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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Mar 17. 2019

한국에는 왜 욕이 많을까?(feat.일본)

욕의 심리적 기능과 문화

한국에는 욕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들만 꼽아봐도 개..가 들어가는 종류, 조ㅈ, 씨ㅂ 등 성기가 들어가는 종류를 비롯하여, 과거의 형벌에서 비롯된 것들(오라질, 젠장할, 육시랄..등), 염병, 지랄, 미친.. 과 같이 신체/정신적 질병과 관련된 종류, 그리고 근친상간 등의 패륜적 의미인 것들(니미랄, 제기랄, 지기미.. 등) 등 상당히 많습니다.

차란~

이 외에도 동물과 관련된 것, 신체의 장애나 훼손과 관련된 것, 등 다양한 범주의 욕들이 있고, 또 이상의 것들이 조합된 형태들까지 하면 매우 다양한 욕이 존재하고 또 씌여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한국에는 다양한 욕들이 수록된 욕 대사전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반면 일본에는 욕이랄 것이 거의 없습니다. 일본 애니나 드라마 등을 보면 기껏해야 바카(ばか 바보)나 아호(あほ 멍청이) 정도를 들을 수 있는데요. 바카는 바카야로에서 왔는데 한자로 말 마(馬)자와 사슴 록(鹿)자를 씁니다. 말과 사슴이 욕이라니 참 귀엽죠?

우리말로 젠장이라고 종종 번역되는 '칙쇼'는 축생(畜生), 즉 짐승이란 뜻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짐승'은 연인 사이에서도 가끔 쓰는 뭐 그런 표현에 불과합니다(쟈기 짐승~...). 여담으로 젠장은 '난장(亂杖)'이라는 형벌에서 온 말인데 난장은 죄인이 죽건 말건 아무데나 함부로 때리는 험한 형벌을 뜻합니다.


'아호'도 멍청이, 천치 정도의 수준입니다. 물론 일본에도 이보다는 많은 비속어가 있습니다만 '이러저러한 놈' 정도로 상대를 경멸적으로 부르는 종류가 많고, '꺼져라' 내지는 '죽어버려' 정도이지 한국말처럼 구체적으로 '어떻게어떻게 죽여버리겠다'는 표현은 거의 없습니다.

XXX를 확 XXX해서 XXX를 XXX 하면...

아무래도 우리가 한국사람이다 보니 한국 욕을 더 많이 아는 것도 있겠고 외국의 다양한 욕 표현들을 알아들을 만큼 외국말을 모르는 것도 사실이겠습니다만, 적어도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자면 한국의 욕이 훨씬 많고 다양하다는 것은 사실 같은데요.

 

왜 한국사람들은 욕을 많이 하고 일본사람들은 욕을 별로 하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이 욕을 많이 하니까 나쁜 사람들이고 일본사람들은 욕을 안 하니까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네 맞습니다. 초등학교 수준에서 딱 맞는 말입니다. 친구들끼리 욕 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 착한 어린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문화는 '착하다 나쁘다'로 평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문화는 특정 집단의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온 것으로 사회의 유지와 존속을 위한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욕의 기능은 무엇일까요?

욕은 표면적으로 상대에 대한 공격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욕의 표현들을 보면 대부분 상대에 대한 멸시와 조롱, 저주와 협박에 관한 내용들이죠. 그러나 욕의 현시적 의미가 실제로 실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욕하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세상을 뒤흔들 끔찍한 반사회적 범죄겠죠.

X를 갈라 X를 쪽 빼고 XX를 꺼내서 구워드신 분

물론 한국에 그런 범죄가 넘쳐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욕의 실질적인 기능은 따로 있다고 봐야 하겠죠.

바로 부정적 감정을 표출한다는 것입니다.


욕을 하는 상황은 좌절이나 상실 등에 의해 화가 치솟을 때 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 미움도 함께 하죠. 이러한 부정적 감정들은 정신 건강에 매우 해롭습니다. 좌절이나 상실이 빨리 회복되고 상대방의 사과와 사죄가 뒤따른다면 좋겠지만, 인간사에 그런 일이 매번 있을 거라 기대하긴 어렵죠.  


이때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억누르기만 한다면 어떨까요. 한국에서는 그럴 때 화병이 난다고 합니다. 화병은 화가 나도 제대로 화를 낼 수도 없고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할 사람도 없을 때 발생하는 병입니다. 욕은 이러한 나쁜 감정을 배출해줍니다.


화 나는 일이 있을 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욕이라도 시원하게 한바탕 한다면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요? 없는 데서는 나랏님도 욕한다지 않습니까? 한국에서 욕은 평소에 누적된 부정적 감정을 표출하는 수단입니다.


둘째, 욕은 욕하는 사람을 쎄고 위험해 보이게 해 줍니다. 일종의 자기 과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아이와 어른 사이에서 한창 자기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청소년들이 욕을 많이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부러 거친 말을 하면서 다른 이들이 자신을 무시하지 못하게 방어하는 것이죠.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도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은 욕이 자연스러운 한국에서도 평판이 좋지는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감정조절능력이 부족하거나 욕을 통해 자신의 허약한 내면이 드러나는 것을 방어하려는 이들입니다.


한편, 한국문화에서 욕이 사용되는 맥락이 또 하나 있는데요. 욕은 의외로 친한 사이에서도 많이 쓰입니다. 특히 어릴 때부터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X알 친구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어보면 대부분이 욕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서로를 원수로 여기고 공격하려 한다고 생각하면 안되죠.


즉, 한국문화에서는 욕이 정(情)스러운 관계의 상징이기도 하다는 말씀입니다. 요새는 찾아보기 힘든 시장통의 욕쟁이 할머니들은 세상에 고객들에게 쌍욕을 날리며 장사를 하십니다. 일부러 욕쟁이 할머니의 가게에 찾아가는 이들이 원하는 것은 욕 너머에서 느껴지는 할머니의 따뜻한 정입니다.

 욕이 문자 그대로의 욕이 아니라 욕을 나누는 이들 사이의 관계의 깊이와 질을 나타내는 것이죠. 결국 욕은 한국문화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표현하는 방식이자 의사소통의 방법입니다.


문화심리학에서는 한국문화를 '표출형 문화'로 분류합니다. 자신의 영향력을 주변에 미치기 원하는 '주체성 자기'를 갖고 있는 한국인들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자신의 가치가 손상되는 것에 민감합니다. 욕은 이러한 한국인들이 자신을 방어하고 자신을 드러내며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문화적 습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이 욕을 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본인들은 부정적 감정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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