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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Feb 17. 2016

왜 한국 기업은 소비자를 호갱으로 볼까?

미개도식: 우리가 우리를 보는 방법

최근 과자 드셔본 적 있으신지요? "질소를 샀더니 과자가 딸려왔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과자의 과대포장 문제는 심각합니다. 과대포장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분명 같은 과자인데 수출용에는 국내용에는 쓰지 않는 고급 원료를 사용하고 양도 배 가까이 많습니다. 

국내 모 회사의 자동차는 사고가 났는데도 에어백이 터지지 않아 신고한 고객에게 "충돌각에 따라 안 터질 수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이 회사는 북미에서 싸고 질좋기로 꽤 유명합니다. 대형차 한 대를 사면 소형차 한 대를 덤으로 주는 마케팅에서부터 10만 마일 워런티, 즉 주행거리 10만 마일(16만 km) 동안 고장 등 문제가 발생하면 무료로 수리해주는 서비스 등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잘 알려졌었죠.


유명한 빵 브랜드 빠리XX트가 프랑스에 진출한 것은 들어보셨죠? 그 빵이 그렇게 맛있답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게 앞에 줄을 섭니다. 이상하게 우리동네에서 사먹을 때는 그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요. 프랑스 사람들의 입맛이 생각보다 안 까다로운 것일까요?


국내 대기업이 만든 TV나 휴대폰의 가격은 국내보다 해외가 훨씬 쌉니다. 국내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인터넷을 통해 해외에서 직접 사는 게 훨씬 이득입니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해외직구'와 '호갱'입니다. 해외직구는 물건을 해외에서 직접구매한다는 뜻이고, '호갱'은 '호구취급당하는 고객'이라는 뜻입니다. 말로는 고객님 고객님 하지만 속으로는 호구취급을 당하는 우리시대 불쌍한 고객들의 애환이 담긴 슬픈 유행어라고 할 수 있죠. 

과자봉지로 만든 뗏목

몇 개만 예를 들었지만 국내 기업들의 소비자 호구 취급은 악명이 높습니다. 인터넷에는 물건을 사면서 '호구 되지 않는 법'들이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현실이 현실이니만큼 똑똑한 소비를 하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만, 그들이 도대체 왜 국내 소비자를 호구로 아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도덕성 탓을 하자니 일관적이지 않습니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국내 소비자든 해외 소비자든 똑같이 호구 취급을 해야 할 겁니다. 문제는 국내와 해외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차에 있습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국내 소비자들은 호구 취급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도 된다고 생각할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이 "국민(한국인)은 미개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미개하기에 좋은 제품과 나쁜 제품을 구분하지 못할 것이고, 나쁜 제품을 팔아도 상관없다는 논리입니다. 혹은 미개한 사람들한테는 좋은 제품을 팔 필요가 없다는 것이겠죠. 좀 심하게 표현한 감이 있지만 이것이 '호갱사태'의 본질일 겁니다.


그러면 이 생각, 즉 "한국인은 미개하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짧게 말씀드리면 이러한 생각들은 구한말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강화되었지요. 제 글을 읽으셨던 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이러한 생각이 바로 '사회진화론적 인식'입니다. 


조선의 명운이 다해가던 19세기 후반, 조선의 지식인들은 조선이 열강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진화론'에서 찾았습니다. 물론 진화론이 제국주의 시대였던 당대의 시대정신이었던 면도 있지요. '우리가 나라를 빼앗기는 것은 우리가 힘이 없어서다. 저들이 진화할 동안 우리가 진화하지 못해서다.'는 식의 설명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친일파나 독립지사를 가리지 않고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조선은 미개하니 일본의 힘을 빌어서라도 개화를 해야한다'가 개화파에서 친일파로 이어지는 이들의 방침이었다면, '조선은 미개하니 지금부터라도 계몽하고 힘을 길러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가 독립지사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조선은 미개하다'는 전제는 동일했지요.


