적 행동으로 마무리되었으나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기억들 하시다시피, 리퍼트 대사의 피습 이후에는 별의별 희한한 일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색색의 한복을 차려입은 분들이 거리에 모여 부채춤, 북춤, 발레, 석고대죄 등 다양한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리퍼트 대사가 입원한 병실에도 위문편지와 꽃다발, 개고기를 필두로.. 환자에 좋다는 음식 등이 끊이지 않았죠. (리퍼트 대사가 애견가라는 것은 함정)


예상치 못한 한국인들의 뜨거운 반응에 외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습니다. 늘 그렇듯이 가장 놀란 이들은 한국인들 자신이었던 듯 합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 창피하다'  '나라 망신이다' 등 낯설고 부끄럽다는 반응 일색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진중권 선생 트위터

그렇습니다. 대단히 초현실적인 일입니다. 전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걸로 끝인 걸까요? 제가 늘 강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상한 사람들을 이상하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그런 일들을 하게 된 배경을 살펴봐야죠.


제 견해로,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하는 일련의 모든 행위들은 '굿'으로 설명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굿판을 벌였다는 것이죠. 이것이 리퍼트 대사의 피습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굿'이란 무속의 종교의례입니다. 그 전에 무속(巫俗)은 한국의 전통 신앙입니다. 현대사회 들어 미신으로 폄하되고 있으나 수천 년 동안 한국인들의 마음과 의식구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을 부정할 수는 없죠. 역사적으로 불교, 유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와 사상이 존재했지만 그 밑바닥에는 무속의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한국 연구자들의 공통적 인식입니다. 


미국이 갖는 종교성 역시 무속에 대한 이해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종교성은 일차적으로 기독교(개신교) 신앙과 관계가 있지만 기독교가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무속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한번 말씀드리겠지만 한국 기독교의 종교현상 중에는 무속과 관련된 부분이 적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리퍼트 대사의 피습에 대한 반응들을 '굿'으로 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우선, 그 행위들이 상당부분 공연형식으로 의례(ritual)적 성격을 띤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의도가 명백히 리퍼트 대사(와 미국)를 달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신께 정성을 다하는 신도

우리는 먼저, 리퍼트 대사가 일개 개인이 아니라 미국의 대사 신분임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무의식에서 미국은 '신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신의 나라에서 온 대사는 누구겠습니까? 바로 신의 사자, 즉 천사(天使)인 것이죠. 


천사가 우리나라에서 해를 당했습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동티도 이런 동티가 없는 것이죠. 신이 크게 노할 일입니다. 그 해는 고스란히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닥치겠지요. 굿은 이럴 때 해야 하는 겁니다.


굿은 대개 다음과 같은 구조로 이루어지는데요.

1. 문제가 발생한다.

2. 신을 부른다.(청신;請神)

3. 신을 즐겁게 하여 문제해결을 부탁한다.(오신;娛神)

4. 문제가 해결되고 신을 보낸다.(송신;送神)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비는 공연들은 신을 즐겁게 하는 3단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문제는 터졌고(피습) 신이 노했을 것은 뻔한 일입니다. 곧 들이닥칠 신의 화를 막기 위해서 사람들은 정성을 다해 신을 즐겁게 해야 합니다. 부채춤도 추고, 북도 치고, 발레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어떻습니까. 지나친 해석일까요? 

그러나 리퍼트 대사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에서 굿이 아닌 다른 의미를 찾는 것도 무리입니다. 불합리, 미개, 정신병 같은 단어들을 제외하면 말이죠. 그게 편하면 그렇게 생각하면 될 일입니다. 더 나은 해석이나 설명이 있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면 말입니다. 

'트럼프가 격노했다'는 기사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태껏 살펴본 미국과 미국인(미국 대사)의 의미로 미루어 짐작이 가는 바가 없지 않습니다.


신이 노했다며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질 나쁜 무당이 떠오르는 것은 분명 한선생의 지나친 상상이겠지요.

영화, 박수무당의 한 장면

우리는 최근, 비싼 댓가를 치르며 신격화된 박정희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미국을 '하나님 나라'로, 미국인을 '천사'로 보는 또다른 신격화에서 벗어날 때입니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한 나라일 뿐입니다. 미 대통령이라봐야 그 역할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한 사람일 뿐이겠지요. 그 사람의 일희일비에 우리가 흔들려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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