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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Apr 28. 2017

문화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문화가 안 변해서 답답한 당신께

우리 문화 참 문제 있다. 답답하다. 이런 생각 해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우리 문화에 실망하면서 더 나아 보이는 다른 문화를 동경하기도 하고 좋지 않은 문화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어떤 문화가 마음에 안 들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째, 그 문화에서 떠나는 방법과 둘째, 그 문화를 바꿔 나가는 방법입니다. 첫번째 방법으로는 아예 나라를 떠 버리는 이민 같은 직접적인 길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절이 싫으니 중이 떠나는 거죠. 또는 '나는 여기하고 상관없어, 신경 안쓸래' 하는 심리적 분리도 가능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문화 자체하고는 상관없는 개인적 선택일 뿐입니다. 해당 문화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고 여전히 마음에 안 들 겁니다. 두 번째 방식은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인데요. 이 지점에서 적지않은 어려움과 혼란이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문화라는 것이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쉽게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정치인에게 가서 따지거나, 도로나 건물 앞에 표어를 써붙이고 머리띠에 피켓이라도 들면 문화가 바뀌는 것일까요? 

대회로 문화가 바뀌면 참 좋겠죠.

문화란 특정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낸 적응체계입니다. 그 사회의 유지와 구성원들의 생존이라는 목적에 최적화된 것이 문화죠. 그리고 교육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가 옳다고 생각하고 문화가 정해준 범위 안에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문화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그 문화에서 규정된 법칙을 따른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문화는 여러 사람에게 공유된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바꾸자고 해도 다른 이들이 모두 그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죠.


그러면 문화는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엄밀히 말하자면 단기간에 인위적으로 문화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의 음주문화가 있습니다. 한국사람들 술 많이 먹죠. 주취폭력, 음주운전 등의 사회문제는 물론 알콜중독, 위장병, 간암 등의 건강문제 등 음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천문학적 액수에 달합니다.

음주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각종 캠페인과 운동이 수십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한국의 술 소비량은 여전히 세계 상위권에 랭크돼 있습니다. 맥주나 와인 등 저도수 술을 물처럼 마시는 나라들에 비해 1인당 알콜 소비량은 낮은 편이지만 소주로 대표되는 증류주 소비량은 당당히(?) 세계 1위죠.  


이러한 한국인들의 음주문화는 무려 2000년 전부터 기록에 남아 있는데요.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보면 동이(부여, 고구려, 마한 지역)사람들은 며칠 동안 밤새워 놀면서 음주가무하길 좋아한다 했습니다. 어딘가 많이 익숙한 모습이죠? 한국의 음주문화는 적어도 2000년 동안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전통적 신앙인 무속같은 경우도 끈질기게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및 개발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신당이 파괴되고 기독교 등 새로운 종교가 유입되면서 사라진 것 같았던 무속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아무리 화려한 도시라도 오래된 구역으로 조금만 들어가 보면 요런 깃발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는 변화합니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 문화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수많은 문화가 생겼다 사라지는 것도 사실이지요. 8,90년대만 하더라도 상당 부분 남아있던 가부장적 유교사회의 모습은 현재 많이 달라졌습니다. 명절과 제사의 풍경도 많이 바뀌었구요. 특히 농경사회의 풍습들은 거의 사라졌다고 할 수 있죠.


과연 어떤 문화는 오래 지속되고 어떤 문화는 금방 사라지는 것일까요? 오래 유지되는 문화는 또 어떤 식으로 그 모습을 달리해 왔던 걸까요? 문화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원하는 방향으로 문화를 바꾸어 나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문화는 욕구와 욕구충족의 체계입니다. 문화에 대한 가장 심리학적인 정의라고 할 수 있죠. 이 관점에서 보자면,

문화 변화의 키워드는 욕구입니다. 


다시 말해, 그 문화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욕구가 변화하면 문화는 변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교는 더이상 우리 사회의 지배적 사상이 아니지만 갑질, 꼰대, 나이 중시의 문화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는 유교의 영향력이라기보다는 남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하는 한국인들의 욕구와 관계 있는 현상일 것입니다.


음주문화가 2000년 넘는 시간 동안 지속돼 왔다는 사실은 한국인들이 음주라는 행위를 통해 충족하고 있는 욕구가 그만큼 크다는 사실이겠지요. 한국인들에게 음주의 기능은 단지 알콜을 섭취하는 것 이상이라는 뜻입니다. 무속이 그보다 더 오랜 세월동안 한국인들 곁에 존재해 왔다는 것 역시 한국인들이 무속에서 뭔가를 충족해 왔다는 뜻일 겁니다. 그리고 무속이 그 기능들을 수행하는 한, 한국에서 무당집이 사라질 이유는 없겠죠. 


반면, 사람들이 더 이상 무엇을 원하지 않게되면 그 문화는 사라집니다(바뀝니다). 예를 들어, 현재의 젊은이들은 결혼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겠습니다만, 그 이전에 가문이나 핏줄보다 개인의 삶에 우선순위를 두는 쪽으로 사람들의 욕구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르신들에게 결혼은 사람이라면 꼭 해야하는 과제와 같은 겁니다. 더욱이 자녀의 결혼은 어르신 자신의 인생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그분들의 인생은 자식들을 잘 키워서 시집장가 보내고 손자손녀의 재롱을 보는 데에서 완성되는 것이죠.

결혼한 아들이 보고 싶으신 겁니다

이렇듯 문화의 변화는 다양한 층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워낙에 다양하기 때문이죠. 짧은 시간에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은 한국의 경우에는 세대차가 훨씬 더 큽니다. 각 세대가 성장하고 살아온 조건이 워낙에 다르기 때문에 그 욕구의 차이도 대단히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에서 비롯된 생각의 차이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문화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가장 원하는 일들을 이루려 할 뿐입니다. 이것이 문화의 변화에 있어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또 하나의 지점입니다.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이상은 저마다 다릅니다. 또한 내가 원하는 상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죠.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고 해서 다른 이들의 생각을 틀렸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요? 당신들이 틀렸다고는 말할 수 있겠죠. 싫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을 배척하거나 차별할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더 나은 사회에 대한 합의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다음에는 서로가 노력할 부분을 찾아내서 함께 가자고 권유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문화 변화의 움직임은 당사자들의 욕구가 직접적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과도한 사교육은 왜 안 없어질까요? 그걸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할까요?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교육을 시켜야 자녀들이 성공할 수 있고 그래야 자녀들이 행복할 수 있으며 그것이 부모의 도리이자 행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 생각부터 바뀌지 않으면 한국 교육의 문제는 영원히 지속될 겁니다.


요새 이슈가 된 동성애 문제도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성향을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데에는 동의를 하실 겁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동성결혼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옳다고 믿고 살아온 문화적 인식이 그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우리의 문화적 인식은 잘못된 것도, 미개한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그 중에 하나의 태도일 뿐이죠. 다만, 그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이냐에 대한 합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합의의 방향에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깨어있는 내가 미개한 너희들을 가르쳐야 하고, 바뀌지 않는 너희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의 접근으로는 문화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가장 완고해집니다. 문화란 자신이 가장 옳다고 믿는 것들이구요. 이것이 문화를 바꾸는 데 있어 가장 힘든 부분일 겁니다. 


더 나은 나라, 더 나은 문화를 바라는 사람일수록 답답함을 많이 느끼겠지요. 빨리 좋은 방향으로 문화가 바뀌기를 바라는 나머지 나라를 팔아잡순 분들도 계실 정도입니다. 하지만 2017년,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변화의 기로에 선 대한민국에서 그 따위 선택이 답이 돼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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