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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Aug 02. 2017

국뽕은 나쁜 것인가?

자기객관화의 두 방향

국뽕이란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나라 국(國)에 히로뽕(필로폰)의 뽕을 합친 말로 나라에 대한 자부심에 과도하게 도취된 상태를 꼬집는 표현인데요. 아마도 고대 한국사에 대한 과도한 해석을 경계하자는 의미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왜 그런  것 있잖습니까.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들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한 그런 주장들 말입니다. '한때는 우리가 이렇게 위대했었구나'를 빼고 나면 상당히 빈곤해질 수밖에 없는 그런 얘기들이죠.

이 지도는 가상의 사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국뽕을 경계하자는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자국에 대한 과도하고 맹목적인 애국심은 국수주의 또는 쇼비니즘(chauvinism)이라 하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다른 나라에 대한 무시와 차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쇼비니즘이 국가의 정책이 되면 나치즘이나 파시즘으로 치닫기 쉽죠.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지는 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보면 뼈저리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국뽕을 새로운 맥락에서 사용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국뽕에 적극적으로 도취되는 케이스인데요. 해외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을 비롯한 한국인들이 좋은 활약을 펼쳤을 때나 한국이 긍정적인 일로 세계에 알려지는 경우에 사람들은 '주모'를 찾습니다.


웬 주모냐구요? '국뽕 한 사발 내올' 주모입니다. 의도적으로 국뽕에 취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들어간 표현입니다. 최근에는 촛불혁명으로부터 이어진 평화적 정권교체와 국정정상화 등이 국뽕의 주제로 떠오르기도 했죠. 작년과 올해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민주주의의 대향연이었습니다. 과연 뽕이 차오를 만하지 않습니까?

주모 과로사할 지경..

그런데, 이것은 좋지 않은 징조일까요? 한국과 한국문화만이 우수하다고 믿는 한국인들은 결국에는 나치당을 만들어 세계를 3차 세계대전으로 끌고 들어갈까요?


저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뽕을 경계해야 하는 경우는 그것이 맹목적이 될 때입니다. 다시 말해 객관적 자기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경우죠.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고 그러니까 너희들은 못났다.. 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객관화가 되지 않은 사람은, '나도 잘났지만 너도 잘났고, 내가 이것은 잘 하지만 저것은 조금 부족하다.. 그것은 너희에게 배울 점이다'와 같은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스스로의 세계에 갇혀 자기만 옳다고 믿으며 살아가거나 자신들의 우수성을 전파하기 위해 다른 이들을 도구로 여기는 일이 벌어지겠지요. 이때 국뽕은 국수주의(쇼비니즘)이 됩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모든 국뽕이 국수주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국뽕에는 아주 중요한 동기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바로 집단 자존감(collective self-esteem)의 유지입니다. 

자존감(self-esteem)의 중요성은 잘 아실 겁니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또 그래야 정신건강을 유지하고 삶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을 왜곡하기도 합니다. '자기고양편향(self-serving bias)'이라는 경향인데요. 이를테면, 나는 남들보다 더 잘생기고 능력있다... 고 생각하는 것이죠.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많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존감 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고양편향

개인 수준의 자존감은 자신이 속한 집단 수준에도 적용할 수 있는데요. 집단정체감 이론의 권위자 타지펠은,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정체감을 갖고(self-concept) 자존감을 유지하는 것처럼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정체감을 갖고 자신의 집단을 타집단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고대 역사가 헤로도토스부터 언급되던 자민족 중심주의(ethnocentrism)은 이유가 있는 것이죠. 어떤 사람(민족)들이나 자신들이 가장 우수하고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중국사람들에게서 나타난 것이 중화(中華)사상이고 유럽인들에게서 나타난 것이 사회진화론인 것입니다. 


물론 자민족 중심주의가 패권주의나 제국주의 따위와 결합되면 매우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집니다만, 어떤 나라(민족) 사람들이 스스로 국뽕에 빠지는 일 자체는 문화보편적인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상식적으로, 개인의 자존감이 개인의 심리적 적응에 그렇게 중요한데 집단 차원의 자존감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요?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국뽕(자민족 중심주의)은 보편적 현상이며 이는 어떤 사람들의 집단 및 개인적 자존감 유지라는 심리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은 국뽕은 위험합니다. 다시 말할 필요도 없겠죠. 하지만, 자신의 긍정적인 면은 보지 못하고 비판만 하는 것 역시 자기 객관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대단히 병리적인 자기 인식에 가깝습니다. 개인의 낮은 자존감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는 일일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시리라 봅니다. 



