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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Nov 08. 2019

한국인은 집단주의 때문에 불행하다고요?

집단주의 개념에 대한 오해

몇 년 전 페이스북에서 ‘한국인은 왜 행복하지 못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행복하지 못한가’가 아니고 ‘행복하지 못하는가’..라니 우리말에 ‘못하는가..’란 표현이 있었던가요. 어색한 맞춤법에 다소 신뢰가 떨어졌지만 평소의 관심사다보니 끝까지 읽어 보았더랬죠.


1만 3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른 만큼 꽤나 기대를 했었는데 글을 읽고 난 감상은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이때까지 문화와 인간행동에 대해 이렇게까지 오해와 편견으로 가득찬 글은 본 적이 없습니다.


문제의 ‘한국인은 왜 행복하지 못하는가’는 2006년 월드컵 결승,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기에서 벌어졌던 지단의 ‘박치기 사건’을 예로 들면서, 만약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사적인 감정을 앞세워 국가의 중요한 경기를 망친 원흉으로 지탄받았을 것이라며, 누이를 모욕한 상대 선수를 들이받은 지단을 영웅으로 대접한 프랑스가 더 행복하기 쉬운 나라라는 논리를 펼칩니다.

프랑스인들이 개인의 감정을 국가의 승리보다 우선한 지단의 선택을 존중했고 한국은 국가의 승리를 개인 감정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아마도 그런 일을 한 선수를 비난했으리라는 것인데요. 이런 식의 논리는 심리학에 '만연한' 개인주의 vs 집단주의라는 문화구분에서 나옵니다.


개인주의 vs 집단주의는 심리학에서 문화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쓰이고 있는 개념입니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한 사람이 자신의 행동의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 두는지 아니면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 보는지에 따라 나뉘는데, 개인의 감정을 존중하는 개인주의 문화인 프랑스가 집단을 개인에 우선하는 집단주의 문화인 한국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이죠.


저는, 멸종위기종 토종 문화심리학자로서, 개인주의 vs 집단주의라는 문화구분을 대단히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그것이 문화를 다루기에는 지나치게 이분법적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거기에 서구중심적인 진화론적 사고가 깊이 배어있기 때문입니다.


앞선 논리에 따르면, 집단주의 문화는 개인주의 문화보다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의 정의 자체가 그렇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개인이 느끼는 긍정적 정서로 정의되는데 개인주의 문화의 개인이 긍정적 정서를 느끼기 쉽습니다.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개인이 자족, 성취감 등과 같은 긍정적 정서를 느끼도록 문화화되기 때문이죠. 또한 개인주의 문화의 개인들은 자신이 즐겁고 행복한 상태임을 타인들에게 어필하며 그로써 자신이 '잘 적응하고 있음'을 표현합니다. 그럼 당연히 개인주의 문화에서 행복을 느끼기 쉽고 또 측정치도 높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이러한 가정에서 이루어진 연구결과로 집단주의 문화에서 사는 이들을 당연히 불행하다고 규정하는 것입니다. 이제 불행한 집단주의 문화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한 가지 뿐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개인이 긍정적 정서를 느끼는 것을 방해하는 집단주의 문화를 타파하고 개인주의 문화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죠.


아니면 집단주의 나라를 떠나서 개인주의 나라로 이민을 가는 방법도 있겠습니다. 개인주의 문화는 행복하고 집단주의 문화는 불행하다는 심리학의 연구결과들에서 비서구 지역을 낙후되고 미개하다고 규정하고 서구 제국의 우월성을 앞세워 세계를 지배했던 제국주의 시대의 유령이 느껴진다면 지나친 생각일까요?


사실, 위의 글(한국인은 왜...)은 사용한 논리에 있어서도 금방 찾을 수 있는 허점이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 글은 프랑스인들이 지단을 높이 평가한 이유가 지단 개인의 감정을 존중해서라는 가정을 하고 있는데, 과연 그래서였을까요? 혹 집단주의적 판단 때문이었을 가능성은 없는 걸까요?


예를 들면, 프랑스인들은 지단이 개인적인 일(축구)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누이(자신이 속한 집단의 구성원)를 욕하는 말에 울컥해 상대 선수를 들이받은 것에 감동해 프랑스라는 집단의 가치를 대표하는 영웅으로 추켜세운 것은 아닐까요?


일리가 있는 것이 마테라치는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지단의 누이를 모욕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지단은 알제리계 프랑스인인데 인종이란 상당히 큰 범주의 집단이죠. 가족 역시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속하는 가장 중요한 집단으로 대부분의 집단주의적 사고의 원형은 가족에서 비롯됩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프랑스인들이 지단을 높이 평가한 것은 대단히 집단주의적인 생각에서였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프랑스는 개인주의 문화인데 그럴 리 없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설마 개인주의 문화 사람들은 가족에 대한 애정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개인주의 vs 집단주의 구분의 첫 번째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지나친 이분법. 글쓴이가 당연한 듯이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프랑스인들이 지단을 높이 평가한 것이 개인주의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또 하나, 이 글은 한국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한국인들이 그 선수를 비난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집단주의 문화를 비판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한국인들이 과연 그 선수를 비난할까요? 예를 들어,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일본과 경기를 하고 있는데 어떤 일본 선수가 ‘위안부 운운’하면서 한국 선수의 여동생을 모욕하고 그 선수가 일본 선수를 걷어찼다면?

??!!

이런 경우에 그 선수를 비난할 한국인이 있을까요?


알고 있습니다. 상당히 과격한 예를 들었죠. 제 말씀은 이런 가정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로 어떤 대상을 비판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상상은 어떠한 주장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없으니까요.


마지막으로, ‘한국인은 왜 행복하지 못하는가’의 주장이 옳다면 집단주의 문화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불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행복지수에서 세계 상위권에 랭크되는 나라들 중에는 부탄이나 방글라데시처럼 집단주의 문화를 가진 나라들도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집단주의 때문에 불행하다면 그들은 왜 집단주의 임에도 행복할까요? 위 글은 이런 당연한 의문에 어떤 답도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언합니다. 개인주의 vs 집단주의는 행복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개인주의 문화에서도 행복한 나라와 불행한 나라가 있고 집단주의 문화에서도 행복한 나라와 불행한 나라가 있을 뿐입니다. 오히려 집단주의 문화가 제공하는 사적 관계망과 정서적 지지는 행복을 예측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손꼽힙니다.


집단주의 문화가 우리 불행의 모든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나마 우리가 갖고 있는 행복의 토대마저 걷어차는 짓이 아닐까요?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우리의 '집단주의' 문화가 우리의 행복을 저해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첫째로는 저 글과 같은 문제 많은 주장이 널리 유통되면서 집단주의에 대한 오해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 이유겠고요. 둘째로는 집단주의를 전체주의라는 개념과 혼동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집단의 가치를 개인의 가치에 우선하는 것은 집단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라고 합니다. 전체주의의 폐해는 근대의 세계사를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행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부정할 수 없지요. 그러나 집단주의는 전체주의가 아닙니다.


문화 구분에 있어서 집단주의는 나의 행동을 결정할 때 나를 둘러싼 이들을 좀더 고려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를 둘러싼 이들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속한 집단이며 이는 대부분 가족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나를 위해 주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나를 둘러싼 이들을 조금 더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내 행복을 저해할거라는 생각은 지독히 이기적이며, 이런 생각 역시 개인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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