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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Feb 06. 2016

명절과 '아름답게' 헤어지는 법

명절 증후군과 명절의 미래

곧 설날입니다. ...즐거우십니까?

언제부턴가 명절은 우리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명절이 지나면 이혼율이 늘어난다는 통계가 있지요. 명절 때 불거진 가족 간 갈등이 이혼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명절과 관련한 한국인들의 스트레스는 명절 증후군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명절 스트레스는 특히 며느리들에게 높습니다. 요즘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명절 음식은 여성들이 전담하는 경우가 많고 한국의 전통적 고부관계에서 며느리들은 시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명절이 마음 편할 리 없습니다. 급기야 몇년 전부터는 아래와 같은 상품까지 등장했습니다.


결혼 전의 대학생이나 취준생들에게도 명절은 스트레스입니다. 일년에 한 두번 볼까말까 한 친척들이 몰려와서 내 삶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 하기 일쑤이고, 친척 동생들이나 조카들은 평화로운 나만의 공간에 침입해서 소중한 컬렉션을 부숴놓거나 컴퓨터에다 몹쓸 짓을 잔뜩 저질러놓고는 나몰라라 하지요.

남편들이나 어르신들이라고 명절이 편할 리 없습니다. 남편 입장에서는 돕는다고 나서보지만 아내의 성에는 차지 않는 것 같고 가만히 있자니 눈치가 보이죠. 어르신들도 이제 시대가 달라졌으니 예전처럼 할 수도 없고 마음에 썩 들지 않는 구석이 있어도 한 소리 하기도 뭐합니다. 



이렇게 명절은 모든 사람들에게 스트레스인 듯 합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시라는 한복 곱게 차려입은 뉴스 앵커들의 멘트가 이제는 공허하게 들려옵니다. 왜 우리는 다같이 힘든 명절을 지키고 있는 걸까요? 


문화는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어떤 문화나 관습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집단의 생존과 유지를 위해 그러한 문화나 관습이 필요했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그러한 필요가 다했을 때 문화는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명절은 사라질 때가 된 것일까요? 그것도 이렇게 안 좋은 기억만 잔뜩 남기고?


명절의 문화적 의미

우리에게 명절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농경사회였던 조선시대에 명절은 농사일의 흐름을 맺고 이어주던 역할을 했습니다. 대표적 명절인 추석과 정월대보름의 시기는 추수 직후와 입춘 즈음입니다. 추석은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성격을 갖습니다. 농사짓느라 고생했으니 거두어들인 곡식으로 풍족하게 먹고 놀고 쉬자는 것이죠. 


지금은 오곡밥 먹는 날 정도로 기억되는 정월대보름은 원래 매우 큰 명절이었습니다. 설날이 새해의 시작이라면 정월대보름은 농사의 시작을 알립니다. 설날이 지나면서 슬슬 농사일의 압박을 느끼게 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농사일에 들어가기 전에 '한판 진하게 놀자'고 정한 날이 대보름입니다. 특히나 논바닥에서 하는 쥐불놀이나 달집태우기 등은 병충해를 막고 땅에 양분을 공급하는 기능을 하지요.

대보름 밤의 스펙타클, 쥐불놀이

그러나 현대사회가 되면서 명절의 의미가 바뀝니다. 예전처럼 농사를 짓는 시대가 아니니 당연하겠지요. 산업화와 도시화로 사람들은 도시로 모여들고 농촌에는 어느덧 부모 세대만 남게 됩니다. 농사의 호흡을 조절했던 명절은 이제 고향에 가서 부모님을 만나는 날로 변하게 됩니다. 사라진 지역공동체, 흩어진 가족, 숨가쁜 변화 를 따라가느라 지치고 고달픈 삶 속에서.. 

명절은 우리가 '가족'임을 확인하는 날이 된 것입니다.


