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성-대상성-자율성 자기 이론의 적용
이 글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심리적 차이(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56)'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위 글에서 저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자기관을 각각 주체성 자기와 대상성 자기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인들은 주체성 자기가 우세하고 일본인들은 대상성 자기가 우세하다는 것이죠.
그러면 중국인들은 어떨까요?
사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심리적 차이를 설명했던 주체성-대상성 자기 이론에는 하나의 구성요소가 더 있습니다. 바로 '자율성 자기'라는 것이죠. 자율성 자기는 마커스와 기타야마(1991)의 상호독립적 자기(independent self)와 상호의존적 자기(interdependent self)에서 상호독립적 자기(independent self)에 해당합니다.
자신을 다른 이들과는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자기관이죠. 이 개념을 사회적 맥락에서 영향력의 방향이라는 차원에서, 주체성/대상성 자기와 대응하도록 사회적 맥락에서 '자율적으로(autonomous)' 행동한다는 의미에서 자율성 자기라 명명한 것입니다. 주체성, 대상성, 자율성 자기의 정의를 다시 한번 보시죠.
저는 이 이론으로 한국과 일본을 비교할 때, 중국도 연구대상에 포함시켜봤습니다. 당시 중국인의 자기관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이론적 배경이 없었지만 그 패턴을 한번 보고 싶어서였죠. 그 결과는 이랬습니다.
한국인들이 주체성 자기가 우세하고 일본인들이 대상성 자기가 우세하다면, 중국인들은 자율성 자기가 우세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말이죠. 중국인(26%)들은 일본인(16%)들에 비해서 주체성 자기가 우세합니다만 한국인(36%)들에 비해서는 정도가 약하고 대신 자율성이 우세한 이들의 비율이 70%로 한국(57%)과 일본(50%)에 비해 높았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큰 나라입니다. 사람이 14억 명이 넘는 만큼 한 번의 연구로 속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조사를 해 봤습니다. 이번에는 개인주의 문화인 미국을 포함시켜서 입니다.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번에도 패턴은 동일했습니다. 주체성 자기가 우세한 사람들의 비율이 한국이 가장 높았고(36%), 대상성 자기가 우세한 사람의 비율은 일본이 가장 높았으며(35%), 자율성 자기가 우세한 이들의 비율은 중국이 가장 높았습니다(62%).
일본과 중국의 경우, 주체성 자기와 대상성 자기의 비율이 약간 바뀌었지만 우세한 자기관에 있어서는 같은 패턴이었는데요. 두 번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주체성 자기 우세, 일본은 대상성 자기 우세, 중국은 자율성 자기 우세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견, 오지랖 등 남들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한국인들과 정해진 규칙 안에서 상대방의 영향력을 수용하려는 일본인들에 비해, 중국인들은 다른 사람 신경 별로 안쓰고 꽤나 자율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는 것 같은데요. 이것이 우세한 자율성 자기의 영향일까요?
하나 더 재미있는 것은 개인주의 문화권인 미국의 경우였습니다. 자율성 자기, 즉 상호독립적 자기의 비율이 86%로 절대 다수를 차지합니다. 남들에게 영향을 미치겠다는 주체성 자기와 타인들의 영향을 수용하겠다는 대상성 자기가 우세한 사람들은 합쳐서 14%에 불과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일단 개인주의 문화와 집단주의 문화의 차이입니다. 개인주의 문화는 마커스와 기타야마(1991)가 예측했듯이 기본적으로 상호독립적 자기(자율성 자기)가 우세합니다. 그러나 집단주의 문화의 경우, 상호의존성이라는 부분을 단순하게만은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는데요.
저는 그것이 주체성, 대상성, 자율성 자기의 비율로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집단주의 문화권에서도 자율성 자기가 우세한 이들의 비율이 적지 않다는 점이고, 다음은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영향력의 방향성에 있어서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어쨌거나 동양과 서양을 상호독립적 자기 vs 상호의존적 자기로 단순하게 이분화해서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죠. 주체성-대상성-자율성 자기는 동아시아 집단주의 문화권 내의 문화 차이를 '어느 정도는'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초점을 중국인들의 자기관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중국은 왜 자율성 자기가 우세한 이들이 많을까요?
주체성-대상성-자율성 자기 이론은 자기관이 문화적 양육방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저는 그 생각을 좀더 정교화하여 특정 시기의 양육태도가 문화적 성격을 형성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문화적 성격은 어디서 비롯되는가https://brunch.co.kr/@onestepculture/400).
이를테면, 4살에서 7살 정도의 나이, 에릭슨의 성격발달단계로 주도성 vs 죄의식에 해당하는 시기의 차이가 한국의 주체성 자기와 일본의 대상성 자기 우세로 이어졌다는 것인데요. 중국이나 미국의 경우도 이와 같은 이해가 가능할까요?
일단, 서양 개인주의 문화권의 상호독립적 자기는 더 이른 시기, 0~1세 경의 양육태도와 관련있는 듯 합니다. 서양 양육은 흔히 '따로 재우는 육아'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기가 갓 태어났을 때부터 다른 방에 따로 재우는 것이죠. 아기는 울고 보채며 엄마를 찾지만 엄마(주양육자)는 웬만해서는(15분까지) 나타나지 않습니다.
애타게 불러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차차 배우게 되면 아이는 '어차피 세상 혼자 사는 것(?)'이라는 삶의 자세를 배우게 되고 이것이 나는 다른 이들과 분리된 존재라는 상호독립적 자기관의 뿌리가 아닐까 하는데요. 반면, 전통적으로 동양은 아이를 따로 재우진 않았고 이것이 기본적으로 상호의존성의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러면, 중국인들의 양육방식이 개인주의 문화권과 가까운 측면이 있기 때문에 자율성 자기(상호독립적 자기)의 비율이 높은 것일까요? 일단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 봤을 때, 중국인들과 미국을 비롯한 개인주의 문화 사람들의 행위양식이 유사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두 나라 모두 자율성 자기의 비율이 높지만 '자율성 자기'의 정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요.
중국인들의 자율성과 미국인들의 자율성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주체성-대상성-자율성 자기 이론으로는 더 이상의 설명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성격에 대한 주류심리학적 접근, 즉 어떠한 특성의 정도로 현상을 이해하려는 방식의 한계가 아닐까 합니다.
따라서 중국인들의 자기관과 문화적 행동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중국 문화에 기반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이 주제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또 말씀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공부가 더 필요할 거 같고요. 독자 여러분들의 참여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