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성 성격 vs 자기애성 성격
이 글은 앞의 글(문화적 성격은 어디서 비롯되는가https://brunch.co.kr/@onestepculture/400)에서 이어집니다.
앞서 살펴본 일본의 문화적 양육방식은 특정 유형의 성격을 만들어냅니다. 성격이란 개인이 자신의 타고난 기질과 환경 속에서 최적화시킨 행동 유형을 뜻하는데요. 기질이야 개개인이 다 달리 타고나겠지만 양육방식이 유사하다면 아무래도 성격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성격 유형은 이론과 학자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글에서는 이상심리학의 성격장애에서 구분된 유형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오해하실까봐 미리 말씀드리면, 어떤 나라의 문화적 성격이 ‘장애’라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사회, 문화에서나 잘 적응하고 사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개방성이 높고 사교적이며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고 감정 조절에 능하죠. 그러나 부적응적 성격에는 인지양식이나 행동방식에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뚜렷한 유형들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문화적 성격을 이해하는데 좋은 틀이 되어 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유형의 구분은 성격장애에서 빌려왔지만 꼭 부정적인 측면만 보려는 것도 아닙니다. 문화심리학자의 시각에서 본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문화의 부정적 유형에 대한 이해라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서론이 길었는데요. 제가 관찰한 바, 일본의 양육방식에서 발달할 수 있는 성격 유형은 회피성 성격(Avoidant personality)에 가깝다고 판단됩니다. 회피성 성격이란 다른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사회적 상황을 회피함으로써 적응에 어려움을 나타내는 성격을 말합니다. 물론 장애 수준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많지 않겠죠.
다음은 회피성 성격‘장애’에 대한 설명입니다.
-조심성 있고 경계심이 많은 사람, 부끄러움을 타고 염려가 많은 사람으로 보인다. 이들은 낯선 상황이나 새로운 일들을 두려워하고 당혹스러움과 불안을 피하기 위해 늘 익숙한 환경 내에 머물려 한다.
-가능하면 사회적 책임을 맡지 않으려 하며 될 수 있으면 개인적인 대면상황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업무를 좋아하며 책임과 적극성이 요구되는 직무를 감당하기 어려워한다.
-자신에 대한 타인의 부정적인 평가를 가장 두려워한다. 비판과 부정확한 것을 못 견디며 완벽을 추구하고 조절감을 얻고자 자신의 삶의 범위를 협소하게 만든다.
-주된 감정은 수치심이다. 내면에 애정에 대한 강렬한 소망이 있으나 한편으로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성적인 긴장감, 불안, 슬픔, 좌절감, 분노 등을 지니고 있는 경향이 있다. 모욕과 거부에 지나치게 민감하여 은둔해 버릴 정도. 극소수의 친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매우 집착하고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조화롭지 못한 공허함(허무) 이인화된 정서(독백, 분열)와 감정을 전달하는 표현이 흔하다. 정서가 바깥으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축적하여 내부의 풍부한 환상과 상상의 세계에서 발산한다. 이들의 정서/친애 욕구는 시, 음악, 일기..등으로 표현된다.
부모의 엄격한 양육은 타인의 평가에 민감한 성격 유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행동을 일차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행동이 적절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하고 이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행동 양식으로 이어집니다.
부모의 반응이 부정적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겠죠. 자신의 행동이 민폐가 되지 않을까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규율을 어겼을 때 심한 수치심을 느낀 아이들이 갖는 성격 유형이 회피성 성격입니다.
여러 문화비교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보고되는 일본인들의 낮은 자존감, 수치(恥 하지)의 문화, 완벽주의,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 나카마(동료 집단) 중시.. 등은 회피성 성격의 전형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회피성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어기제가 환상(fantasy)이라는 점은 일본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환상은 현실에서 충족될 수 없는 욕구와 소망을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충족하는 방식의 방어기제입니다.
환상은 현실에서는 부적절하거나 불편을 느끼거나 달성하기 불가능한 애정, 공격성, 기타 다른 충동을 배출시켜주는 안전한 수단이죠. 일본에서 애니메이션과 게임산업이 크게 발달한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문화는 욕구 충족의 체계니 말입니다.
