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선생 Jul 29. 2021

일본인들이 선을 넘는 경우

탈아입구와 코스프레

저는 일본 문화를 선(線, 경계)의 문화로 보고 경계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을 바탕으로 일본 문화와 일본인들의 심리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일본어 '알다'에 대한 짧은 생각https://brunch.co.kr/@onestepculture/278, 가면으로 본 한국인과 일본인의 대인관계https://brunch.co.kr/@onestepculture/222, 씨름과 스모에 나타난 한국인과 일본인의 심리https://brunch.co.kr/@onestepculture/342, 일본의 문화적 상징: 벽이란 무엇인가https://brunch.co.kr/@onestepculture/397 등)


일본인들은 모든 일에 선을 그어놓고 그 안에서 행동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본인들이 선을 넘는 경우가 몇 가지 있는데요.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탈아입구입니다.      


탈아입구(脫亞入歐)란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에 들어가야(入)한다는 말로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 후쿠자와 유키치의 주장(脫亞論)에서 비롯된 표현인데요. 조선, 청 등 아시아 나라들은 미개하기 짝이 없어 같이 지내봤자 득 될 것이 없으니 일본은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일본은 실제로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여 아시아에서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유럽의 전철을 충실히 밟은 일본은 한국과 중국, 동남아시아 등을 침략하여 영국, 프랑스 처럼 아시아에서 제국을 건설하게 되죠.     

오랫동안 일본이라는 영역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익숙했던 일본인들에게는 자연적으로 그어져 있던 섬나라라는 한계를 벗어나는 경험이었을 겁니다. 물론 일본도 유럽 여러 나라들처럼 식민지와 좋은 추억을 쌓지는 못했습니다.  

    

일본의 탈아입구는 독일, 이탈리아와 세계를 분할 지배하겠다는 망상으로 이어졌고 결국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뒤 함께 패전으로 마무리되었는데요. 유럽 열강들과 함께 세계를 주름잡던 기억이 그리도 짜릿했던지 ‘탈아입구’는 일본의 대외인식에 중요한 축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일까요. 일본의 문화콘텐츠들을 보면 유럽인들이 주인공인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들장미 소녀 캔디나 베르사유의 장미를 비롯해서 여러 건담 시리즈나 진격의 거인까지 말이죠. 유럽인의 외모를 하고 유럽인의 이름을 가진 주인공들은 일본어로 대화하며 놀랄만큼 일본적인 행위양식을 보이고 있는데요. 이들은 아마도 일본인들이 투사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인 듯합니다.      


요약하자면, 탈아입구로 대표되는 일본인들의 인식은 아시아는 미개하고 유럽은 우월하며 자신들은 아시아보다는 유럽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이 엉뚱하게 불거진 사건이 있었는데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의 저자 마틴 자크에 따르면,

일본은 1999년 실제로 EU에 가입하고자 한다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답니다.      


물론 일본 정부가 EU에 공식적으로 요청한 건 아니고 한 회의에서 나온 얘긴 거 같긴 하지만 귀를 의심케 만드는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마터면 EU(Eropean Union)의 의미가 뭔지 사전을 찾아볼 뻔 했지 뭡니까. 일본은 실제로 자신들이 유럽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일본이 탈아입구를 기치로 근대화에 힘쓰던 19세기 후반에서 1세기하고도 반이나 시간이 흘렀지만 당시에 그어놨던 아시아와 일본 사이의 선은 지금도 뚜렷한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한때 발아래 두었던 한국이며 중국이 그동안 어떤 변화를 거쳐 어떤 위상이 되었는지 굳이 눈을 돌리려 하지 않는달까요?     


이러한 일본의 태도는 저어기 현실이 있는데 애써 그쪽은 보지 않고 자신들이 상상한 내용을 사실이라고 믿는 누군가를 보는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는 이와 비슷한 방식의 문화가 또 존재하는데요.      

그것은 바로 코스프레입니다. 코스프레란 코스츔+플레이의 일본식 약자로, 어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또는 영화의 등장인물처럼 의상과 소품을 갖춰입고 지정된 장소에 모여 사진도 찍고 노는 문화인데요. 코스프레라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문화가 일본에서 발원했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일입니다.     


현실에서는 그토록 명확하게 자신의 영역과 역할을 구분짓는 일본인들이 의외로 현실과 상상의 벽을 넘나드는 이러한 문화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재미있기도 한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코스프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아하지만 일본처럼 1년에 4,5000개의 행사가 열리지는 않죠. 심리학자 히라마쓰 류엔은 사람들은 코스프레를 통해 일상의 자신으로부터 해방감을 맛본다고 분석합니다.     


