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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Sep 26. 2019

악당의 행복은 행복인가?

행복연구가 말하지 않는 행복의 조건

만화영화에 나오는 악당은 여러 모로 행복한 사람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잘 웃는다. 세계정복 같은 뚜렷한 목표가 있다. 사람들(부하)을 신뢰하고 그들이 때로 실패해도 용서하고 다시 기회를 준다. 부하들은 감사하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이 시대의 참 리더, 프리저

반면, 악당을 응징하고 정의를 지키는 영웅은 불행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그들은 늘 화가 나 있고 일삼아 남들(대개 악당)의 꿈을 짓밟는다. 동료들끼리는 늘 갈등이 끊일 날이 없으며 용서나 감사 같은 덕목들은 영웅들에게 기대하기 어렵다. 자, 행복이 어디 있는가는 자명하다.


이쯤 되면 행복연구들이 뭔가를 놓치고 있음이 확실하다.

악당의 행복을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 영웅들의 불행을 불행이라 부르는 것이 옳을까?


나는 재수를 했는데 첫 대학입시에서는 법학과에 지원했었다. 그때 면접장에서 들은 수험생들의 지원동기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왜 법학과에 지원했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함께 면접을 본 7,8명 중 네다섯명의 대답은 돈 많이 벌려구요..였던 것이다.


사법정의를 묻는 교수의 추가질문에 그들은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에요. 저는 돈만 벌면 되요..’라고 대답했다. 26년 전 그날, 나는 법관출신의 고위공직자들이 국정농단을 저지르고 대법원장이 부정한 재판을 지시하는, 검찰이 11시간 동안 가정집을 압수수색하며 사채빚 받으러 온 양아치 조폭처럼 짜장면을 시켜먹는 이 나라의 미래를 보았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했을 터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자유는 우리가 타인에게 행복을 뺏으려 하지 않는 한, 또는 타인이 행복을 얻고자 노력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한, 우리 자신의 방법으로 우리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 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악당의 행복추구는 왜 제한받아야 하는가?


그 이유는 악당들의 행동이 법을 어기고 사회를 혼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악당들은 자신들의 행복추구를 위해 다른 이들의 행복 추구권을 침해한다. 내가 갖고 싶다고 주인 있는 물건을 빼앗아서는 안 되며, 내 배가 고프다고 돈을 내지 않고 음식을 먹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사법질서를 지켜야 할 법관이 되겠다는 이들이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법학과를 지원했으니 나라가 혼돈의 카오스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이런 이들을 악당이라 부른다. 악당의 행복은 행복이라 할 수 없다.

불화가 끊이지 않는 영웅들

그렇다면 영웅들은 어떤가? 정의를 수호하는 일은 불쾌한 감정을 수반하는 일이다. 늘 화가 나 있고 동료들과 다투는 영웅들은 불행하다고 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그렇지 않다. 영웅들의 행동은 다른 이들의 행복, 공공의 선을 위한 것이다.


그들의 행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그들 자신도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목적의식, 즉 삶의 이유를 충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영웅들은 행복하다. 자신이 그 일을 왜 해야하는가에 대한 이유만 명확하다면.     


물론 세상은 선과 악으로 명확하게 나눌 수 없다. 사람들도 악당과 영웅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무조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해서 얻는다고 그것이 행복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상황을 불행으로 규정하고 불행해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정신역동이론에 따르면 자연스러운 욕구를 억압하는 것은 정신건강에 해롭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모든 욕구를 충족하면서 살 수는 없다. 타고난 능력상 어려운 경우도 있고, 또 법이나 규범에 의해서 금지된 욕구일수도 있다.


사회에 법과 규범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이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법과 규범을 어기게 되면 다음 번에는 같은 이유로 내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욕구만을 좇는다면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욕망만을 추구하는 것은 행복이라 할 수 없으며 행복해지려면 자격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알쓸신잡]에도 나왔던 그 내용이다. 첫째, 스스로 세운 규범에 따라 행동하되 그것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고, 둘째,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언제나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행복은 무조건적인 욕구의 충족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 인간은 법만으로도 살 수 없다. 인간이 다양한 욕구를 가진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욕구를 지나치게 억압 혹은 억제하면 병이 난다.


그래서 중심을 잡는 나의 존재가 중요하다. 프로이트가 에고(ego, 자아)라고 한 개념이다.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삶의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욕구와 규범 사이의 균형을 잡을 줄 안다. 결국 행복은 자신으로부터 나온다는 이야기다.


자존감은 그 다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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