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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May 25. 2022

선택적 공정을 부르는 한국인의 마음습관

주관적 해석과 객관적 현실의 괴리

한국인들은 공정에 민감합니다. 그것도 대단히 민감하죠. 혹자는 그동안 한국에 불공정한 일이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라 하지만 저는 그것이 한국인들의 마음 습관, 즉 문화적 경험 방식 때문일 가능성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물론 한국에 불공정한 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일 겁니다. 우리의 역사적 기억이 닿는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나라의 체계가 완전치 못했던 탓이죠.

그러나 모든 사회적 현상은 역사 사회적 조건과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상호작용의 결과입니다. 근대가 시작된 이후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시스템이 작동했던 곳은 없습니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추앙해 왔던 나라들도 사정을 알고 보면 심각하기 이를 데 없는 불공정이 만연했었고 지금도 그렇게까지 이상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한편 한국의 국가청렴도 순위는 2021년 기준 세계 32위입니다. 2014년 45위에서 꾸준히 상승해 왔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의 공정에 대한 요구는 계속해서 커지고 있습니다.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사태, 평창올림픽 단일팀 논란,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부정 논란, 코인 규제와 부동산 문제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개개인을 불공정에 민감하고 이에 저항하도록 만드는 것은 사회적 조건에 이은 그 나라의 문화입니다. 한국인들은 예로부터 부정적인 경험을 한(恨)이라 규정했는데, 문화심리학의 연구에 따르면 한은 첫째, 부당한 차별을 받았을 때, 둘째, 상대적인 박탈감에서, 셋째, 자신이 했던 돌이킬 수 없는 일(부정적 결과)로부터 발생합니다.

이 중 셋째를 제외한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이 공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일이 내게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 다른 이가 가진 무언가가 내게 박탈감을 줄 때, 한국인들은 ‘억울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억울이란 내게 닥친 이 상황이 부당하고 이러한 부당함을 해결할 수 없음이 답답하다는 느낌이 합쳐진 정서입니다(참고: 억울이란 무엇인가 https://brunch.co.kr/@onestepculture/340).


‘억울함’이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으면 일련의 심리적 적응과정을 거쳐 한(恨)이 되는데요. 공정과 관련된 경험에서 비롯된 정서를 부정적 경험의 최고봉으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한국인들은 예로부터 ‘공정’에 민감한 마음의 습관을 지녀 왔다 하겠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시민들로부터 출발하는 공정의 추구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 매우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한(恨)은 한때 일부 학자들이 주장했듯이 무력감과 자포자기의 퇴영적 정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고 더 나은 미래를 여는 원동력으로 작용해 왔죠.  

시민들이 요구하면 어쨌거나 국가는 공정한 절차를 고민할 것이고 고위 공직자가 될 사람들은 어쨌거나 자신과 가족을 단도리할 수밖에 없겠죠. 이를 통해 한국은 어쨌거나 점점 더 공정한 사회로 나아갈 것입니다. 아마도 최근 들어 한국의 청렴도 지수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는 데는 시민들과 정부의 이러한 상호작용의 영향이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인들의 마음 습관에는 고려해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경험을 내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다. 한국인들은 '내게 일어난 일'을 주로 '내 입장에서' 해석하는 마음의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요(참조: 한국인 마음의 질 https://brunch.co.kr/@onestepculture/266). 대표적인 것이 억울이라는 정서입니다.


억울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애매하거나 불공정하여 마음이 분하고 답답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억울함에는 누가 봐도 불공정한 경우도 있으나 ‘애매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의미죠. 실제로 당사자는 억울해 죽을 맛인데 제 3자가 옆에서 보기에는 별로 억울한 일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한(恨)의 두 번째 원인으로 꼽히는 상대적 박탈감도 그 기준이 애매하기 짝이 없습니다. 자산이 100억이 있어도 200억인 사람이 있다면 느낄 수 있는 것이 상대적 박탈감이니 말이죠. 한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지표상 객관적으로 고소득층(월수익 500만원 이상)인 이들도 절반은 자신이 빈곤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산층 역시 80%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들을 빈곤층으로 인식했죠.

이러한 상대성, 즉 주관적 판단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 뿐 아니라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사회적 불공정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게 닥친 불공정은 크게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객관적인 지표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객관화의 능력입니다.  


적절한 수준의 자기중심성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지나친 자기중심적 해석은 인지적 오류와 정신병리의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느끼기에 부당하고 불공정하다고 해도 그것이 진짜 부당하고 불공정한 일인지 객관적인 시각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2022년 5월, 수많은 공정성 시비를 불러일으켰던 전 정권이 물러나고 무한한 공정에 대한 희망을 품은 새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피켓을 들어가며 거리에 나서가며 한국 사회를 위한 공정을 외쳤던 분들이 모쪼록 새 정권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외쳐왔던 공정에 대한 요구까지 '선택적 공정'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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