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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Jun 29. 2021

문화적 성격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한국과 일본 부모들의 양육태도 차이

예전에 일본에 갔었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일본에 자주 가지도 않고 오래 살았던 적도 없는 사람입니다만 이 사건은 아직도 뚜렷이 기억에 남아있는데요.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가는 중이었는데 한 역에서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젊은 엄마가 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려니 하고 딴 생각을 하고 있자니 조금 후에 아기 우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러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열차 안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유모차와 엄마에게 쏠리는 것이었습니다. 아기 엄마는 눈에 띄게 초조해하며 연신 사람들에게 ‘스미마셍’을 연발하더니, 다음 역에서 내리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목적지까지는 더 가야하는 듯 했는데 말이죠. 사람들의 무언의 압박 때문에 내린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기가 울었다는 이유로 열차에서 내리는 아기 엄마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한국에서 제가 직접 겪은 일입니다. 몇년 후, 저는 4개월쯤 된 아이를 데리고 아내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습니다. 몇 정거장 안 갔는데 아이가 웁니다. 그렇습니다. 원래 아기는 우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아내와 저는 내릴 생각 같은 건 애초에 하지 않은 채 아이를 달래고 있었습니다.      

육아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한 장면

곧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저희를 흘끔흘끔 보더니, 옆에 서 있던 아저씨는 우스운 표정으로 까꿍을, 앞에 서 있던 여학생은 핸드폰으로 뽀로로를, 자리에 앉아계시던 아주머니는 ‘엄마 힘들게, 왜 우냐’며 가짜로 꾸중을 하시는 게 아닙니까. 물론 눈은 웃으시면서 말이죠.     


그 순간 제 머리 속에는 몇년 전 일본 지하철에서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일본 아기 엄마는 왜 지하철에서 내려야 했을까요?     


일본인들은 갓난아기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민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모차와 승차하는 일은 일본 민영철도협회가 발표하는 지하철 민폐행위 중 7위에 해당합니다. 쓰레기 투기나 음주승차보다 순위가 높을 정도죠.     


일본 국토교통성의 2013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혼잡할 때 유모차를 접지 않고 타는 승객이 있으면 불쾌하다는 응답이 42%에 이르렀습니다(한국 8%). 반면 유모차 승하차 시 주변 승객의 양보를 받은 적이 있다는 항목에는 13%만이 응답했습니다(한국 53%).      


심리학자 기타오리 미쓰다카는 일본인들은 유모차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타인의 사적 영역을 침해’하는 행위로 인식한다고 분석합니다. 일본인들에게 ‘자신의 영역’이 갖는 의미가 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참조: 일본인은 왜 빈 집에 돌아와서도 인사를 할까https://brunch.co.kr/@onestepculture/344)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사회적 규범의 존재를 알기 전인 아기와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에게까지 같은 기준을 요구하다니요. 한국에서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선 한국인들의 민폐에 대한 개념은 일본과 크게 다릅니다. 아기를 데리고 타는 것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뿐더러, 옆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전화통화를 하는 모습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특정 종교의 포교행위나 술 드신 분들의 고성방가, 성추행이나 폭력 정도는 되어야 민폐라고 할 수 있죠. 잡상인이나 구걸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어 저러지’ 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등산 다녀오셨세요?

그러나 아직 찜찜한 점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초조해하던 아기 엄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기 엄마는 왜 그렇게까지 초조해야 했을까요?      


그 이유는 일본인들의 엄마에 대한 태도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남들에게 폐를 끼칠 경우, 일본에서는 비난의 화살이 엄마를 향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민폐를 끼치는 아이를 방치하는 엄마를 용서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일본에서는 남녀 간의 전통적 성역할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는데요.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고 여자는 집에서 육아와 가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찬성하는 비율이 40%에 달합니다(한국 10%). 한국도 꽤나 가부장적인 문화였지만 현대 사회 들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것과 비교되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일본문화에서 엄마는 자식을 사회의 일원으로 키워내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인내해야 하며, 일본 여성들은 상당 부분 이를 내면화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경우에 자신을 책망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송구스러움을 느끼는 것이죠.     


어떤 엄마들은 아이를 제대로 못 키웠다는 주변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한층 엄하게 아이를 혼내거나 그러한 비난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아예 외출을 하지 않기도 한다는군요. 이제야 제가 봤던 아기 엄마의 행동이 이해가 됩니다.     

일본 유치원 아이들

일본의 양육태도는 감정표현을 자제하는 문화 등과 맞물려 상당히 엄격한 편입니다. 집 밖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이어지는데요. 어린이집 단계에서부터 아이들이 지켜야 할 수많은 규칙들을 가르칠 뿐 아니라, 그러지 못했을 때 아이들은 자기비판이나 인격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문화심리학자 가라사와 마유미의 연구).     


일본인들은 이러한 엄격한 양육(시쓰케(仕付)을 당연하게 여기며 오히려 한국이나 중국의 부모들이 자녀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한국의 양육태도는 “당신이 뭔데 우리 애 기를 죽여?” 같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기 살려주는 육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식당이나 목욕탕 같은 공공장소에서 제멋대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나무라면 부모가 나타나 한다는 말이죠.     


