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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Sep 03. 2019

한국의 현대사는
트라우마로 가득하다?

1화. 한국인들이 쉽게 우울과 불안에 빠지는 역사적인 이유

1화_한국의 현대사는 트라우마로 가득하다?

/한국인들이 쉽게 우울과 불안에 빠지는 역사적인 이유




한국의 현대사는 트라우마로 가득하다.



트라우마란 재해나 재난, 참사 등으로 인한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뜻한다. 트라우마는 사람들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남긴다. 당시의 기억이 계속해서 떠올라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며 우울과 무기력, 죄책감을 경험한다. (...)


우리 주변에는 일제 강점기, 전쟁, 군사 독재 시절을 거치며 가족 몇 명 잃지 않은 이들이 없고, 공장에서 손발을 잃거나 월남전에서 병을 얻어 돌아온 이들, IMF 때 집안이 풍비박산 나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내 가족 중에 일어난 일만 해도,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때 징용을 끌려가셨고 외할아버지는 6·25 때 인민재판을 겪으셨으며, 이모부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돌아가셨고 장인어른은 IMF 때 직장을 잃으셨다. (...)


이것은 멀리 갈 것도 없는 내 부모의 이야기다. 6·25 전쟁 이야기를 들은 날이면 나는 피와 비명소리가 낭자한, 시체가 널린 거리의 꿈을 꾸었다. 밤새 마루 밑에 숨어 나를 잡으러 온 군인들이 돌아가기를 기다리며 불안에 떨기도 했다. 내 부모와 내 부모의 부모가 느꼈을 공포는 전쟁이 끝난 지 20여 년 뒤에 태어난 그들의 손자에게까지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상처는 기억을 남기고 기억은 후대로 이어진다.


최근의 연구들에 따르면 트라우마는 유전된다. 마크 월린의 저서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에는 홀로코스트에서 가족을 모두 잃은 여성의 사례가 나온다. 그 여성의 손녀는 할머니가 느꼈을 강한 상실감과 외로움, 고립감,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그대로 경험하였다. 뉴욕 시나이산 의대 레이첼 예후다 교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는 부모의 자녀는 부모와 유사한 정도로 코르티솔 수치가 낮다는 것을 밝혀냈다. 낮은 코르티솔 수치는 사람들을 스트레스에 취약하게 만든다. 

세포생물학자 부르스 립턴은 어머니의 감정이 자녀의 유전자 발현을 생화학적으로 바꾼다는 것을 입증했다. 스트레스 호르몬은 태아의 내장 혈관을 수축시키고 말초로 더 많은 혈액이 몰리게 함으로써 태아가 투쟁·도피 반응을 준비하게 한다.


트라우마는 적어도 3대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외할머니가 어머니를 임신한 지 5개월째가 되면 태아인 어머니의 난소에 훗날 내가 될 난자의 전구세포(precursor cell)가 발생한다. 역시 내가 될 아버지 정자의 전구세포 역시 아버지가 할머니의 자궁 안에 태아로 있을 때부터 존재한다. 이는 트라우마의 기억이 최소 3대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진다는 융의 집단 무의식은 이러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의 결과일 수도 있다. 





2019년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마음에는..


우리가 직접 겪은 것들을 포함하여 우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겪어왔던 현대사의 트라우마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이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한국인들은,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를 불안 속에서 남편을 잃은 아내들의 절규를 듣고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속 썩는 냄새를 맡으며 살아남은 자의 외로움과 죄책감을 안고 살아왔다. 이렇게 살아온 이들이 희망과 기쁨에 가득 차 하루하루가 즐겁다면 그 역시 이상한 일이 아닐까.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진 불안과 초조는 경쟁적이고 참을성 없는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고, 다른 이들이 나를 해할지 모른다는 인지적 편향과 나만 잘되면 된다는 자기중심적 사고로 이어졌다. 편 가르기 및 혐오와 같은 적대적 갈등 해결 방식은 한국전쟁 이후 70년 간 계속되었던 분열과 대립의 산물이다. 


한국인들이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우울과 불안에 빠지기 쉬우며 행복을 느끼기 어렵다면

그 이유는 여기서부터 찾아야한다.











* 본 포스팅은 한민 작가님의 신작, <우리가 지금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가>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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