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에도 냄새가 있을까?
후각은 인간의 오감중 가장 둔감(?)한 감각입니다. 둔하다기보다는 감각을 지각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할까요? 잠깐 용어를 설명드리자면, 감각은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는 '생물학적 과정'이고 지각은 받아들인 감각을 해석하는 '인지적 과정'을 말합니다.
자극의 감각과 지각 사이에는 약간의 갭이 있는데요. 지각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크기를 절대역치(absolute threshold)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절대역치보다 작은 자극을 식역하 자극이라 하는데, 식역하 자극은 감각은 되지만 지각은 되지 않는 자극들입니다.
후각이 바로 이 식역하 자극이 중요한 감각인데요. 사실 사람들은 오랫동안 후각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어왔습니다. 멀리서 오는 적을 탐지한다던가 깜깜한 밤 동굴 속에서 배우자나 자식을 찾는다든가 말이죠. 그러나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몸에서 나는 냄새를 씻어내고 인공적인 냄새(향수 등)를 덮어씌웠습니다.
그러면서 차차 내가 맡은 냄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채고 구별하는 능력(지각)을 잃어버린 것이죠. 절대역치의 크기가 점점 커졌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코는 여전히 냄새 분자들을 감각하고 그 정보를 뇌로 보냅니다. 그리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죠. 이러한 과정은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인간의 성행동입니다. 사람들의 땀에는 페로몬이라는 성호르몬이 섞여서 분비되는데요. 공기 중에 퍼진 이성의 페로몬을 맡으면 성적흥분이 발생합니다. 물론 성적욕망보다는 사랑에 빠졌다는 감정으로 지각되는 경향이 있지만요. 이런 경우 흔히 '첫눈에 반했다'는 표현을 쓰는데 사실상 '첫코에 반했다'가 맞을 거 같습니다. 현대인들은 이성의 페로몬을 맡았다는 사실을 지각하지 못하니 말입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는 냄새에 극도로 민감한 천재 사이코패스가 냄새를 이용해 사람들을 조종하고, 냄새를 얻기 위해 살인에 빠져드는 모습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만든 향수 냄새를 맡고 이성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까지도 저지르죠. 문학적 과장은 있습니다만 냄새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의식하지는 못할지라도 말입니다.
지금도 냄새 마케팅이라는 영역이 있죠. 특정 매장에 가면 나는 향기가 있는데요.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 냄새를 맡으면 자신도 모르게 특정 브랜드가 떠오르는겁니다. 예를 들어 교X문고에서 나는 나무냄새와 새 책냄새 같은 향기가 그것입니다. 아예 페로몬 향수라고 파는 것도 있고요;
문화에도 냄새가 있습니다. 일단 환경이 다르고요. 일조량과 강수량, 토질이 다르고, 자라는 동식물, 집 짓는 재료, 해 먹는 음식이 달라집니다. 당연히 냄새도 달라지겠죠. 그리고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이러한 냄새에 익숙해질 겁니다. 익숙한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우리집 냄새, 고향의 냄새가 그런거죠.
사실 신경을 쓰고 맡으면 분명히 구별되는 냄새들이 다른 나라에는 있는데요. 그 냄새는 그 나라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이 옷에 밴 냄새와 비슷합니다. 제 개인적인 느낌은 어떤 음식을 먹고 트림한 냄새..와 비슷하다는 느낌이었는데 아무래도 사람들의 체취가 섞이다보니 그렇게 느껴진 것이겠죠;
제가 처음 중국에 갔을 때는 공기중에서 기름에 튀긴 고기요리와 녹차를 먹고 난 다음 트림(죄송;;)한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들렀던 식당에서 맡은 냄새라고 생각했지만 신경을 써서 킁킁거려보니 대기 중에 약 3%정도(주관적 수치입니다 ㅋ) 그 냄새가 떠도는 것 같더군요.
돌아올 때는 공항부터 코를 쫑긋? 세워봤습니다. 우리나라의 냄새가 있을까 하구요. 공항에서 나와 시내 지하철에 올라서자 약간 매콤한.. 굳이 말하자면 밥을 물에 말아 김치랑 먹고 난 다음 트림한(죄송 ㅋㅋ) 냄새 같았습니다. 식재료로 따지만 고춧가루와 마늘 냄새?
왜 외국사람들이 한국사람한테서 마늘냄새 난다고 하잖습니까? 그게 꼭 차별적 표현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 냄새가 있거든요. 물론 그런 냄새는 나라마다 있습니다. 한국이 마늘 냄새라면 중국은 돼지기름 냄새, 일본은 쯔유 냄새, 미국은 버터 냄새라고 해야 할 겁니다.
본인들은 너무나 익숙해서 모르는 것이죠. 감각은 되지만 지각이 어려운 겁니다. 그러나 의식을 하고 맡으려면 느껴지긴 합니다. 물론 늘 그 안에서 살 때는 잘 모르고요. 신경써서 맡는다면(제 경우에는) 외국에 나가서 공항이나 시내에 갓 들어섰을 때, 또는 갓 귀국해서 사람들 사이에 섞일 때 5분에서 10분쯤 느껴지는 정도입니다.
외국에 나갔을 때 느껴지는 설렘 속에는 낯선 곳이 주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안감에는 낯선(코선?) 냄새도 한몫 할 겁니다. 맡아본 적 없는 냄새 속에는 미지의 위협도 숨어있기 마련이니까요. 한편 귀국했을 때 느껴지는 돌아왔다는 안도감에는 익숙한 냄새의 편안함이 있습니다. 그 속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미 다 아는 것이죠.
특정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자기 문화의 냄새에 익숙하고 그것에 안정감을 느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의 가설이 있는데요. 유럽에는 공중화장실이 잘 없습니다. 지하철 같은데도 화장실이 없고 있어도 유료죠. 해서 지하도나 지하철 역의 구석구석에는 사람들이 싸놓은 대소변들이.. 널려있다고 하죠;
세련되고 깔끔한 유럽의 이미지만 갖고 있다가 막상 이런 현실을 접하면 문화충격에 빠지게 되는데요. 이는 사실 유럽(특히 좀 프랑스..)사람들이 갖는 익숙한 냄새에 대한 향수(鄕愁)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유럽, 특히 프랑스에는 화장실이 따로 없고 요강 같은 변기를 사용한 뒤 집 밖에 버리는(!) 식으로 처리를 해 왔는데요.
향수를 비롯해, 귀족들의 하이힐이나 망토, 여성을 길 안쪽으로 걷게 하는 풍습 등이 이와 관련된 문화적 산물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아무튼 오랫동안 프랑스 사람들은 이 냄새 속에서 살아온 것이죠. 그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 냄새를 추구(?)하는 게 아닐까요?
에이 설마.. 하다가도 프랑스 곳곳에 설치된 공중화장실의 모습을 보면 제 가설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 지나다니는데서 소변을 봐야하는 민망한 외양도 그렇지만 그 용량도 몹시 소박하여 소변이 넘쳐 길바닥으로 흐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애초에 이런 화장실이라도 설치된 이유 자체가 이거라도 없으면 하도 아무데나 싸기 때문이라니..
문화와 냄새라는 주제는 어디서도 딱히 연구되고 있는 주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흥미로운 현상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연구할 방법이 애매해서, 또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어서;; 연구가 이루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만, 뭐 생각하는데는 돈이 안드니까요.
언젠가 냄새의 문화심리학이 당당히 학문의 한 축으로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