일본은 지켜야 할 일상의 규범이 많은 사회입니다. 개개인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회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만도 한데요. 물론 이런 점은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제대로 살아가려면 지켜야 할 규칙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보편적일텐데요.     


다른 점은 그러한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식입니다. 일본인들은 평소의 자신이 아닌 다른 기분을 맛보고자 코스프레라는 문화를 만들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원래의 내가 아닌 사람이 되고 싶을 때 어떤 행동을 할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일본인들의 코스프레에 상응하는 한국인들의 방법은 ‘허세’입니다. 허세란 실제 자신보다 훨씬 대단하고 잘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인데요. 이를테면, 지식이 짧은 사람들이 조금 아는 걸 가지고 엄청 많이 아는 척한다든지 돈이 많이 없는 사람들이 값비싼 소품 한두 개 장만해서 있는 척 한다든지 하는 거죠.     


한때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싸0월드에 올라왔던 허세로 가득한 게시물들을 기억하실 겁니다. 모두들 내가 얼마나 멋지고 얼마나 싸움을 잘 하고 얼마나 감성적이며 얼마나 아는 게 많은지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었죠.    

허세도 코스프레와 비슷하게 이게 어느 정도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본인도 보는 사람도 압니다. 그러나 허세의 장(場)은 코스프레 전용 행사장이 아닌 실생활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실생활에서 직접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실제 자신이 아닌 모습을 보이는 것이기에 어떤 사람들은 허세로 만든 자신의 이미지를 실제 자신이라 착각하기도 하죠.     


꽤 한국적인 현상이라고 이야기되는 과도한 체면 차리기나 과소비 등도 같은 맥락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한국인들은 현실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실제보다 훨씬 우월한 누군가의 모습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습관이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 얘기가 나왔던 ‘동일시’라는 방어기제입니다. 허세를 통해 보여지고 싶은 인물이 실제 자신보다 우월한 누군가라는 점에서 허세도 일종의 동일시라고 여겨지는데요.      


정도가 약하거나 의도적인 허세는 문화적 행위양식으로서 나름의 기능도 있습니다만 지나친 허세는 그 꼴을 보거나 당하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자신의 지위가 곧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자신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전방위적으로 행하는 갑질같은 사례도 실제의 자신과 자신이 플레이하고 있는 역할을 구분하지 못한 경우죠.     

무엇보다 좋지 않은 것은 사람들은 실제 자신의 모습과 이상적인 자신 사이에 괴리가 클수록 괴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심한 경우에는 자신이 만들어낸 모습에 빠져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한 채 그야말로 자아를 잃게 되는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면 남들에게 피해 안주고 자신에게도 큰 타격이 없는 코스프레가 일상의 자신을 벗어날 수 있는 더 건전한 방식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어떤 의미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그런 목적으로 코스프레를 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구요.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코스프레로 변신한 나는 현실의 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허세로 포장된 내가 진짜 내가 아니듯이 말입니다. 코스프레는 다들 그러기로 약속한 곳에서 잠시 내가 아닌 척 하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현실을 직면하지 않으려는 욕구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습니다.


코스프레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상상한 세계 속의 그 인물로 현실에 존재하지만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행사장을 조금만 벗어나도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죠.      


더 큰 문제는 현실의 자신입니다. 현실을 회피하는 것으로는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현실의 사람들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기 어려운 것은 물론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상상 속에서 나와 현실과 마주하는 것입니다. (코스프레 하는 개개인들이 이렇다는 게 아니라 현실을 회피하려는 시도들이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코스프레를 하면서 환상 속의 주인공이 된 나를 느끼듯이 탈아입구라는 허황된 구호를 통해 자신들은 아시아가 아닌 유럽이라는 환상에 빠져있는 일본인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국가의 운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죠.      

그들은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 유럽인이 되고 한국, 중국 등 여전히 미개하고 상종 못할 족속들 사이에서 달콤한 우월감을 느낍니다. 19세기 말의 유럽 열강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미개한 이웃들을 눈 아래로 깔아보며 자신들의 말에 따를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 아닙니다. 혼자만의 상상 속에서 나와 세상을 바로 보고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고 관계가 틀어진 이웃이 있다면 관계를 개선할 현실적인 노력을 보여주는 자세가 지금 일본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성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