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쉽게 우울과 불안에 빠지는 한국인만의 독특한 감정 습관
2화_한국인이 불행한 건 쉽게 반성하는 본능 때문이라고?
/쉽게 우울과 불안에 빠지는 한국인만의 독특한 감정 습관
한국인들은 반성을 많이 한다.
인터넷 기사나 커뮤니티에서 ‘반성해야 한다’는 댓글들을 수시로 발견할 수 있다. 개중에는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반응도 있지만, 대개는 ‘우리도 반성해야 한다’는 자기 반성 류가 많다.
불꽃축제가 끝난 후 길가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다고 부끄러운 시민의식에 대한 반성을, 정치인들이 또 싸운다는 기사에는 저런 사람들을 뽑은 국민도 반성해야 한다는 반응이 빠지지 않는다. 송파 세 모녀 사건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사건에 대해서는 소외받는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 우리의 각박함을 반성하고, 한국 교육의 문제를 다룬 《SKY 캐슬》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도 저들의 행태는 곧 우리의 모습이라며 반성한다.
* 반성의 사전적 의미: 스스로 돌이켜 살펴본다.
* 한국인에게 반성의 의미: 자신이 한 일의 잘잘못을 따져 과오를 뉘우치고,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다짐한다는 의미
반성은 부정적인 정서를 동반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먼저 나의 실수나 과오를 기억 저편에서부터 끌어올려 드러내야 한다. 부끄럽고 후회스럽고 자괴감이 들지만 그런 일을 한 사람이 나라는 것을 인정할 때 반성은 시작된다. 다음에는 자신의 행위를 사회적, 내면적 기준에 비추어 어느 면이 잘못되었는지 확인하여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자신의 사고방식과 행위를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이러다 보니 반성은 ‘통렬’하고 ‘절절’할 수밖에 없는데, 반성한 이후에도 같은 실수나 과오가 반복된다면 반성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고, 달리 말해 자신이 한 다짐도 지키지 못한 형편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세상에 드러내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런 치열한 과정을 하루에도 몇 번씩 치러내야 하니 한국인들이 행복감을 느낄 일이 드물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반성을 많이 하는 것일까?
쉽게 말하자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문화심리학자 최상진은, 한국인들은 ‘남과 다른 나’가 아닌 ‘남보다 나은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과 같이 관계가 중요한 사회에서 마음은 그가 상호작용하는 대상과 상황에 따라 달리 경험된다. 개인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야 하며 사회 속에서 개인의 지위는 그가 맡은 역할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한국인들은 다양한 대상과 상황에 맞는 적절한 행위 양식에 대한 많은 규칙들을 발달시켰는데,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예절(禮節)이다. 예의 바르게, 예절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개인의 행동이 사회 질서나 목표에 적합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상진은 이를 사회 지향적 자기관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한국인들은 성숙한 사람일수록 사회 질서와 원리에 맞게 자신을 돌아보고 수양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수신제가(修身齊家)’ 후에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라를 다스리거나 천하를 평정할 일이 없는 보통 사람들도 보편적 원리에 비추어 자신을 반성하는 일에 익숙하다.
그럼 서양 사람들은 반성을 안 할까?
물론 그럴 리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반성하는 것은 다른 맥락이다. 서양이라고 묶기에는 범위가 넓지만 일단 영어권의 경우만 살펴보자.
‘반성하다’는 영어로 ‘reflect’라고 번역되는데 우리말의 ‘반성’과는 어감이 많이 다르다. ‘reflect’의 원뜻은 무언가를 명백히 하다(manifest), 처음의 상태로 돌려놓다(bring back to the point of departure)이며, 소리나 이미지가 사물에 반사(반영)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물론 우리말의 ‘반성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거울에 뭔가를 비추듯이 있는 그대로를 ‘확인’하는 의미가 강하다. 따라서 영어의 자기 반성, 즉 ‘self-reflection’은 자신의 행위를 자기(self)에 비추어본다는 뜻으로, 자신의 과오를 돌아본다는 뜻이 강한 우리의 ‘반성하다’와는 의미가 다르다. 행위 자체의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이 그 행위가 자신의 ‘self’라는 것에 적합한지, 다시 말해 얼마나 나다운 것이었는지 판단하는 것이 ‘self-reflection’인 것이다.
이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방법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서구의 개인주의 문화권에서는 자신을 다른 이들과 독립적인 존재로 바라본다. 이들의 언어에는 대개 ‘셀프(self)’에 상응하는 단어가 있는데, 셀프란 오랫동안 자신의 행위를 제3자의 입장에서 관찰하여 구축한 객관적인 실체이며, 개인이 하는 모든 행위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한국처럼 관계와 맥락을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상황을 초월해 행위에 일치시켜야 하는 셀프를 구축할 필요가 없다. 한국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사회적 가치와 일치시키며 상황에 따른 적합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우리말에 ‘셀프’에 상응하는 말이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반성은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이자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이다. 반성이 부끄러움, 후회 등의 부정적인 정서들을 동반한다 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우리 마음의 습관인 것이다.
그리고 반성은 어쨌거나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다. 반성의 긍정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반성으로 인한 부끄러움 같은 부정적 감정들을 우리가 불행하다는 증거로 생각할 수 있을까?
* 본 포스팅은 한민 작가님의 신작, <우리가 지금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가>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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