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는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한국에서 개고기 논란만큼이나 여름의 이슈로 떠오르는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퀴어축제죠.
1970년 미국 뉴욕에서 동성애자들의 인권과 동성애에 대한 혐오 중단을 외치며 시작된 '게이 퍼레이드'에 연원을 두고 있는 퀴어축제는 한국에서는 2000년 9월 처음 개최되었고 올해로 18회에 이르는 행사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퀴어축제에 대한 인식은 별로 좋은 편은 아닙니다. 종교단체 등 동성애 반대 단체의 맞불집회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네티즌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목소리가 높습니다. 동성애에 거부감이 없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퀴어축제는 불만이라는 이들이 많은데요.
뭐 자랑할 거라고 거리에서 그러고 다니냐는 것이죠. 자기들끼리 좋다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안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본인이 보기 싫은 것도 큰 이유겠지요.
최근 여러 나라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는 등 세계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은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커밍아웃을 하는 이들이 나오고 퀴어축제 등 성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는 중입니다만 아직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과연 우리는 동성애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할 동성애에 대한 보편적인 관점은 존재하는 것일까요?
우선 동성애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대략 네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데요.
첫째, 동성애는 자연법칙(신의 섭리)에 어긋난다.
둘째, 동성애는 정신병이다.
셋째, 동성애는 에이즈의 원인이다.
넷째, 동성애를 허용하면 가족제도 등 사회질서가 파괴된다.
그러나 이들 주장은 사실로서의 근거가 부족합니다. 첫째, 자연에는 동성애를 하는 동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캐나다의 생물학자 브루스 배지밀(Bruce Bagemihl)은 10여년 전의 저서에서 약 470종의 동물이 동성애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 수는 계속 늘어 현재는 1500종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따지만 신의 섭리에는 동성애가 이미 포함돼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또한 인류의 역사에서 동성애가 지속적으로 배제되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동성애를 예찬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리스뿐만 아니라 이집트, 앗시리아, 인도, 중국 등 동성애가 존재했던 증거는 상당히 많습니다.
둘째, 동성애가 정신병이라는 견해는 동성애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오해입니다. 1973년부터 동성애는 더이상 정신장애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동성애가 정신장애를 진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 당사자와 주변인의 심리사회적 적응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 전까지는 동성애를 질병으로 보고 이를 치료하려는 여러 노력이 기울여지기도 했습니다만, 뇌수술을 포함한 시술, 치료, 상담 등 인위적으로 성적 지향을 바꾸려는 어떠한 노력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따라서 현재 정신의학에서 동성애는 정신병이 아닌 정상적인 성적 지향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죠.
셋째, 동성애가 에이즈 등 질병을 확산한다는 주장은 일견 사실로 보입니다. 많은 통계들이 동성애와 에이즈의 상관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이즈의 원인은 동성애가 아니라 비위생적인,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동성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죠.
동성애가 음지화되다보니(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하지 않은, 비위생적 관계가 될 확률이 높고, 그런 관계들이 에이즈의 감염으로 이어질 수는 있지만 말입니다. 즉, 위생적이고 안전한 관계가 전제된다면 동성애에서의 에이즈 감염율은 이성애자들의 그것과 차이가 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상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은 네번째 이유, 즉 동성애로 인해 기존 질서가 파괴될 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동성애 반대 측은 동성애를 허용하게 되면 남남, 여여 부부가 늘어날 것이고 그로 인해 가족이 붕괴되고 인구가 줄어들고 사회유지가 어려울 거라고 말합니다.
또한 동성 커플에게 닥칠 사회적 차별이나 동성 부모를 둔 아이들의 혼란 등을 예로 동성애를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하죠. 이러한 주장들의 기저에는 기존질서의 파괴, 즉 '사회가 유지되지 않을 것'에 대한 강한 불안이 존재합니다. 이것은 곧 문화의 존재 이유기도 한데요.
사람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보다 잘 살아가기 위해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문화는 사회 유지를 위해 작동합니다. 우리가 익숙한 문화적 가치나 종교, 규범 등은 대개 사회 유지라는 단순한 목적을 위해 작동합니다. 이 관점에서 사람들의 동성애에 대한 강렬한 반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성애가 사회유지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검증된 바 없는 일입니다. 동성애 인구는 동성애를 허용하는 나라에서도 4~5%정도에 불과하며 이 비율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인구 감소에 대한 불안도 그렇습니다.
서구권 국가들의 인구가 정체기에 들어섰거나 줄어들고 있는 추세에 있으나, 전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인구감소 추이를 보이는 한국이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은 나라라는 것을 고려하면 인구 감소의 원인을 동성애로 보는 시각 역시 타당하다고 할 수 없죠.
결국 동성애 반대 측의 논거들은 동성애 반대라는 기존의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 찾아내고 이론화된 것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확인적 가설검증이라는 인지적 편향의 결과인 것이죠.
그렇다면 동성애는 모든 국가에서 전면적으로 허용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우선, 동성애가 나쁘거나 잘못된 것이라는 편견은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방금 살펴보았듯이 동성애 혐오(호모포비아)의 원인은 동성애 자체의 유해성이 아닌, 기존 질서 붕괴에 대한 공포에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들어 동성애가 다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사회 변화와 그에 따른 인간관계의 변화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동성애를 인정해도 사회가 붕괴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동성애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가져왔다는 말씀입니다.
눈앞의 생존을 담보하기 어려웠던 과거, 결혼은 개인은 물론 집단의 생존가능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결혼을 통해 사람들은 노동력을 증가시키고 인구를 늘릴 뿐 아니라 이웃과 동맹을 맺을 수 있었죠. 결혼에 사랑이라는 로맨틱한 의미가 부여된 것은 약 200년 남짓으로 인류사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도와 기술의 발달로 더이상 생존에 급급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되는 현대의 몇몇 나라들에서는, 노동력과 생산, 동맹이라는 의미는 결혼에서 점차 퇴색하고 서로 의지하고 삶을 함께 할 동반자를 찾는다는 의미로 변화하게 되었죠. 굳이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다면 그 대상이 반드시 이성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드린 조건에 부합하는 나라들에서 동성애는 정상적인 성적 지향의 하나로, 인정받아야 할 두 사람의 관계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개인의 생존 자체가 더이상 이슈가 되지 않는 사회라면 개인의 선택과 지향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할 사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성애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이들 역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성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사회와 질서의 유지를 원하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조건에서 결혼은 여전히 인구의 생산과 동맹, 생존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들이 보이는 동성애 혐오는 그 자체로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생존과 안전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이죠. 생존과 안전을 요구하는 이들을 무지하다거나 미개하다고 비난하는 것 역시 또 다른 형태의 혐오와 차별일 수 있습니다.
동성애자들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그들과 우리가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요?
동성애에 대한 태도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그래야 하는' 보편적 원리가 아니라 시대와 문화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해 온 문화적 가치에 가깝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런 편이 이제까지 살아오기에 유리했기 때문이겠지요.
동성애 자체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해서 이제까지 옳다고 믿고 살아온 신념체계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의 사회가 변했고 삶의 모습이 달라져서 동성애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면 그 이전에 사람들이 갖는 동성애에 대한 공포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행 퀴어축제의 방식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습니다. 소수자들이 자꾸 목소리를 내야 우리 사회의 굳은 편견의 벽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행사의 기획목표에는 동의하지만 지금의 방식은 가뜩이나 동성애에 공포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동성애에 대한 이해가 아닌 더욱 큰 공포로 다가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