도시로 나온 자식들은 부모님이 평소에 접하기 힘든 물건들로 구성된 선물세트를 사들고 고향으로 향하고, 부모님들은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남은 음식이며 참기름 등 도시에서 쉽게 구하기 힘든 물건들을 바리바리 싸 보냅니다. '민족대이동'의 시작이자 '스팸 선물세트'나 '음식 보따리' 등 새로운 명절풍경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간은 흐르고 흘러... 고향을 떠났던 이들은 이제 새로운 고향에서 자식들을 낳고 살아갑니다. 자식들이 또 자식들을 낳고 자식들의 자식들이 또 자식들을 낳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변화를 겪어 온 한국이니만큼 삶의 모습들도 그만큼 빨리 변해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민족대이동이라는 말이 남아있지만 이제 고향에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명절을 쇠기 위해 '민족' 단위가 이동하는 일은 없을 지 모릅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이 바뀌어 감에 따라, 

한 핏줄임을 확인해주는 제의(ritual), 차례는 헛된 수고만 끼치는 허례허식이 되었습니다.

간만에 보는 가족들 잘 살고 있는지 묻던 애틋한 안부는 꼰대들의 참견이 되었습니다.

객지에서 고생할 자식을 생각하며 싸 보내던 음식보따리는 처치곤란한 음식쓰레기가 되었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잘못 하고 있다는 의미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명절이 스트레스가 된 본질은 우리의 삶의 모습이 바뀌었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달라졌기에 같은 행위이지만 그 의미가 달라졌다는 것이지요.


당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명절의 모습은 변해 갈 겁니다. 언젠가는 명절이 아예 사라질 날이 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명절은 우리의 삶에 스트레스 말고는 아무런 긍정적인 영향도 미치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명절은 차차 사라져 갈 것입니다. 그 변화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명절이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한때 느꼈던 가족의 사랑과 따뜻한 나눔을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면, 앞으로 조금은 신경써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기분 나쁘게 생각지 마시고 아래 항목들을 잠깐만 눈여겨 봐 주셨으면 합니다.


1. 명절스트레스의 주원인인 여성에게 편중된 노동이나 시댁 중심의 행사일정 등은 남녀 평등을 지향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더이상 적합하지 않은 관습입니다. 

2. 친척 어르신들 젊을 때와는 세상이 많이 다릅니다. 친척들의 과도한 참견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와 싸워야 하는 어린 세대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3. 방 하나에서 십수형제가 부대끼며 내것 네것 구분하지 않고 살던 때가 아닙니다. 서로의 소유물이나 삶의 영역을 지나치게 넘나드는 것은 정이 아니라 민폐입니다.

4. 지금의 혼란은 문화가 바뀌는 과정입니다.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으면 전통이라고 참고 있지 마시고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5. 가족이 소중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리고 위의 것들에 대해서 상호노력이 이루어진다는 전제하에, 일년에 며칠 정도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전통적 의미의 가족이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있지만 가족은 여전히 우리사회 최후의 보루이자 안식처입니다. 한국인 뿐만아니라 모든 인간은 가족에게서 관계 맺는 법과 갈등을 조절하는 것을 배우고 사람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배웁니다. 발달심리학의 기초 중 기초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가족이 우리가 지켜야할 가치라면 명절의 기능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명절의 문화적 기능이 끝났다고 해도 이런 식의 이별은 곤란합니다.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졌다고 해서 상대의 앞날을 저주하고 함께 보냈던 소중한 추억을 쓰레기통에 처박지는 않습니다. 그런 이별일수록 서로에 대한 감정이 정리되지 않고 남아있는 경우가 많죠. 홧김에 이별을 통보하고는 자존심때문에 다시 만나자는 말도 못하고 술 마실 때마다 울면서 전화기를 붙잡는...


우리에게 명절 스트레스가 그토록 많다는 것은, 명절에 대한 우리의 감정들이 그만큼 복잡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진정 명절과 이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명절의 기억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와의 추억을 되새겨 보시고 그와 꿈꾸었던 미래를 생각해보십시오. 추억은 아름다웠으나 도저히 미래를 함께할 수 없다면, 그때 명절에게 이별을 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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