최근에는 ‘맘충’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에서도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로 민폐가 되는 행동을 하는 부모들에 대한 혐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만 그 기준이 일본과는 상당히 다르기도 하고, 또 지나친 혐오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목소리 또한 나타나죠. 최근에는 대놓고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부모들이 많이 사라진 것도 사실입니다만 본질은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많이 관대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한국에 거주했거나 거주하고 있는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 부모들의 관대한 양육방식을 언급하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유니버설 발레단의 국제부장을 지낸 미국인 김린(Lynne Louise Kim) 씨 입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엄마들은 서양의 엄마들보다 갓난아이의 울음에 훨씬 더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반응한다고 주장합니다. 


일단 한국 엄마들은 아이와 같이 자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서양식 육아가 소개되고 아이와 같이 자는 것이 아이의 독립성에 좋지 않은 영향이 있다는 말이 있어도 한국 엄마들은 불안해서라도 아이를 다른 방에 재우기를 꺼립니다. 주변에 외국 남자와 결혼한 지인들이 좀 계신데 거의 예외없이 이 문제로 싸우시더라구요.     


한국 엄마들은 아이와 함께 자면서 아이의 조그만 반응 하나하나에 응답합니다. 아이가 울면 먼저 기저귀가 젖지 않았나 확인하고 기저귀가 젖어서 불편한 것이 아니면 젖을 물려보고 그래도 울음이 그치지 않으면 아이의 옷을 벗겨서 어디가 찔려서 아픈 것이 아닌지 확인합니다.      

부르스 커밍스

아이가 계속 울면 아이를 안거나 업고 아이가 잘 때까지 보살피죠. 멀리 갈 것 없이 저희 아이들이 이렇게 컸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자라도 마찬가지인데요. 미국의 한국학자 부르스 커밍스는 한국 가정을 방문하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그들이 자식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데 놀랐다. 두 아이는 자유로운 새처럼 집안을 온통 마음대로 헤집고 다녔다. 부모는 전혀 야단을 치거나 벌을 주려 하지 않았다. 밤이면 아이들은 부모의 팔에 꼭 안겼다.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아이들을 꽤나 허용적으로 키웁니다. 적어도 특정 시기까지는 말입니다. 칭찬도 많이 해주고 해 달라는 것도 웬만하면 들어줍니다. 감정 표현과 스킨십도 많은 편이죠. 부모가 엄격한 경우에는 조부모나 친척들이 이를 보완해 주는 모습도 보입니다.     


외국인들에 의한 이러한 관찰은 뿌리가 깊은데요. 1653년(효종 4년) 한국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하멜도 부모의 관대한 양육태도에 관한 기록을 남겼고, 구한말 조선을 다녀간 다블뤼 주교(1818~1866)도 조선부모들의 끔찍한 자식사랑을 인상깊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신분석이론의 심리학자들은 어린 시절의 경험을 평생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에릭슨은 이 시기에 맺어지는 부모와 아이의 상호작용에 따라 자신과 세상에 대한 태도가 형성된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요.     


특히, 저는 한국과 일본의 육아방식에 있어서 결정적 차이를 보이는 시기로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에서 주도성 대 죄의식이라 명명한 시기를 꼽고자 합니다. 이 시기는 약 3-7세 정도의 나이에 해당하며 아이의 정신적 신체적 능력이 성숙하여 계획을 세우고 이를 달성하고자 노력하는 행동(주도성)이 나타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 아이들은 사회적 규범에 대한 이해가 낮고 때로 매우 공격적이거나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안녕을 침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는 죄의식을 수반하는 강한 제재를 앞세워 이를 조절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한국 부모들은, 특히 일본과 비교했을 때, 자녀의 행동에 대해서 상당히 긍정적인 피드백(격려와 칭찬)을 보이는데 이러한 면은 한국인들의 높은 자기가치감 및 주체성 자기에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반면, 사회적 규범(메이와쿠)을 강조하고 칭찬 등 부모의 긍정적 피드백이 적은 일본의 양육방식은 여러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일본인들의 낮은 자기가치감, 그리고 대상성 자기의 원인이라 생각됩니다. (참조:한국인과 일본인의 심리적 차이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56)   


문화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한국의 양육방식은 자신감 있고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인간 유형을 만들어냅니다. 대신 그만큼 제멋대로 행동하다보니 서로에게 눈살 찌푸릴 일도 많겠죠. 일본의 양육방식은 규칙을 잘 지키고 역할에 충실한 사람들을 키워냅니다. 대신 그 사람들은 자신감이 부족하고 지켜야 할 매뉴얼이 없는 상황에서 큰 불안감을 느끼게 될 겁니다.     


각 문화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가 가장 옳고 또 좋다고 믿죠. 저는 문화심리학자이기 이전에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양육방식의 장점을 한 가지 추가해 볼까 합니다.    

  

근거도 없고 막연한 것일지라도 자신감은 희망이 됩니다. ‘내가 괜찮은/능력있는 사람인데 잘 되겠지 뭐’ 같은 믿음 말입니다. 자신이 주도성을 발휘해 본 적도 있고 칭찬도 많이 받았다면 더하겠지요.      


이런 사람들은 일시적인 고난과 어려움에 쉽게 좌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심리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자아탄력성(self-resilience)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레드 앨퍼드의 책 <한국인 심리에 대한 보고서>에 나오는 한국의 어느 정신과 의사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한국의 아이들은 두세 살이 되기까지 거의 무제한적으로 어머니의 손에 맡겨집니다. 그 결과 아이들은 서구인들은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한 자신감을 키우게 되죠. 물론 삶은 고되고 자신감은 오래 가지 않아요. 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남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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