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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Aug 03. 2024

문화란 익숙한 것

그렇기 때문에 당연한 것

한국에 온 유럽 사람들이 가장 역겨워(?)하는 것이 있답니다. 바로 공중화장실에서 양치하는 것인데요. 점심 먹고 회사 화장실에서 이를 닦거나 바쁠 때 상가나 지하철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는 데 익숙한 우리 입장에서는 공중화장실에서 양치하는 게 뭐가 문제일까 싶습니다만 유럽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유럽인들이 공중화장실 양치를 역겹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들의 공중화장실에 있습니다. 유럽은 시내에 화장실이 잘 없고 있어도 유료입니다. 무려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런 전통 때문에 유럽인들은 오래 전부터 급한 볼일을 아무데나 처리해 왔었는데요. 그 결과,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는 유럽의 도시는 거리에 나뒹구는 오물과 지독한 냄새로 유명했다고 하죠.

지금도 지하철 같은 곳에 화장실이 없어서 곳곳에 대변이 널려 있고 유료화장실도 그 수가 많지 않고 관리가 잘 안되어 냄새나고 더럽다고 하는데요. 때문에 유럽사람들은 (자기들처럼) 더럽고 냄새나는 공중화장실에서 이를 닦는 것을 역겹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렇듯 사람들의 경험은 자신들이 살아온 문화에서 비롯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하고 알고 있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는 그것들이 태어나서 자라오면서 자신의 문화에서 익숙했던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파리 올림픽을 맞아 거리에 설치된 화장실

문화란 사람들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그러다보니 한 문화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죠.  몇 가지 예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일본은 겨울에 노인들의 사망이 급격히 늘어난다고 합니다. 일본사람들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몸을 담그고 목욕을 하는 습관이 있는데요. 겨울에는 따뜻한 물과 물 밖의 차가운 온도 차이가 너무 커 심장이 약한 노인들에게는 무리가 되는 것이죠. 과연 일본의 겨울이 얼마나 춥길래 그럴까요?


사실 일본의 겨울철 평균 기온은 영상 2~4도 정도로 그렇게 춥지 않습니다.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많지 않을 정도죠. 물론 북쪽에 있는 홋카이도는 추운 편이지만 일반적인 일본의 겨울은 우리에 비해 따뜻한 편입니다.

문제는 일본의 실내 온도입니다. 일본의 겨울철 실내 온도는 10도 정도로 매우 춥습니다. 바깥 기온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인데요. 우리나라의 겨울철 평균 실내 온도 20~23도와 비교해 보면 그 추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뜻한 물에 있다가 또는 이부자리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갈 때 순간적으로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이죠.


그러나 일본인들은 일본 집의 겨울철 실내 온도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춥긴 하지만 겨울에는 추운 게 당연하고 딱히 지금 상황을 바꿀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인데요. 지진의 위험때문에 목조주택에서 살아왔다는 점, 난방시스템의 차이, 전기료 등 여러 요인이 있겠습니다만 당분간 일본 실내 온도가 크게 변할 일은 없어 보입니다.


중국사람들의 말소리는 시끄럽게 들립니다. 중국어의 성조와 발음(권설음) 때문이기도 하고, 워낙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제 목소리를 내려면 조금씩 목소리가 커져야 했던 경우도 많았겠죠. 또한 중국에는 시끄러운 게 복을 불러온다는 믿음이 있기도 합니다. 여하튼 중국사람들에게 익숙한 기본적 데시벨은 우리와 비교해서 꽤 높은 편일텐데요.

정작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시끄럽다는 인식이 없습니다. 오히려 한국인들이 시끄럽다고 주장하는 중국인들도 있는데요. 우리도 뭐 어떤 경우에는 목소리가 높아지긴 하겠지만 중국사람들이 그런 얘길 하니 다소 당혹스럽습니다.


해외에 여행이나 체류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외국의 실내 조명은 우리나라에 비해 꽤 어두운 편인데요. 저도 미국 우스터라는 도시에 살 때 느꼈던 것이 기본적으로 조명의 수가 적고 조명들도 조도가 낮거나 간접조명 방식이어서 실내가 꽤 침침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잠입 액션을 해야 할 거 같은 실내 분위기

제 가설은 실내 조명은 '거기 사람들에게 익숙한 밝기'에 맞춰진다는 건데요. 유럽 등지의 위도와 일조량을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습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북위 40도에서 60도 정도에 위치해 있는데요. 이는 해가 늦게 뜨고 빨리 진다는 얘깁니다. 제가 있었던 우스터도 북위 42도 정도로 우리나라 신의주 정도의 위도인데 겨울에는 오후 세 시면 어둑어둑해졌었죠.


이들이 평소에 보는 햇빛의 기울기와 빛의 양이 적다는 얘기고 해가 진 밤에도 크게 밝은 빛을 봐야할 이유가 없다는 얘깁니다. 우리나라 실내 조명이 다소 쨍한 이유도 여기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 외에도 자신들은 당연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상한(?) 일들은 많습니다. 어떤 나라 특유의 냄새도 그렇고, 많이 쓰는 색상과 패턴도 그렇습니다. 어떤 집에서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으며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여가시간을 보내느냐는 모두 그 문화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이상한 일이 아닌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이 당연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그것이 당연하리라는 법은 없죠. 또한 다른 사람 보기에 이상하다고 해서 내가 하는 일이 이상한 일도 아닐 겁니다.


중요한 점은 누군가에게 무엇이 익숙하고 그 때문에 그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행위가 내게 익숙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틀렸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문화심리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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