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현지화에 대한 '심각한' 오해
중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들이 종종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영어가 한국 와서 고생한다.” 영어는 영언데 영어권에서 쓰는 표현이 아니라 한국식 영어인 소위 콩글리시들을 지적하시며, 또는 영어시험을 못 본 친구들을 야단치는 맥락에서 나오는 말씀이었죠.
치맥(chimaek), 대박(daebak), 오빠(oppa), 누나(noona) 뿐만 아니라 대표적 콩글리시인 파이팅(fighting)과 스킨쉽(skinship) 따위의 말들도 영어사전(옥스포드)에 등재되는 날이 올 줄은 그땐 몰랐습니다.
예전부터 선생님들은, 교수님들을 포함해서, 외국의 것이 한국에 들어오면 뭔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질된다는 인식을 갖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 등의 외래종교도, 민주주의와 같은 서양 사상도, 노동운동이나 시민운동의 모습도 한국에서는 뭔가 부정적으로 흘러간다는 식이죠. 가장 얼척이 없었던 말씀은 고등학교 윤리 선생님의 만우절 비판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만우절은 빡빡하던 입시생활에 지친 학생들이 한숨 돌리는 날이었습니다. 만우절이 돌아오면 우리는 다른 반하고 반을 통째로 바꾸거나 책상의 앞뒤를 바꿔놓기도 하고 선생님 들어오시는 문 위에 분필지우개를 올려놓는 등의 장난을 쳤습니다. 수업하지 말고 놀자고 떼를 쓰기도 했었죠.
선생님들도 이날 하루 정도는 아이들의 어리광을 못이기는 척 받아주셨는데 유난히 까칠했던 윤리 선생님 수업이 문제였습니다.
이 양반은 수업하지 말고 놀자는 우리의 요청에, 너희들 만우절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 만우절이 무슨 날인지 알면 이렇게 생각 없이 이럴 수는 없다. 왜 우리나라에서 만우절이 이렇게 됐는지 정말 알 수가 없고 슬프게 생각한다는 말씀으로 한껏 들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셨는데요.
나중에 찾아봤지만 만우절은 서양에서도 그냥 악의없는 거짓말로 장난이나 치는 날이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하니 선생님이야말로 만우절을 무슨 날로 알고 계셨는지 의문이군요.
문화는 전파되고 전파된 문화는 기존 문화의 영향으로 ‘현지화’되기 마련입니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전래되었고 토착화 과정을 거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절에는 삼성각(三聖閣), 또는 산신각(山神閣)이란 건물이 있는데요. 산신 등 한국인들이 원래 믿던 신앙의 대상이 불교에 포함된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이 믿던 유대교에 뿌리를 둔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유럽의 전통적인 문화와 융합하여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카톨릭)이 되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성상을 만들라거나 신 아닌 사람들을 성인으로 섬기라는 말씀 같은 건 없죠.
외래 문화가 토착 문화와 만나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되는 현상을 전문용어로 습합(習合; syncretism)이라 합니다. 불교나 기독교 등 전파의 역사가 깊고 오랜 시간 동안 토착화의 과정을 거친 종교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인데요. 멕시코의 산타 무에르테(Santa Muerte)처럼 외래 문화(종교)가 토착 문화(신앙)와 습합하여 아예 다른 신앙으로 변화한 경우도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를 아즈텍 인들이 죽음에 대한 인식과 스페인에서 전래한 카톨릭의 결합으로 보고 있습니다.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은 이 신앙의 행사로 설탕 등으로 만든 해골을 제단에 바치고 해골 가면을 쓰고 행진하는 등 007시리즈 <스펙터>에 등장하여 <코코>로 유명해졌죠.
생각해보면 영어는 한국에 와서 고생을 한 적이 없습니다. 콩글리시는 한국인들의 언어 습관이 영어라는 언어를 만나 새로운 방식의 영어를 만들어 낸 것으로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가 아닌 모든 나라에는 자기들 나름의 영어표현이 존재합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누군가의 멸시나 비웃음이 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종교나 민주주의 등 외국에서 전래된 다른 것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멕시코의 산타 무에르테 신앙이 본래의 카톨릭과는 전혀 달라졌지만 누구도 '카톨릭이 멕시코 가서 고생한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산타 무에르테는 멕시코인들과 그 조상들의 심성이 가장 잘 반영된 그들의 문화일 뿐이죠.
세계화된 현대 사회에서 외국의 문화는 쉽게 전파됩니다. 그 중 특정 문화 사람들의 심성에 잘 맞는 부분이 강조되어 그 문화의 특색을 갖춘 새로운 문화로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현대 사회의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문화들 중 애초에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없을 겁니다.
그런만큼, OO이 한국에 들어와 고생한다.. 원래는 안 그런데 한국에 들어와서 변질됐다는 소리는 대단히 문제가 많은 인식입니다. 멀쩡하던 것이 한국만 들어오면 이상해진다니. 자기 문화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과 자존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죠. 아마도 진화론적 세계관 또는 식민사관의 영향이 아닌가 싶은데요.
코로나 사태로 3년 가까운 시간을 방안에 처박혀 보내야 했던 청춘들이 필요했던 건 나가서 놀 수 있는 이유였고 방역이 해제된 2022년 10월, 할로윈은 그 이유에 불과했습니다. 젊음이란, 그리고 축제란 그런 것이니까요.
애기들이 귀신 가면쓰고 사탕이나 주고받는 할로윈이 한국에서 성인들이 모여 술마시고 파티하는 행사로 ‘변질’됐고, 그런 어떤 부적절한 욕망을 좇아 모여든 무리들이 시민의식을 상실한 채 무질서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니. 세상에 이렇게 무지하고 오만한 인식이 있을 수 있을까요.
사회적 참사에서 요구되는 일은 진심어린 추모와 애도, 그리고 철저한 책임규명과 재발 방지의 약속이지 이게 원래는 뭐였다는 개인적 식견의 자랑이 아닐 겁니다.
이태원 참사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안식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