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스펙트럼 ②
많은 작품에서 자기애성 성격의 인물을 다룰 때, 외면적으로 충분히 매력적이고 한 분야에서 뛰어난 성공을 이룬 인물을 그린다. 이는 독자나 관객에게 자기애성 성격 인물의 설정을 받아들이기 용이하게 하고, 인물의 매력 이면에 있는 그렇지 않은 부분을 더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다.
자기애성 성격 인물이 성격적 결함에서 벗어나 내면적 성장이 가능한 것은 반성적 태도와 자신을 제 3자의 시선으로 객관화할 때부터다. 창작자는 자기애성 성격 인물을 그릴 때, 이야기 전개에 따라 인물에 대한 정보와 그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많은 작품에서 자기애성 성격 인물을 겉보기에 매력적으로 다루었으니, 다르게 접근하는 것도 차별화된 작품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왕자병, 공주병. 재수없음. 자기애를 이미하는 나르시시즘은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여 결국 물에 빠져죽고 말았다는 나르키소스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자기애는 자존감의 바탕이 되고 사람들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때로 이상한 행동도 하지만 지나친 자기애는 병이다.
자신을 객관적 사실 또는 남들의 평가보다 현저하게 과대평가한다. 자신이 주변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이 깔려 있어, 매우 거만한 모습을 보인다. 자기중심적이고 공감능력이 결여되어 일방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다투거나 그를 피한다. 그러면서도 타인의 부정적 피드백에 쉽게 상처를 받고, 긍정적 자아상을 유지하기 위해 망각이나 무시 등의 빠르고 쉬운 방법을 선택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패션 잡지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메릴 스트립 분)는 패션 업계에서 족적을 남기고 있는 뛰어난 인물이다. 이 인물은 자기애성 성격에 더해 강박성 성격적 특성을 가진 인물로,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고 넘어가는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신경 쓰며, 일에선 A-Z까지 완벽을 추구하며 항상 뛰어난 성과를 남기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까다로움은 자신과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에도 이어져, 비서로 일하게 된 앤드리아(앤 해서웨이 분)에게 혹독하게 대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앤드리아는 까다롭고 타인에게 박한 평가를 내리는 미란다에게 인정을 받을 정도로, 미란다 비서로서의 일을 완벽하게 해낸다. 그러나 비서의 업무를 수행하다 우연히 사적으로는 불행한 미란다의 모습을 목격하며, 미란다의 화려한 성공 이면에 어둠에 대해 알게 된다. 영화 마지막에 앤드리아는 제 2의 미란다가 되길 포기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소소한 즐거움이 있던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다.
행동특성
자신이 세상의 법칙 위에 있다는 믿음이 이들의 동기다. 지나치게 자만에 차 있고 자기중심적이며 오만하다. 일상의 규칙들을 비웃고 타인의 권리를 무시한다. 타인과의 관계는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이다. 극단적인 경우 과대망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과장하고 실패를 합리화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자존감에 상처를 입으면 수치심과 우울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합리화를 통해 금방 해결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기애성 성격이 반사회적 성향이 높은 경우 자신의 가치를 손상시킨 사람에게 분노가 향하면 타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중범죄를 일으키는 사이코로 발전할 수 있다.
<아메리칸 사이코>의 패트릭 베이트만(크리스찬 베일 분)은 반사회성과 자기애성 성격이 결합된 인물로, 미국 상류층으로 부유한 삶을 누리는 여피족이다. 회사에 출근하는 장면이 빈번하게 나오지만, 실무를 수행하는 장면은 없고 비서에게 레스토랑 예약이나 친구에게 전화를 하는 일만 시킬 뿐이다.
매일 아침 운동과 팩을 거르지 않고 외모를 가꾸기 위한 관리를 하며, 레스토랑 직원에게 친절하고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지만, 그런 척 할 뿐이고 실제로는 전혀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남들이 보지 않는 상황에서 약자에 대한 험한 말과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패트릭 베이트만은 물질만능주의가 만든 괴물처럼 나오는데, 가장 인상적인 건 친구들과 명함을 가지고 누가 더 디자인 잘 된 명함을 가지고 있는지 자존심 대결하는 장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 그 작은 명함에 금테가 둘렀는지, 인쇄 품질과 종이의 감촉을 따지며 치열하게 평가하다 자신보다 잘난 명함을 가진 친구를 뒤따라가 살해하려고 시도하는 장면은 우습기까지 하다.
