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심층심리의 키워드
일본 문화콘텐츠, 특히 애니메이션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설정 중에는 ‘벽’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진격의 거인>이나 <블랙 불릿>을 들 수 있는데요. 이러한 작품들에는 거대한 장벽으로 바깥 세상과 분리된 사회가 나옵니다.
벽 밖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진격의 거인)이나 역시 사람을 죽이는 기생생물(블랙 불릿) 등 무시무시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벽을 쌓았죠. 그러나 벽만으로는 안전하지 않아서 언젠가는 벽 밖의 위험과 맞서야 하는 상황입니다.
주된 갈등은 벽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이들과 벽 안에 있어야 한다는 이들의 대립입니다. 벽 안에 있으면 안전하긴 하겠지만 갑작스럽게 벽이 뚫리거나 하면 더 큰 위험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죠. 그래서 벽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이들은 벽 밖의 위험과 맞서 싸워 아예 벽 밖에서 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벽’이 등장하는 콘텐츠들은 대략 이러한 이야기 구조를 갖는데요. 이 벽은 일본인들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상징입니다.
일본인들은 전통적으로 안과 밖을 명확히 구분해 왔습니다. 벽은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의 역할을 합니다. 벽 안쪽은 나의 영역, 내가 아는 곳, 안심할 수 있는 곳입니다.
바깥은 오니(괴물과 적)의 영역, 미지의 세계, 안심할 수 없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벽 안에서 보호받고자 합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도 자신이 아는 영역 밖의 존재들이 두려워 만리장성을 쌓았죠. 그러나 벽은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얇은 벽 하나만 지나면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곳입니다. 언제 괴물들이 벽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올지 모릅니다. 만리장성의 운명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의 동기는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됩니다. 벽을 더 튼튼히 하고 벽 안에서 살든지 벽 밖으로 나가 괴물들과 맞서든지 말입니다. 두려움이 크고 안전욕구가 강한 이들의 선택은 벽 안입니다. 벽 밖으로 나갔다가 호되게 당한 이들은 아예 벽 안에서만 지내기로 마음먹습니다. 히키코모리가 그들입니다.
일본인들에게 벽은 시멘트와 벽돌로 이루어진 실제의 벽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이러한 벽을 느끼는 듯한데요. 혼네와 다테마에로 요약되는 일본인들의 대인관계는 타인과 나 사이의 분명한 경계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많이 친하다고 생각했지만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어떤 벽 같은 것이 느껴졌다’..일본에서 오래 사셨던 분들이 종종 하시는 말씀입니다. 친할수록 흉금없이, 격의없이, ‘터놓고’ 지내는 데 익숙한 한국인으로서는 정말 익숙해지기 힘든 부분이죠.
<에반게리온>의 AT필드는 이러한 사람들 사이의 벽을 상징한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AT필드는 지구를 공격해오는 사도들의 주편에 펼쳐진 일종의 보호막인데요. 에바가 사도를 물리치려면 일단 AT필드를 뚫어야 하는데 이게 정말 더럽게 안 뚫립니다. 신지가 몇 번이나 좌절과 각성을 반복하고 필살기를 몇 번씩 써야 겨우 뚫리죠.
어린아이가 자라서 집 밖으로 나가 자신의 싸움을 하려면 먼저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뚫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일까요. 같은 맥락에서, 에바가 AT필드를 뚫고 사도를 무찌르기 위해서는 조종사와 에바와의 싱크로가 중요하다는 것도 상당히 의미심장합니다.
아시다시피 에바(에반게리온)는 로봇이 아니라 생체병기인데요. 이는 신지 아버지 겐도 박사의 아내의 생체정보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다시말해 조종사(신지)는 어머니와의 합일(싱크로)을 통해 타인의 AT필드를 뚫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인데요.
'나중에 말씀드릴' 일본의 양육방식을 고려해보면 아이와 어머니의 싱크로율은 그다지 높지 않아보입니다. 신지도 그랬구요. 다시 생각해보니 신지가 그래서 에바를 타고 적과 싸우러 나가는 걸 그렇게 고민했나 싶습니다.
이렇듯, 벽은 나를 보호해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가 반드시 부수고 나아가야 할 것이기도 하죠. 벽 안에 있으면 안전하겠지만 그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벽 밖으로 나가는 것은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바깥에는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즐비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목숨을 걸고 싸울 각오가 없이는 벽 밖으로 나서기 힘듭니다. ‘벽’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에서 벽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대개 군사집단(예, 조사병단)이죠.
군인인 그들도 벽 바깥에서 수없이 죽어갑니다. 하물며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들은 어떻겠습니까. 때문에 일본인들은 매사에 목숨을 거는 잇쇼켄메이(一生縣命) 정신으로 무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벽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벽 바깥의 세상을 다룬 일본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바로 <원피스>인데요. 바다로 가득찬 행성에서 펼쳐지는 해적들의 이야기입니다. 바다에는 벽이 없습니다. 항구를 떠나는 순간 어떤 괴물과 적, 풍랑과 맞닥뜨릴지 모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로 나서는 이유는 벽 밖에서 얻을 것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뒤 막대한 금은보화가 구대륙으로 흘러들어왔습니다. 유럽은 이를 바탕으로 기술과 지식을 축적하여 세계를 리드할 수 있었죠.
벽을 넘는다는 것은 인식론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신대륙의 발견은 단지 새로운 땅을 발견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한계를 넓힌 것입니다. 신대륙 이후의 깨달음으로부터 근대의 막이 열릴 수 있었습니다.
원피스의 해적들도 ‘원피스’라는 전설의 보물을 찾아서 세상의 모든 바다를 헤매다니고 있죠. 바다라는 벽은 그들을 막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다가 대항해시대의 상선들을 막을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두려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벽 바깥의 세상에서 일본인들이 의지할 대상은 ‘나카마’입니다. 원피스의 해적들이 그렇게 친구(나카마)에 집착(?)하는 이유가 이것인데요. 나카마(仲間)란 일본 특유의 소집단 문화로 우리말로 ‘동료’ 쯤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앞서 한번 말씀드린 것처럼 일본인들은 나카마 안에서 상당한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바다괴물과 싸우다 팔 하나쯤 잘려나가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정도로 무서운 것 따위 없어보이는 원피스의 해적들은 동료(나카마)가 되기 위해, 동료를 위해 무엇이든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들이야말로 거칠고 험난한 바다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겠지요. 일본에서 <원피스>가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집 밖에 나선 일본인들은 나카마로 벽을 만들어 그 안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안과 밖을 나누고 그 안에 머물기 좋아하는 것은 일본인들의 문화적 본성인 듯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안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벽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인식론의 확장, 즉 자신이 사는 세계의 확장이자 그 안에서 활동하게 될 자아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한때는 세계를 넘나들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뽐냈던 일본이 여러 부문에서 독자 규격을 고집하며 갈라파고스화(갈라파고스 신드롬: 외부 세계와의 교류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생태계에 고립되어가는 현상)되어가는 현 상황은 일본인들의 벽에 대한 생각과 관계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벽 너머에 대한 두려움 또는 벽 안이 주는 안정감이 있겠죠. 그러나 자신들이 아는 범위 안에서 머무르는 한,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도 자아의 확장도 요원한 일입니다.
벽 밖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그들은 무작정 나를 죽이려는 존재가 아니며 그들과 함께 얼마든지 어울려 지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찾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