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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Apr 01. 2019

한국인들이 자기소개가 어려운 이유

한국인 자기(self)의 속성

한국인들은 자기소개를 잘 못합니다. 자신에 대해 줄줄줄줄 읊어대는 외국인(주로 서양인)들에 비해 쭈뼛쭈뼛 말을 흐리거나 자신이 다니는 학교나 회사 이름을 대는 한국인들을 보면, 한국인들은 자기표현에 서툴다던가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는 비판 한 자락 늘어놓아야 이 나라 참된 지식인의 면모일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늘 그렇듯이, 한선생은 한국인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자 오늘도 이 글을 씁니다.


심리학에는 self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자기(自己)로 번역되는 self는 심리학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입니다. self는 개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실체로서 그 사람의 성격, 정서, 행동, 의지 등에 광범위하고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self는 영어입니다. 영어를 비롯한 서구의 언어에는 self에 해당하는 단어와 이와 관련된 용법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재귀대명사, 재귀적 용법 등이죠. self는 이러한 서구의 언어습관이 개념화된 것입니다. 따라서 self에는 이 단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문화적 맥락이 담겨있습니다.


우선 self는 당사자인 나 자신의 이성적 의식을 통해 발견되고 논리적으로 체계화, 구조화되며 개인의 일상적 삶 속에서 참고의 준거로 활용됩니다. 다시 말해, 어떤 행동을 할 때 근거로 사용된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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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서구인들에게 self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증거가 됩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가 불안(anxiety)입니다. 존재에 대한 안정감을 얻기 위해 서구인들은 자신을 대상으로 한 자기관찰을 빈번히 수행합니다. self는 자기관찰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self-concept)들로 구성되죠.

따라서 self-concept이 자신의 real self에 가까울수록 바람직하고 또한 정상적입니다. 반면 자기개념(self-concept)이나 자기상(self-image)가 비현실적일수록 정상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의 self에 대한 집중과 주의를 통해 self를 분석하고 명확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서양사람들이 자기소개를 잘 하는 이유입니다. 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이를 개념화하는 것이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한국인에게 있어 self에 상응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한국에서 self는 자기(自己; one's own body)로 번역됩니다. 영어의 self에 해당하는 적합한 한국어가 없기 때문에 영어의 ‘I’의 뜻에 해당하는 ‘자기’를 번역어로 채택한 것이죠.


일상적인 한국어에서 서양의 ‘I’에 상응하는 말은 ‘나’입니다. ‘자기’와 같은 뜻이지만 한국에서 ‘자기’라는 말이 사용되는 경우는 매우 제한되어 있는 반면 ‘나’라는 말은 대부분의 경우에 일반적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self에 상응하는 단어가 없다고 한국인에게 self 자체가 없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인에게도 자신의 행동의 근거가 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인에게 의미하는 바와 그것이 형성되는 과정 등은 self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우선, 한국인의 자기는 동양 집단주의 문화의 상호의존적 자기(interdependent self)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일원으로 인식하는 집단주의 문화에서 개인은 자신을 타인과 구분되는 안정적이고 자명한 존재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신만의 고유한 속성을 찾아내어 개념화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대신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것(예의범절)이나 사회적으로 부여된 가치와 이상(道理)을 따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사람들은 이를 사회적 규범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때문에 한국인(동양인)들은 반성을 많이 합니다. 반성이란 본래 비추어 본다는 뜻입니다. 특히 자기반성(self-reflection)은 서구문화에서 자신의 행동을 자신의 self에 비추어 확인한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한국인들에게 반성이란 사회적으로 부여된 self에 반하거나 미달된 행동을 한 자신을 깨닫고 회개하는 의미로 쓰입니다.


한국인에게는 자신의 고유한 self를 발견하는 일보다 사회적으로 부여되고 규정된 이상적 자기상ideal self을 자신의 마음속에 내면화하고 이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죠.  개인의 고유성과 독립성을 강조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존재의 근거’로서의 self를 구축할 필요성도 없으며, 자신의 행위와 self를 일치시키려는 노력도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기소개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내게 주어진 일들에 충실하면 됩니다. 남들은 내가 한 일들로 나를 파악할 겁니다. 굳이 내가 어떻다 소개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또한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해놨는데 나중에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일 경우,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 자기의 보다 중요한 특징은,

한국인들은 추론에 의해 자기를 인식한다는 점입니다.


서양인의 self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것이 ‘객관화(objectified)’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self는 나(I)이지만 내가 객관적으로 인식하여 마치 타인처럼 관찰하고 참고(reference)할 수 있는 실체entity로서의 나입니다.


'객관화된 나'가 서양인들의 자기인식에 중요하다는 것은 서구언어의 '목적격'의 사용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me(I), him(he), her(she) 같은 애들 말입니다. 서양인들은 친구집에 찾아가서 초인종을 누르고 "누구세요?Who is it?"라는 질문에 "It's me."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me는 '누구세요'라고 묻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본 나(I)를 표현하기 위한 말입니다. 그 말을 여기 서서 대답하고 있는 주체인 내가(I) 하는 것이죠. 주체로서의 나(I)와 객체로서의 나(me)가 명확히 구별되어 있습니다.

나야 나

반면, 한국인의 자기인식은 서구의 자기(self)와 같은 객관적 실체와 같은 자기를 대상으로 한 인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누구세요?"라는 물음에 우리는 "나야"라고 대답할 뿐입니다. 네가 거기서 누구냐고 묻는 나와 여기 서서 대답하는 나는 구별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국인이 ‘나’를 파악하는 방식은 추론(inference)이 됩니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을 보니 내 마음은 이렇구나’ 하는 식이죠. 한국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내 마음이 어떠하다’나 ‘어떤 느낌 혹은 생각이 든다’는 표현에는 ‘내 마음을 느낌으로 짐작한다(感知)’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이렇듯 한국인들은 자신의 마음을 자신의 다양한 행동이나 생각을 통해 인식하며, 이러한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내재된 대표적인 성향을 추론하여 자신에 대한 내용들을 구성합니다. 이러한 추론적 자기인식은 한국인 마음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self라는 개념은 없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나'는 매우 중요합니다. 나에 대한 생각이 마음의 질을 규정하니까요. 한국인 마음의 질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한국인 마음의 질https://brunch.co.kr/@onestepculture/266)을 참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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