이 외에도 <아메리칸 사이코>에는 패트릭 베이트만이 아침마다 자신에게 심취하는 모습과 작은 일에도 쉽게 자존심이 상해 살해를 일삼는 모습은 현대 사회의 병적인 자기애성 성격장애 인물을 잘 표현하고 있다.
무의식적 행동/욕구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실패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변명과 핑계가 많고 자신이 겪은 실패를 아름다운 언어로 미화하며, 남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것조차 ‘나를 받아들이기에는 너희들 수준이 너무 낮다’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는 어릴 적 부모의 죽음을 경험하고 홀로 막대한 자본과 함께 성장한 인물이다.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와 <아메리칸 사이코>의 패트릭 베이트만 둘 다 부유한 상류층이라는 점과 나르시시즘에 취하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토니 스타크는 자신의 안전망이었던 부모를 잃었던 상처를 극복하고 싶어하며 그 극복을 사회적 환경의 변화, 기술의 발전으로까지 확장했지만, 패트릭 베이트만은 자신에게만 시선이 머물렀다는 점이다.
토니 스타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자아상을 현실적으로도 이루려 노력한 반면에 패트릭 베이트만은 타인을 제거함으로서 손쉽게 이루려했다. <아이언맨>과 <아메리칸 사이코>는 비슷한 배경을 가진 자기애성 성격의 인물이 영웅이 되는 과정과 살인마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부모와의 관계
정신역동이론에 따르면, 신생아 시기 아이들은 부모의 무조건적인 지지와 보살핌을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 착각하는 일차적 자기애를 갖는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대상(부모, 특히 어머니)과 자신을 분리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를 사랑하게 되는 대상애(object-love)를 경험한다. 이를 통해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면서 이차적 자기애를 발달시키는데 이는 타인을 사랑하고 타인으로부터의 사랑을 바탕으로 자기가치감을 느끼는 성숙한 자기애다.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성숙하지 못한 일차원적인 자기애의 형태를 보이는데, 우선은 자녀가 원하는 바를 뭐든지 이루어주는 부모의 지나친 애정이 자신에 대한 과대한 이미지로 이어질 수 있다.
핵심.원인
한편, 자기심리학(self psychology)을 구축한 코헛은 자기애의 이면에 취약한 자존감이 있다고 보았다. 코헛은 부모의 정서적 냉정함과 성취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자기애성 성격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애정에 목마른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얻기 위해 성취에 매달리게 되고 뭔가를 이룰 때마다 부모의 인정을 받으면서 결국 자신의 가치는 남들보다 우월한 능력에 있다고 믿는 성격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 로맨스 코미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 캐릭터 설정이 자기애성 성격 인물인 경우가 많다. 외모부터 재력, 모든 것을 가졌으나 여주 하나만을 가지지 못해 안달인, 현실에서 보기 힘든 ‘유니콘’ 같은 남주와 여주의 갈등과 결합을 유쾌하게 그리기 위해서 아직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유아적인 자기애성 성격의 특성을 활용한다. 자기만을 사랑하던 남주가 처음으로 사랑한 다른 존재, 여주를 만나 의식적 확장을 하며, 자신을 가진 재력을 타인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로 성장한다.
병리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이들은 특유의 오만함으로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갖는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 프리슬리처럼 본인이 실력이 있고 사회적 지위가 되면 대인관계쯤이야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실력이나 지위가 뒷받침되지 않는 자기애는 왕자병(공주병) 걸린 찌질이에 불과하다. 그런 종류의 인간을 참아줄 인내심 많은 친구는 없다.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기 위해 대인관계가 중요한 이들에게 고립은 견디기 힘든 경험이다. 자존감이 무너지면 보통 합리화를 통해 해결하지만 도저히 합리화가 안될 상황이면 깊은 우울이나 분노에 빠질 수 있다.
범죄
많아도 너무 많다.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 말이다. 경계선 성격장애가 위험해 보여서 눈에 띄고 가까이 하기 싫은 느낌이라면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재수없고 민폐라서 가까이 하기 싫은 느낌이다. 요즘은 자신이 타고난 사회적 계급과 운에 따라 자신이 쥐고 있는 것을 마치 모두 자신의 능력에 따라 획득한 것처럼 여기는 뻔뻔한 중상류층이나 엘리트들 중에 이런 이들이 많이 보이는 듯 하다. 이들은 자신들이 정한 어떤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사회적 성취를 하거나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오려고 하면 공정을 운운하며 화를 낸다.
