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꼭 찾아야 할 것
4화_내가 오늘을 살아갈 이유는 무엇인가요?
/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가 꼭 찾아야 할 것
영화 《김씨 표류기》에는 자살에 실패하여 밤섬에 표류하게 된 남자 김씨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렸을 때부터 경쟁의 노예로 살도록 키워졌고 남을 이기지 못하면 도태되는 사회에서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히고, 회사에서도 여자 친구에게도 버림받은 그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길은 자살이었다. 하지만 운 나쁘게(?) 죽지못했고 나뭇가지에 목을 매려던 김 씨의 두 번째 자살 시도를 막은 것은 갑자기 찾아온 설사였다.
폭풍 같은 설사가 그치자 김 씨의 눈에는 한 떨기 사루비아 꽃이 들어온다. 하나둘 사루비아의 꿀을 빨아먹던 김 씨는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하는데…. 이 장면에는 ‘삶이란 죽지 못해 사는 것’이라는 우리네 삶의 본질이 잘 드러나 있다.
그렇다. 목적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그저 살아가고 있는 내가 있을 뿐이다. 처음에는 남들이 가르쳐준 대로 살아가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따라가는 길에서는 낙오자도 많기 마련이다. 일생을 따르던 목표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에는 살아갈 이유를 찾는 김 씨의 여정이 코믹하지만 대단히 진지하게 묘사되고 있다. 울음을 그친 김 씨는 강가에 가서 더러운 강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곧이어 먹을 것을 찾기 시작한다.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버섯밖에 구하지 못했던 김 씨이지만 죽어 떠내려온 물고기, 물고기 가시가 걸려 죽은 새 등 차츰 식단도 풍요로워지고 떠밀려온 쓰레기로 골프도 치는 등 여가도 즐기면서 나름 행복한 무인도 라이프를 보낸다. 일상의 행복도 잠시, 김 씨는 곧 강렬한 욕망에 휩싸이게 된다. ‘짜파○티’ 봉지를 발견한 것이다.
사람들 사는 세상을 떠나 잠시 행복을 느꼈지만, 짜장면에 대한 욕망은 김 씨를 고통과 번뇌로 몰아넣는다. 이제까지의 행복은 간데없고 김 씨의 삶은 후회와 갈망으로 점철된다. 그러다가 우연히 새똥에 씨앗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희망은 샘솟고, 마침내 옥수수 씨앗을 찾아내 밭을 만들고 농사를 짓는 김 씨의 노력은 살아갈 이유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활기 넘치게 만들어주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내가 이루어야 할 목적,
즉 살아갈 이유다.
즐거움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장기적인 목적이 없고 아무런 도전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목표 추구와 성취는 지속적인 행복을 주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해피어》의 저자 탈 벤 샤하르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 학점 대신 승진이 목표가 되는 것처럼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목표가 바뀔 뿐 삶에는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실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환희는 오래가지 않을뿐더러 성취를 향한 여정은 길고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행복과는 거리가 먼 감정이다. 하지만 목표가 없으면 살아갈 이유가 없다. 많은 사람이 목표의 추구와 성취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그 목표를 왜 이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한 데 있지, 목표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삶은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고
그렇기에 살아야 할 이유는 중요하다.
행복은 계속해서 추구할 어떤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놀랍게도 지금까지의 행복 연구에서 ‘목적의식’은 그다지 언급되지 않았던 주제다. 경제학자이자 《행복은 어떻게 설계되는가》의 저자 폴 돌런은 이전까지의 행복 연구들은 이러한 목적의식을 간과해왔다고 지적하면서, 행복이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즐거움과 목적의식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즐거움-목적의식 원칙, PPP(Pleasure-Purpose Principle)을 제안한다.
사람들은 목적을 갖고 그것을 추구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데, 삶에 대한 전반적 만족을 측정하는 정도로는 그러한 만족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명확히 알 수 없다. 따라서 폴 돌런은 즐거움과 목적의식의 비율을 조정함으로써 개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행복을 설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조금만 소개해보겠다.
목적의식과 즐거움의 관계는 U자를 뒤집어 놓은 형태로 나타난다. 즉, 목적의식이 너무 낮아도 즐거움은 떨어지고, 목적의식이 너무 높아도 즐거움을 경험하기 힘들다. 예를 들면 연령별 행복도 조사에서 거의 언제나 가장 불행한 집단은 30~40대인데, 그 이유는 30~40대에는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책임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직장에서의 업무량도 많고 출산, 육아 등 가정적으로도 많은 일에 시달리며 긍정적인 정서를 느끼기 힘든 때다. 그러나 이 시기의 일들은 개인의 목표로 한 성취와 연관되어 있으며 새 식구를 맞고 가정을 이루는 일 역시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정서적인 행복은 덜 경험하지만 삶에서의 목적의식은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의 삶에서 행복을 찾으려면 목적 추구와 일상의 즐거움의 균형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성취주의자는 미래의 노예로 살고,
쾌락 주의자는 순간의 노예로 살며, 허무주의자는 과거의 노예로 산다
-탈 벤 샤하르
목적에 짓눌려 현재의 즐거움을 놓치는 것도, 현재의 즐거움에 정신이 팔려 목적을 잃어버리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더 바람직한 것은 목적을 추구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사람이 하는 모든 노력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의 달성이라 하였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기술을 발명하고 학문을 육성하고 사회를 형성했으며 또한 짜장면을 만들었다. 사는 것이 행복해지려면 가끔 ‘소확행’ 같은 경험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에서 목적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면 힘들게만 느껴졌던 일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고 즐거움을 얻으면 그 일이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질 것이다.
* 본 포스팅은 한민 작가님의 신작, <우리가 지금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가>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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