물론 회피성 성격의 강점은 장인정신으로 대표되는 완벽주의와 조용하고 질서있는 사회분위기 일 것입니다. 평가에 민감하니 까다로운 평가에도 흔들리지 않을 높은 기준을 세우게 되는 것이겠지요. 내면으로 파고들면서 발달하게 되는 풍부한 상상력 또한 회피성 성격의 장점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양육태도로 예측할 수 있는 한국인들의 성격유형은 무엇일까요? ‘오냐오냐 식’의 양육방식은 자기애성 성격(Narcissistic personality)의 원인으로 꼽힙니다.
다음은 자기애성 성격‘장애’에 대한 설명입니다.
-자신에 대한 과장된 평가로 특권의식을 지니고 타인에게 착취적이거나 오만한 행동을 나타낸다. 타인의 권리, 감정, 요구에 관심이 없거나 이를 참지 못한다. 극단적인 경우 타인의 권리와 복지를 무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충족이나 자기강화를 위해 타인을 이용한다.
-자신을 남들이 평가하는 것보다 현저하게 과대평가하여 웅대한 자기상에 집착하고, 탁월함과 성공을 꿈꾼다. 자신의 능력을 과장, 실패를 성공으로 변형시키며, 자신의 가치를 확대하고 자신이 느끼는 것을 정당화한다.
-좋을 때는 쾌활한 낙천가로 보이지만, 자신감이 흔들리면 화, 수치감, 공허감, 우울 등을 경험하게 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갑질’입니다. 특권의식을 바탕으로 ‘을’들에 대한 착취적 행동을 일삼는 갑질. 한국 사람 모두가 갑질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갑질은 한국의 중요한 문화현상이 틀림없죠.
물론 자기애성 성격의 강점은 무엇보다 높은 자기가치감을 바탕으로 하는 튼튼한 자기탄력성이겠습니다. 자기애가 높은 사람들은 실패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기 탓을 하기보다는 웬만하면 외부에서 그 이유를 찾아 자신을 둘러싼 조건을 끊임없이 개선하려 합니다. 적극적인 대인관계에서 비롯되는 자기표현과 어울림의 문화 또한 자기애적 성격의 장점일 것입니다.
문화심리학에서는 한국인들의 성격특질로 높은 ‘자기가치감’을 꼽고 있는데요. 이 자기가치감은 자기애에서 비롯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음은 자기애에 대한 정신역동이론의 한 갈래인 대상관계이론의 설명입니다.
Freud에 따르면 자기애는 유아기에 형성되는데, 유아가 자기 자신과 대상(object)을 구분할 능력이 아직 없는 상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자기애의 일차적 모습입니다. 만족의 근원이 외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배고플 때 어머니가 젖을 주는 것) 유아는 이를 구분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충족된 욕구가 자신이 창조한 것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죠.
아이는 성장하면서 ‘적절한 좌절’을 통해 만족의 근원이 자신이 아닌 대상(어머니)임을 깨닫고 현실적인 자기 인식을 하게 되는데요. 이때 아이들은 잃어버린 자기애에 대한 대체물로서 자아 이상(ego ideal)을 형성합니다. 자아 이상은 감탄, 희망, 소망의 대상이 되는 이상화된 기준과 목표, 정체성으로 구성됩니다. 즉 자아 이상은 이상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계획하는 내면의 자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의 성취는 자존감과 만족을 높여 주지만, 반대로 이상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수치심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인이 민감한 ‘자존심 상함’이나 ‘한’ 등의 감정은 현실의 삶이 이상적 자기상과 일치하지 않을 때 경험하는 수치심과 관련이 있어 보이며, ‘무시당했을 때’의 격렬한 분노나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한 속성 등도 자기애의 병리적 측면과 유사성을 갖습니다.
그러고 보면, 문화 차이를 불러일으키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부모의 자녀에 대한 태도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 감정표현 방식, 행위양식의 대부분은 부모에게서 배우게 되니까 말이죠.
한국인에게 우세한 주체성 자기, 일본인에게 우세한 대상성 자기(한국인과 일본인의 심리적 차이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56)는 두 나라 부모들의 양육방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