이들의 범죄는 사회적 현상에 걸쳐져 있다. 이들은 편집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이 상품이 왜 규격에 맞지 않냐며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서 매뉴얼을 따지는 것처럼 모양 빠지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깔본다. 서울대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들의 ‘기강을 잡는다’는 이유로 ‘정장’을 입고 시험을 치르게 한 모 교직원 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 두르고 있는 사회적 지위가 그 사람의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자원은 한계가 있어야 하고 당연히 자신은 그 자원을 쥐고 있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반사회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남을 이용하는 것은 범죄이고 비윤리적이라는 것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성격파탄자들이라면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남을 업신여기면서 반대급부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비열한 사람들인 것이다.
일부 정치인이나 고위공무원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이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이 휘두를 수 있는 제 손 안의 무기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런 무기는 마음 속 깊이 잣대 자체가 비뚤어져 고쳐지지 않는 반사회성 성격장애자와는 달리 ‘상대적’이 것이기 때문에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들은 권력을 휘두를 때도 속으로는 조바심을 낸다. 만약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가진 인물과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인물이 대립하거나 전략상 협조 관계라면 바로 이 점에서 둘을 서로 구별짓고 또 재미있게 묘사할 부분이 생길 것이다.
미드 <더티 섹시 머니>는 백만장자 달링 집안에 얽혀 고생하는 변호사 주인공의 이야기인데 이 집안사람들은 다 미성숙한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라고 할 수 있다. 자기 맘대로 사느라 위법과 합법을 마구 오가는데 이를 어떻게든 봉합하려고 쩔쩔매는 주인공의 고난을 지켜보는 게 전체 줄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고 있자면 한국의 재벌 2,3세들이 신문의 사건사고란을 장식하는 게 떠오를 지경이다.
(1)부모와의 관계/양육
자녀를 너무나 사랑하여 어렸을 때부터 자녀가 원하는 것은 모두 갖게 해준 경우, 아이들은 그것을 자신의 능력이라 착각하고 성장한다. 말 그대로 세상 물정 모르는 왕자, 공주 스타일.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엄마아빠가 아니고 나는 왕자(공주)가 아니다. 그런 현실을 만나면 좌절하고 우울에 빠지기도 한다.
또는 애정없고 냉담하지만 자녀의 성취에는 대단히 민감한 부모에게 양육된 경우. 코헛의 설명대로, 부모의 사랑을 얻기 위해 성취와 능력에 집착하다가 자기애성 성격이 형성된다. 타인을 무시하고 특히 능력없는 이들을 경멸한다.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착취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유형.
인기리에 방영한 드라마 <스카이캐슬>과 <펜트하우스>에서는 공통적으로 문제적 부모들과 그 부모에게 영향을 받아 괴로워하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부모는 자신의 자녀들이 다른 아이들을 밟아서라도 우위에 서길 바랬고, 부모의 왜곡된 욕망을 그대로 받아들여 실현하려는 자녀들은 내면이 뒤틀리며, 결과적으로 타인 뿐 아니라 자신 또한 파괴해간다.
(2)취약상황, 갈등요인
자신의 능력 또는 가치를 위협하는 일이 발생할 때 취약해진다. 또는 그런 상황을 만드는 사람과 갈등을 빚는다. 자기애성 성격 인물의 ‘자기애’에 대한 객관적 근거가 빈약할수록 사소한 일에도 자신의 가치를 위협 당한다고 생각해, 과도하게 방어하거나 상대를 공격하려 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적인 인물로 고평가하길 바라지만, 그에 대한 노력을 뒷받침하지 않을 경우에는 사람들과 갈등이 끊이질 않는다.
팀원들과 함께 노력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을 경우, 모든 공을 자신에게로 돌리며 함께 일한 팀원들에 대해서는 저평가하는 것을 반복하기 때문에 사회적 평판이 좋을 수 없다. 자신이 가진 것은 당연히 본인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며, 다른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롭게 도구화해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누군가 앙심을 품고 자기애성 성격의 인물에게 복수를 준비하고 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관심이 타인에게 향해 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높을 수록 눈치 채기 어려울 수 있다. 몰락한 이후에도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지 않고 모든 화살을 외부로만 돌린다면,자기애성 성격적 특질은 더 공고해지고 다른 부적응적인 정신 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다.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을 묘사하는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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