국뽕을 지나치게 경계하는 이들은 나치와 파시즘의 광기를 목격했던 서구의 지식인들과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그들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민족주의가 국수주의가 되고 국수주의가 전체주의가 되는 역사를 눈앞에서 본 사람들일 테니까요. 


그런데 꼭 그렇지도 않은 사람들이 민족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면서 국뽕을 나치와 동급으로 취급하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민족'은 국민국가 시대에 만들어진 허구적 개념이므로 민족을 앞세우는 그 어떤 행위도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는데요.


이러한 인식은 일단 일부만 옳습니다. 민족(nation)은 18~19세기 경 유럽에서 생겨난 개념입니다. 이전까지 가문과 지역으로 느슨하게 나뉘어 있었던 유럽은 산업혁명 이후, 자원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더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를 필요로 했습니다. 

19세기 유럽 상황

수많은 전쟁이 벌어졌고 국경선이 날마다 새로 그어졌습니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은 프랑스 영토였던 알자스-로렌 지역이 독일(프로이센)로 편입될 당시를 잘 보여주고 있죠. 당시 유럽 제국은 새롭게 정해진 국경선에 맞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역사와 전설을 최대한 활용합니다.


타민족의 침입에서 나라를 구한 민족 영웅을 발굴하여 동상을 세우고, 중구난방이었던 왕실 행사 같은 것들을 정비하여 민족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국가를 세우려고 한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들은 에릭 홉스본의 '만들어진 전통'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만들어진 개념이 '민족'이니만큼, 민족은 허구라는 것이죠. 이 설명은 근대 유럽에는 적합할 수 있습니다만 그 외의 지역에 적용하기에는 의문이 따릅니다. 당장 한, 중, 일 동아시아만 해도 서로를 문화와 언어가 다른 타자로 인식해 온 세월이 최소 천년 이상입니다. 


또한 부족이나 연맹 등 근대적 국가체제가 없었다는 사실이 민족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족 연맹체였던 아랍 국가들은 외세와의 전쟁을 치르며 아랍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새겼습니다. 노예로 서양에 끌려갔던 아프리카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정체성이 필요한 존재이며, 인종, 언어, 민족(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등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따라서 민족(nation)이란 개념이 발명되었을지는 모르지만 그 이전부터 사람들은 그와 비슷한 개념을 발달시켜왔던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민족이 허구라는 인식이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역사와 문화, 언어를 공유하는 민족이라는 개념은 현재도 국가를 구성하는 중요한 개념이며, 국제 정세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단위에 의해 움직입니다. 하다못해 외국에 나갈 때 우리는 대한민국 여권이 있어야 하고, 외국과의 무역에도 국가간의 협약이 개별 주체의 활동을 제한하지 않습니까. 


상황이 이런데 국가나 민족이란 단위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죄악시 하는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개인이 세계와 만날 때는 민족이든 뭐든 간에 그가 속한 집단이 그의 활동을 중재합니다. 그 사실은 변할 수 없죠. 우리가 문화를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기도 합니다.



최근의 국뽕 현상은 낮아져 있던 한국인들의 집단 자존감을 바로잡기 위한 반작용이라 생각됩니다. 식민지 역사, 내전, 독재정권 등 사실 한국의 현대사는 한국인들에게 낮은 집단자존감만 제공했을 것입니다. 경제적 성취는 낮은 정치신뢰도나 빈곤한 문화적 영향력에 의해 폄하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최근들어 경제적 성취 뿐 아니라 스포츠, 문화, 정치 등 자존감을 고양할 만한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면서 낮았던 한국인의 집단자존감이 제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중에 우려할 만한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또 철저한 자기객관화의 과정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랑스러운 것은 자랑스럽게 느끼면 되고 창피한 것은 창피하다고 느끼면 됩니다. 내가 창피하다고 느꼈다고 해서 상대가 잘못된 것도 아니며, 내가 자랑스러운 것까지 부끄럽게 느낄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기객관화이며 세계화시대에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건강한 자존감을 갖는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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