그리고 일제강점기 이후, 격동의 현대사를 거치면서 '조선은 미개하다'는 인식을 보다 강하게 가진 이들이 한국사회의 주도층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인식이 불거져 나오는 대표적인 영역이 바로 소비자들에 대한 기업들의 태도인 것이지요. 우리나라 기업들의 역사와 그들의 관계에 대해 조금이나마 아시는 분들은 그들의 이러한 인식이 당연하다고 느껴지실 겁니다. (격동의 현대사가 한국인들의 마음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나중에 심도 있게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문제는 '한국인은 미개하다'는 인식이 그들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렴하기로 유명한 해외 브랜드들도 한국에 들어오면 고가정책을 폅니다. 품질과 기술, 서비스로 이름높은 해외업체들도 한국에서는 리콜을 해주지 않는 등 한국 고객들을 '호갱취급'하는 데 동참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그렇게 명성을 떨치는 업체들이 왜 우리나라에만 들어오면 그렇게 될까요? 최근 드라마화되어 화제를 끌고 있는 웹툰 '송곳'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이 이쯤 되니까, 사람들은 자조하기 시작합니다. 사실이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우리가 미개하니까 그들이 우리를 호구취급하는 거 아니냐. 우리가 미개하니까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최근의 흙수저 신드롬을 비롯한 사회문제를 다룬 기사의 댓글에는 어김없이 "미개한 국민들 때문에..." 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년 전, 대선 후보를 지낸 어느 국회의원의 아드님이 SNS에 올렸던 글에서 유래된 "국민이 미개하다"는 말은 이제 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인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정모군의 이 글에서 시작된 '미개'라는 용어는 어느새  한국인들의 한국인들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철없는 아이의 언행이라 분노하던 사람들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맞닥뜨리면서 자조적으로 '미개'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별로 바람직한 현상이 아닙니다. 진화론적 해석에서 드러나듯이 

누군가가 '미개하다'는 뜻은 그들이 변화(혹은 진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진화에는 '지질학적인 시간'이 필요한데, 이 지질학적인 시간이라는 것은 수백만년을 훌쩍 넘어가니까요. 즉, 미개한 이들을 그냥 알아서 진화하게 내버려두면 몇백만, 몇천만년이 걸릴 지 모른다는 얘기니까 그게 불가능하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누군가를 '미개하다'고 낙인찍는다는 사실은 그를 포기했다는 말이 됩니다. 그게 우리 자신일 경우에는 더 심각해지는 거지요. 이런 면에서 최근의 현상들을 해석해보면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포기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여러분은 이 나라를 포기하셨나요? 


'그렇다'고 말씀하실 분도 꽤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저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얄팍한 애국심 때문이 아닙니다. 

아직 우리는 한 것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들은 지금과 같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최소 200년 이상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길게 잡아도 60년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러다보니 외형상으로는 어느 정도 성장을 이루었지만 전체적인 균형을 이루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직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미개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할 수 있는 일'은 급격히 줄어듭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미개 도식'이 문제인 것이지요. '한국인은 미개하다'는 도식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가능성들마저 차단하면서, 향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안을 찾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호갱 문제는 단지 소비자 권리의 문제로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한국인의 한국인 자신에 대한 인식의 문제입니다. 호갱이라는 이 시대의 유행어에서 읽을 수 있는 메시지는 '이 인간들은 미개하니 호구 취급해도 된다', '우리는 미개하니 이렇게 살아도 할 수 없다', 두 가지인데요. 그러다보니 상상할 수 있는 대안이 '호갱 되지 않는 법'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나 하나야 약삭빠르게 호갱이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여전히 국민을 호구취급하는 기업은 존재하고, 여전히 호갱이 되는 사람들이 나올 것입니다. 이보다는,

우리는 미개하지 않으니 저들이 우리를 호구취급하게 두어서는 안된다.


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나저나 한국인들은 진짜 미개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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