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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Jul 29. 2022

'다르다'는 '틀리다'일 수도 있다

언어 분석시 유의해야 할 점

언제부턴가-꽤 오래 된 일인데- 한국사회에는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해야 한다는 담론이 있습니다. 다르다는 같지 않다different는 뜻이고 틀리다는 잘못됐다wrong는 뜻이니 엄연히 다르다는 이야기죠. 얼핏 들으면 틀릴 게 없는 이 주장은 뭔가 이상합니다.


두 단어의 뜻이 엄연히 다르니 정확히 알고 바른 언어생활을 하자..는 정도라면 얼마든지 이해가 갑니다. 취지도 좋구요. 그런데 한국에서 이 담론은 사회문제의 원인을 짚어내는 데까지 확장됩니다. 다시 말해, 한국인들은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기 때문에,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옳음만을 강조하면서 사회의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죠.


그로 인해 방송의 패널들이 습관적으로 틀리다라는 말을 하면 단정한 헤어스타일의 아나운서가 차분한 목소리로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라고 바득바득 지적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게 정말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요? 다르다와 틀리다를 섞어쓰는게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일까 말입니다. 사실 이 주장에는 허점이 있습니다. 


단어의 뜻을 마음먹고 따지자면, 다르다는 엄밀히 틀리다가 아니지만 틀리다는 다르다와 뜻이 통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험 볼 때 답이 정답과 다르면 틀렸다고 하지 차이를 인정해서 내 답도 맞다고 해달라고 하지는 않지 않는니까.


이렇게 말하면 이건 또 우리 사회가 너무 정답만을 요구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라고 지적하실 분들이 등장하실 차례인데 사실 이쯤 되면 확증편향의 문제입니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해야 한다는 당위가 지나쳐 그와 반대되는 사실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단계까지 간 것이죠.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다르다와 틀리다의 구분은 사회의 분열 및 갈등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입니다.


물론 언어는 마음을 구성합니다. 사피어-워프 가설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이 생각은 비트겐슈타인 등 여러 학자들에 의해 반복되어 왔습니다. 여기에도 다양한 견해와 논란이 있지만 특정 언어로 표현할 수 있고 공유되는 의미의 차이가 있다는 정도는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실이죠. 그러나 이 이론을 적용하거나 그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도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다르다는 틀리다가 아니라는 말은 사실 영어에서 비롯된 표현입니다. Different is not worng이죠. 차이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매우 당연하고 타당한 말로 인종, 성(gender) 등 여러 맥락에서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표현을 한국어로 가져온 것이 '다르다는 틀리다가 아니다'인데 마침 한국사람들은 다르다를 틀리다와 종종 혼용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사회에는 여러 가지 사회적 갈등들이 있죠. 이 두 사실을 어설프게 연결한 것이 '한국인들은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한다'라는 주장입니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지 않는 한국인의 언어습관이 한국사회의 분열과 갈등의 원인이라면,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는 언어를 가지고 있는 사회는 분열과 갈등, 또는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적어도 누가 봐도 눈에 띄게 적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르다와 틀리다가 명확히 구분된 언어를 갖고 있는 나라들에도 분열과 갈등, 차별은 존재합니다. 사실상 인류의 역사는 남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행해왔던 온갖 전쟁과 학살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른 인종이라는 이유로 이웃들을 가스실로 보내거나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전쟁을 일으켜 사람들을 죽였던 것이 불과 수십년 전의 일이며, 아직도 지구상 어디에선가는 벌어지고 있는 일이죠.


우리가 오랫동안 선진국으로 추앙해 왔던 나라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인종차별과 극우 정당의 득세, 방화와 폭력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시위 현장은 선진국의 건강한 갈등이거나 일부 범죄자들의 일탈에 불과하고, 한국사회의 갈등은 망국의 지표입니까?

분열과 갈등, 차별과 반목은 인간의 역사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오히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자 인간 사회의 필수요소라 할 만하죠. 그렇기에 다르다(different)와 틀리다(wrong)를 명확히 구분하는 언어를 갖고 있는 나라에서도 차이는 잘못이 아니다(Different is not wrong)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분열과 갈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하려 하는가에 있지 당면한 분열과 갈등을 못본 척한다던가 분열과 갈등 자체가 문제라고 고고하게 지적하는 행위는 전혀 본질적이지 않을뿐더러 아무런 가치가 없는 행동에 불과합니다. 애초에 수백수천만의 사람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에서 단일하고 통합된 모습을 기대하는 자체가 전체주의적 발상이 아닐까요?

한국에서 분열과 갈등이 발생하는 이유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 갈등을 빚는 집단들의 특수성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 모든 절차와 노력들을 생략하고 단지 ‘다르다 vs 틀리다’라는 언어의 문제로 환원시킨 것은 누가 처음 한 생각인지 몰라도 대단히 게으른 접근일 뿐더러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접근을 가로막는 어이없는 주장입니다. 


다른 것은 단지 차이를 의미할 수도 있고 틀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인정해야 할 차이인지 배제하고 제거해야 할 대상인지를 판단하는 근거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있을 겁니다. 다르다와 틀리다의 의미를 혼용하는 습관은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는 습관과 다를 뿐입니다. 


다른 것을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느 쪽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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