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를 위한 심리사전③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우영우(박은빈)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는 변호사인데요. 뛰어난 지적 능력으로 내로라 하는 로펌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장애, 언어성 및 비언어성 의사소통의 장애, 상동적인 행동(의미없이 반복하는 행동) 및 관심을 특징으로 하는 질환으로, 지능이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사회적 상호작용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변호사와 같은 직업을 갖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국내에는 이같은 사례가 없고 해외에도 미국의 사례가 하나 있는 정도죠.
자폐 스펙트럼 장애 중에 이렇게 뛰어난 지능과 능력을 가진 경우를 '아스퍼거 증후군'이라 합니다. 한편, 자폐 스펙트럼 장애 중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경우를 '서번트 증후군'이라 하는데요. 아스퍼거 증후군과의 차이점은 서번트 증후군은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분야를 제외한 부분에서는 정상 지능 이하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창작자를 위한 심리사전 세번째 글에서는 창작물에 나타난 아스퍼거 증후군의 사례를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한 종류로 의사소통과 사회적 상호작용에 문제가 있지만 특정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기도 한다는 점에서 서번트 증후군과 혼동된다. 하지만 아스퍼거 증후군의 경우 언어와 지능의 발달은 정상적이라는 것이 차이점이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등 유명인들이 아스퍼거 증후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동특성
언어 발달은 정상적이나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능력(공감)은 떨어진다. 특이한 화법이나 억양 등이 있다. 특정 주제에 강한 관심을 가지며 상대방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여 사회적 교류에 어려움을 갖는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은 정상 지능(IQ 80이상)을 가진 사람으로 적절한 훈련과 보살핌을 받는다면 겉으로 보기에는 무리없이 사회생활이나 직장생활을 해내기도 한다. 그러나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상호작용을 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타인과의 관계에 무심한 자폐인과 달리 아스퍼거인은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고 눈맞춤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으며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욕구가 있어 서투르지만 상호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이들이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부적절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에서 실패하고 상처받을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이들은 관심분야가 좁고 깊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이른바 스몰 토크를 하지 못한다. 남과 공통된 주제나 가볍게 의견 교환을 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가 아니면 대화 자체를 하지 않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언어의 사용에도 문제가 있는데, 예를 들면 장황하고 말이 많다거나, 갑작스럽게 대화의 주제를 바꾼다거나, 뉘앙스를 이해하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거나, 자기 자신에게만 유의미한 은유를 사용한다거나, 듣는 데에 문제가 있다거나, 유식을 과시하거나, 형식에 경도되거나, 특이한 화법, 목소리의 크기나 억양, 운율, 리듬이 문장 내내 단조롭게 나타나는 것 등이다. 자폐환자와 유사하게 감각적으로 매우 예민하여 음식을 가리거나 특정한 스타일이나 특정 재질의 옷이나 도구만을 고집하기도 한다.
원인
아스퍼거 증후군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으나 가족 중 아스퍼거 장애가 있으면 발병 확률이 높은 사실에 미루어 유전의 영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질은 대뇌 손상 등 뇌신경계 관련 질병이다. 원인과 증상이 불분명하여 ADHD나 조현성/형 성격장애, 강박장애 또는 양극성 장애와 혼동되기도 한다.
사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1% 정도로 적지 않지만 80%가 취업을 하지 못하고 취업한 사람들도 자신의 능력을 밑도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업계, 특히 이공계에서는 하나에 집중하는 그들의 능력을 높이 사서 일부러 고용하기도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엔지니어 중 자폐 스펙스럼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높으며 이에 따라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는 사람의 자녀들 중 (유전에 따라)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들이 다른 직군보다 많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수학자, 암호학자, 논리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의 선구적 인물이며 알고리즘과 계산 개념을 튜링 기계라는 추상 모델을 통해 형식화함으로써 컴퓨터 과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엘런 튜링이 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이 군사정보를 에니그마 기계를 이용 암호화한 것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다룬다.
엘런 튜링은 아스퍼거인으로 매우 똑똑한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선 서투르기 짝이 없었다. 독일 베를린의 잠수정 등에서 보내온 메시지를 코드화하여 해독하는 암호학 부서(GCCS)의 열 명 남짓한 내노라하는 인물들로 이루어진 연구팀의 수장이 된 튜링은 팀원들과 협력을 할 수 없어서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해냈으며 당시 컴퓨터의 발달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업적을 인정받아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그는 당시엔 죄인 취급받던 동성애자였고 결국 경찰에 동성애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는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감옥행을 면하는 대신 전환치료를 강요당하고 화학적 거세를 당했으며 결국 시안화칼륨(청산가리)를 바른 사과를 먹고 자살한다. 영화 초반 연구실에서 시안화칼륨이 없어졌다며 경찰에 신고를 한 뒤 경찰이 출동했음에도 자신이 정리상태가 엉망인 연구실을 청소하며 경찰과의 상호작용이 잘 되지 않는 장면을 보여주는 연출이 있는데 이는 그가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에 대한 힌트이며 수미쌍관이라 하겠다.
마블 히어로즈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아내와 딸을 잃은 복수를 하기 위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합류하는 드랙스는 눈치 없고 힘만 센 외계인이다. 그가 속한 종족은 특성상 직설적이고 예스런 말만 한다. 그러다보니 다른 팀원들과 얘기할 때 성적인 얘기나 더러운 얘기 등 보통 대화에서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주제에 대해 자기가 하고 싶으면 그냥 해버리는 눈치 제로의 언행을 보인다.
그렇지만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남과 어울리지 않고 고립되려 하는 것은 아니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일원들 모두를 아끼고 가족처럼 생각한다. 드랙스의 언행은 아스퍼거인의 성향을 외계인으로 바꾼 것이라고 이해하기 쉽다. 이런 면은 다른 사람과의 신체접촉을 통해 그의 감정을 읽는 엄청난 능력이 있지만 에고의 행성에서 유일한 생명체라 사회성은 젬병인 맨티스와 대화할 때 시너지를 일으켜 손꼽히는 개그씬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창작시 유의점
서번트 증후군과 유사한 특징은 있으나 원인과 증상을 특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창작물의 주인공으로 설정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하겠다. 때문에 <이미테이션 게임>처럼 실제 인물을 다루거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처럼 이종족으로 묘사되는 것이리라.
콘텐츠에 있어서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의 효용(?)은 그들의 뛰어난 능력일 것이다. 그러나 서번트 증후군처럼 아스퍼거 증후군 자체가 곧 천재적 능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일반적인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묘사하여 이 부분에 대한 우려를 상쇄시켰다.
취약상황/갈등요인
사회적 의사소통이 어려운 점, 반드시 지켜야 하는 자신만의 원칙과 상동행동 등이 다른 인물들과의 갈등을 빚는 원인으로 묘사된다. 그들만의 원칙과 뛰어난 능력으로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이 주요 스토리라인.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사회의 편견 역시 중요한 갈등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