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한국인이 갖는 '행복'에 대한 오해
3화_투덜이 스머프는 사실 행복했습니다.
/ 한국인이 갖는 행복에 대한 오해
행복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오해는
부정적 정서가 나쁘다는 것이다.
이는 행복 자체가 ‘긍정적 정서’로 정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많은 행복 연구자들이 ‘행복이란 긍정적 정서를 최대한 많이 경험하고 부정적 정서는 최대한 적게 경험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 결과, 우리는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언짢은 기분만 느껴도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과연 그럴까? 예를 들면 부정적 정서들이 긍정적 기능을 하는 경우는 없을까? 또는 긍정적 정서들이 부정적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는 없을까? 그럴때는 무엇을 행복이라고 해야 할까?
20대 시절 나의 별명은 ‘투덜이 스머프’였다.
투덜이 스머프는 그중에서 늘 투덜대는 게 특징이다. 그만큼 나는 세상에 불만이 많았고 불평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나는 내 20대를 매우 행복했다고 기억한다. 흔한 중년의 추억 보정일까? 20대에 만나 아직도 인연을 이어가는 이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그들도 나와 함께했던 그날들이 그렇게 불행했던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나도 나름 심리학으로 밥 먹고 살면서 긍정 심리학 깨나 들여다봤고 무려 행복연구센터에도 있었던 사람이지만 이런 의문에 답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우연히 접한 《투덜이의 심리학》이라는 책에서 그 단초를 찾았다. 10만 명 이상의 환자를 상담한 임상심리학자 토니 험프리스 박사는 책에서 부정적인 감정들의 긍정적 효과들을 잔뜩 언급하고 있다. 몇 가지만 소개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존중받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그 결과로 두려움은 실패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게 하여 그 사람이 사랑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힘이 된다. 좌절감을 통해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탐색하고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낼 것이며, 우울감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자존감에 대한 위협과 또 다른 실패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어떠한 상황에 불쾌감을 느끼고 투덜거리는 것은 감정을 표출하고 동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여 유대감을 증진시킨다.
내가 투덜이었으면서도 행복했던(?) 이유가 여기 있다. 나는 어린 시절 부당하다고 느꼈던 여러 상황에 불만을 토로했고, 친구들은 내 투덜거림에 공감하고 때로는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게다가 투덜거린다는 것은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부딪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 사실 부정적 정서는 사람들에게 불안을 느끼고 이에 대비하도록 하여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절벽 끝에서 공포심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유전자를 후대로 전할 가능성은 상당히 떨어질 것이다. 징그러운 벌레나 썩은 음식을 보고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이렇게 진화해왔다.
긍정적 정서 역시 이러한 진화의 산물이다. 먹이를 얻었을 때, 안전한 쉴 곳을 찾았을 때, 마음에 드는 짝짓기 상대를 만났을 때 우리는 행복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행복을 느끼고자 먹이를 찾고, 안전한 쉴 곳을찾고, 짝짓기 상대를 찾는다. 행복은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긍정적 기능을 해왔다.
부정적 정서의 기능 또한 분명 긍정적이다. 그렇다면 부정적 정서를 경험했다고 나쁠 것이 있을까? 부정적 정서를 느끼면 불행하다는 것은 과연 사실일까? 심지어 부정적 정서를 경험하는 것으로도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면?
험프리스 박사는 부정적 정서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통제 욕구에 주목한다.
불안감을 느끼고 대비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부정적 정서에 맞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고 조절함으로써 불행한 결과를 예방한다. 이러한 긍정적 기능 외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통제한다는 데서 만족감을 경험할 수 있다. 나 자신을, 내 주변을 통제한다는 사실 자체가 만족감을 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좀 더 적극적인 부정적 정서의 경험은 통제욕구의 충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해낼 수도 있다.
부정적 정서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 살펴보자.
- 불만은: 행복의 중요한 요인으로 이해되는 만족과 정확히 반대되는 감정이지만 문제가 되는 일을 해결 할에너지를 제공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불만을 가진 이들이다.
- 후회란: 지금 나타난 나쁜 결과를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행동했다면 피할 수 있었다고 느낄 때 경험하는 매우 불쾌한 감정이다. 따라서 후회하는 사람의 현재 행동은 미래의 후회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결정될 것이다.
- 분노는: 부당한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행동을 이끌어 낸다. 같은 상황에 분노하는 이들은 각자의 이기심을 자제하고 협조 적인 행동을 통해 공동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지루함, 권태는 인간 역사를 움직여온 가장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였다. 현재의 지루함을 타개하기 위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지금보다 바람직한 상황을 상상하게 되고 그것을 실현 하기 위해 뭐라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갑자기 모든 사람이 불만 없이 후회도 없이 분노하지 않고 즐겁기만 한 상태가 된다고 생각해보라. 여러분은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행복과 같이 생존을 위해 습득되었을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치료받아야 할 병이나 없애야 할 상태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부정적 감정을 억제하거나 최대한 낮추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 믿는 것은 이제 그만두자.
* 본 포스팅은 한민 작가님의 신작, <우리가 지금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가>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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