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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Aug 22. 2017

가족같은 vs 가, 족같은

한국인들의 문화적 타인인식

아들 같아서 그랬다는 박찬주 대장 내외의 공관병 갑질, 손녀같아서 그랬다는 전 국회의장 박희태씨의 캐디 성추행. 가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갑질이 이슈입니다. 그들은 정말로 집에서 아들에게 전자팔찌를 채우고 딸의 몸을 함부로 더듬는 것일까요?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우린 잘 압니다. 그러면 그들은 왜 이따위 변명을 하는 것일까요? 공관병 갑질 사건 이후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한국사람들의 가족에 대한 생각이 문제일까요? 오늘은 한국인들의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제 가족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파렴치한 짓을 저지른 이들의 입에서 아들이, 딸이, 가족이란 말이 언급됩니다. 이들의 행위는 결코 일반적인 한국 가족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 한국문화와 관련 있는 현상이기는 하죠. 그것은 바로 '갑질'입니다. 


갑질이란 자신의 지위나 권위를 바탕으로 상대방이 원치 않은 일을 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문제는 이 갑질을 정당화하는 방식인데요. 여기서 박찬주 대장 내외나 박희태씨를 비롯한 많은 갑질러들이 들고 나오는 것이 '가족'이라는 점입니다.


이들의 행위 이면에는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어떤 일이든 용인받을 수 있다'는 가정이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변명으로 가족을 들고 나오는 것이죠. 바로 이 지점이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갑질러들의 '가족 운운'은 한국인들의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퇴니스는 사회의 형태를 게마인샤프트(Gemeinshaft)와 게젤샤프트(Gesellshaft)로 분류하고 있는데요. '공동사회'라는 뜻의 게먀인샤프트는 혈연과 정(情) 등의 정서적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한 가족, 촌락 등의 집단을 의미하며, '이익사회'로 옮길 수 있는 게젤샤프트는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맺어진 회사, 정당 등을 뜻합니다.

Ferdinand Tönnies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의 인간관계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과 회사가 다른 것처럼 말이죠. 게마인샤프트 내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훨씬 많이 이해하고 또 상호의지합니다. 또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게젤샤프트 내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얻게 되는 이익에 상응하는 행동만을 합니다. 그것이 계약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한국인들은 게마인샤프트를 기반으로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살았던 지역공동체는 한 동네 사람들이 거의 다 친족들로 구성돼 있는 소위 집성촌(集姓村)이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논밭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한 가족이었던 것이죠. 다시말해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타인을 '가족'으로 인식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타인 인식은 현재까지 이어집니다. 더이상 농사도 짓지 않고 집성촌을 이루어 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가족 내의 관계를 계약을 통한 공적관계에서까지 기대합니다. 이런 방식의 타인인식을 '가족확장성'이라 합니다. 가족 내의 관계가 일반적인 영역의 인간관계까지 확장된다는 뜻이죠.

이 사실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부르는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직접적인 친인척 관계가 아니더라도 친족호칭으로 타인을 지칭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주머니, 아가씨 등등이 그것이죠. 하다못해 식당에서 일하는 분(나이든 여성)을 우리는 '이모'라 부르지 않습니까. 이모는 어머니의 동성형제입니다. 가족도 매우 가까운 가족이죠.

일부 사람들이 비하의 호칭으로 오해하고 있는 아줌마는 아주머니의 준말로 부모와 같은 항렬의 여자 어른을 부르는 말이며, 일부 사람들이 술집에서 일하는 직업여성을 부르는 말로 오해하고 있는 아가씨도 아내가 남편의 여동생을 칭하는 말에서 왔습니다. 


우리는 낯선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도 가족이 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우선 서로의 연배를 확인한 후 사적으로 조금 친해지고 나면 서로를 형/아우(나이 차이가 크지 않을 때), 삼촌(이모)/조카(나이 차이가 한 세대 정도), 할아버지(할머니)/손자손녀(나이 차이가 두 세대)의 관계로 들어가는 것이죠. 


이러한 관계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가족의 정입니다. 어려운 말로 '정서적 지지'라고 합시다. 전통적 가족이 사라지고 사람 사이의 따뜻함을 느끼기 어렵게 된 현대사회에서 가족처럼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개인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대단한 자원입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불편해 하는 오지랖도 바로 이런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더 이상 남이 아닌 관계가 되었으니 당연히 공유해야 할 영역이 넓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진짜 가족처럼 말입니다. '남이 아니니까' '남 일 같지 않아서' '동생 같아서' '아들/딸 같아서' 라는 표현은 여기에서 나옵니다.


물론 두 사람의 (유사)가족관계가 서로 합의된 것이라면 오지랖이 문제될 것은 별로 없습니다. 손아랫사람은 진짜 동생처럼, 아들/딸처럼 윗사람에게 의지하고 손윗사람은 진짜 형/누나처럼, 부모처럼 아랫사람을 챙겨주고 돌봐주는 바람직한 관계도 많이 있죠.


문제가 되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서로 '가족'으로 합의되지 않은 경우입니다. 병사와 상관은 국방의 의무라는 업무를 매개로 형성된 관계이고, 캐디와 손님은 서비스를 주고받는 계약적 관계입니다. 회사의 상사와 부하의 관계도 마찬가지죠. 상대가 원하지 않은 관계를 자신의 우월한 지위로 강요하는 것은 갑질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고 해서 아무 일이나 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부자유친, 장유유서 등 유교적 규범이 강조한 것은 자신의 위치에 맞는 책임과 의무를 다 하라는 것이지 부모와 연장자의 말에는 무조건 복종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갑질은 유교적 전통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권위주의 문화의 잔재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혼란은 한국인들이 예전부터 가져왔던 인간관계를 현대사회의 인간관계에서도 적용하면서 생기는 현상인 듯 합니다. 상호이익에 따른 계약이라는 게젤샤프트적인 관계가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것이죠. 전통적 가치와 잘못 전해져 내려온 인습, 새 시대의 가치가 뒤섞이면서 여러 분야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적 영역의 인간관계와 사적관계는 반드시 구별되어야 합니다. 


공적 영역에까지 사적 관계를 적용하는 것은 대인관계의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높일 뿐 아니라 부패와 부조리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의 원인이 됩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또 하나의 가족이란 카피를 쓰고 있는 회사가 그 가족 구성원들에게 어떤 일들을 저질러 왔는지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가족 좋습니다. 편하고 따뜻하고 든든하고 의지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족에서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가치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 없는 무조건적인 권위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묵인되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상대의 의무만 요구하는 일도 가족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자신의 가족에게 하지 않는 행동을 다른 이들에게 해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그들을 '가족'이라 생각한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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