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 의외로 간단한 그 이유
커버 사진은 이탈리아 유벤투스의 축구선수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입니다. 잘생겼죠? 이탈리아 남자들은 조각미남으로 유명합니다. 게다가 예닐곱살 먹은 애기들부터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까지 작업멘트를 친다는 이탈리아입니다. 살살 녹는 언변에 얼굴까지 받쳐주니 설레지 않는 여심이 있을까 싶은데요..
우스갯소리로 여자분들이 이탈리아에 갔다가 돌아오면 한동안 일상생활이 안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미남들만 보다가 한국에 와 보니 오징어들만 가득하더라는거죠. 뭐 동해안 오징어 덕장도 아니고...
이탈리아 남자들은 왜 이렇게 조각처럼 잘생긴 걸까요? 아니, 한국 남자들은 왜 이렇게 못생긴 걸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우리가 아는 조각들은 다 이탈리아에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는 그리스-로마문명이 자리했던 나라입니다. 그리스는 예술에서 완벽한 비례를 구현하려 했던 문명입니다. 그리스 문명을 이어받은 로마문명은 지중해를 둘러싼 고대세계를 지배했던 대제국이었던만큼 화려한 건축물과 수많은 조각을 남겼습니다.
더군다나 서양문명의 꽃을 피운 르네상스의 중심지 역시 이탈리아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대 예술가들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걸작들을 이탈리아에 남겼습니다. 이런 역사를 지닌 이탈리아가 조각의 나라가 된 것은 당연하죠.
이탈리아에서 만든 조각이 누구 얼굴을 본따 만들어졌겠습니까? 이탈리아 남자들을 보고 만들었겠지요. 이것이 이탈리아 남자들이 조각처럼 생긴 이유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사실이 숨어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미(美)의식'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인데요. 한국사람들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서양)사람들이 한국(혹은 비서양)사람들보다 잘 생겼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유럽남자=조각, 한국남자=오징어라는 농담이 통용될 정도니 말이죠.
여자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유럽, 특히 러시아나 동유럽쪽에 다녀온 남자분들은 요정을 보고 왔네, 천사를 보고 왔네.. 난리입니다. 인천공항에 들어오는 순간 노량진 수산시장이 펼쳐졌다는 말도 빠지지 않지요. 과연 유럽여자들이 한국여자들보다 더 예쁠까요?
우리가 유럽여자들을 요정같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이탈리아 남자들이 잘생긴 이유와 같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요정들은 전부 유럽여자들을 모델로 했기 때문이죠. 사실 요정(엘프, elf) 자체가 유럽의 정령설화에서 온 것이니 요정의 모델을 아시아나 아프리카 사람을 쓰기도 뭣한 노릇입니다.
사실 이탈리아 남자가 이탈리아 조각을 닮고 요정(엘프)이 유럽여자를 닮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영국사람들은 전부 영어를 하고, 진도에 갔더니 개가 전부 진돗개라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이탈리아 남자가 한국남자보다 더 잘생겼고 유럽여자가 한국여자보다 더 예쁘다는 인식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은연중에 이런 인식을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다음 물음에 대답해 보시죠.
1. 한국사람들은 키가 크다/작다.
2. 한국사람들은 다리가 길다/짧다.
3. 한국사람들은 눈이 크다/작다.
4. 한국사람들은 코가 높다/낮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키가 큰 것이 기준이면 한국사람들은 키가 작다는 대답이 나올 것이고, 코가 높은 것이 기준이라면 한국사람은 코가 낮다는 대답이 나올 겁니다.
그런데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인들은 키가 작고, 다리가 짧으며, 눈이 작고, 코가 낮다고 대답하셨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는 얘기는 우리가 '키 크고 다리 길고 눈 크고 코 높은' 사람을 미(美)의 기준으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사람들은 미의 기준에 못 미치는 못생긴 사람들이라는 인식과 함께 말이죠.
이런 생각은 '진화론적 사고'의 산물입니다. 진화론적 사고란 세계의 여러 나라, 여러 문화가 서로 다른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이 진화의 결과라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아직도 원시적인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인류진화의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고 고도로 문명화된 유럽의 어느 나라는 진화의 정점에 있다는 것이죠.
진화론적 사고에 대해서는 제 다른 글(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https://brunch.co.kr/@onestepculture/9)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따르면 어떤 민족, 국가가 진화의 낮은 단계에 있다는 것은 그들이 덜 발달되고 미성숙한 사회라는 것을 의미하며, 그들의 생김새 역시 진화의 결과로 설명됩니다. 즉 덜 진화한 사람들이 더 진화한 사람들보다 더 못생겼다는 것이죠.
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더이상 공식석상에서 진화론적 인식론을 언급하는 것은 금기가 되었습니다만 오랫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배해 온 진화론적 사고는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가끔씩 서양인들의 동양인 비하에 대한 기사가 올라오면 분노에 찬 댓글들이 달립니다. 일단은 분노할 일 맞습니다. 서양인들이 이런 포즈를 취하는 것은 동양인들의 외모(길고 쌍꺼풀이 없는 눈)를 비하하는 것으로, 동양인들을 자기들보다 열등한 존재로 보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사실 우리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건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우리 자신에게 말이죠. 바로 유럽남자가 한국남자보다 잘생겼고 유럽여자가 한국여자보다 예쁘다는 인식 말입니다. 제 얼굴에 침 뱉기도 이런 침 뱉기가 없습니다.
더 나쁜 것은, 그래도 한국사람들은 동남아 사람들보다, 아프리카 사람들보다는 잘생기고 예쁘다는 인식입니다. 서양사람들보다는 조금 못났지만 그래도 니들보다는 낫다..는 식인데요. 진화론적 질서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매우 악랄한 인종주의적 태도입니다.
이런 인식이 제대로 된 인식일까요?
당연히 바람직한 생각일 리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열등하다고 믿는 이들이 자신보다 우월한 이들 혹은 자신보다 더 열등한 이들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며 자라고 있을까요?
이것이 우리 안의 미의식를 되돌아 봐야 할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