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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Apr 13. 2021

포켓몬스터로 본 일본의 친구 개념

한일 두 나라의 친구의 조건

포켓몬스터는 최근 가장 큰 인기를 모았던 일본의 문화콘텐츠입니다. 주머니(포켓)에서 꺼낸 공모양 캡슐(몬스터볼)에서 각양각색의 몬스터들이 나오는 이 애니메이션은 1997년 첫 방송된 이후 세계적인 문화현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애니메이션의 인기는 물론, 마트 장난감 코너에 수년째 포켓몬스터 구역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아이들의 시선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수년 전에는 포켓몬 고라는 증강현실 모바일 게임으로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죠.      


포켓몬들이 나오는 스팟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핸드폰을 들이대는 진풍경이 벌어졌었고 포켓몬을 잡다가 어디 걸려 넘어지거나 부딪치는 사고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다섯 살이었던 저희 둘째가 포켓몬 잡겠다고 바다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거 말리느라 진땀을 빼던 기억이 생생하군요.      


저는 오늘, 애니메이션은 물론 피규어, 인형, 게임 등 관련 상품의 판매수익만으로도 독보적인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희대의 문화콘텐츠를 통해 일본인들의 친구에 대한 생각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포켓몬스터의 이야기 구조는 간단합니다. 주인공이 여러 곳에 서식하고 있는 몬스터들을 수집하여 몬스터볼에 넣고 다니다가 적(?)을 만나면 자신의 몬스터를 내보내서 싸우게 하는 것이죠.      

포켓몬 배틀

아동청소년용 애니메이션답게 밝고 아기자기한 그림체에 귀엽고 깜찍한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만, 포켓몬스터의 내용은 적을 무찌르면 더 강한 적이 나오고, 더 강한 적을 무찌르기 위해 더 강함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일본식 스토리 라인을 따르고 있습니다.      


여기에 추가된 것이 바로 포켓몬들인데요. 포켓몬스터에서는 주인공이 직접 싸우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수집한 포켓몬스터들이 대신 싸우는 형태를 보입니다. 몬스터들은 포켓몬스터의 세계 여기저기에서 살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잉어킹..처럼 별볼일 없기로 유명한 몬스터부터 아르세우스처럼 창조주 급의 몬스터까지 다양한 포켓몬들이 있는데요. 포켓몬들은 자유롭게 살아가다가 하루아침에 포획당하여 몬스터볼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그리고 이들과 소유주의 관계는 친구로 규정되죠.      


뭐 좀 어렵게 잡히는 놈들도 없진 않지만 걔들도 일단 몬스터볼 안에 들어간 다음부터는 주인의 명령을 거스르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무 때나 몬스터볼을 꺼내 던지면 나와서 처음 만나는 적과 싸우고, 싸우다가 힘이 약해 쓰러져도 결코 물러나는 법이 없습니다. 싸움에 지면 주인은 잠시 안쓰러워하다가 “더 강해지자!” 등의 말로 포켓몬을 독려합니다.      

가라아아아아아앗!

이런 관계를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포켓몬스터에서는 이 관계에 대한 더 이상의 고민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가까이 (주머니 속에) 있고 내가 원할 때 나와서 내 일을 대신 해 주는 것이 포켓몬들이 하는 일들의 전부입니다.      


조금 단순화시킨 면이 없지 않지만 이러한 ‘친구관계’는 다른 일본 문화콘텐츠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해적왕 루피의 이야기 <원피스>에서 루피는 세계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친구들을 모으는데요.      


이들은 나름 구구절절한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있지만 “너, 내 친구가 돼라”는 일방적인 루피의 요구에 결국 친구가 되고, 그때부터는 하늘이 두쪽나도 변치 않는 우정을 보여줍니다. 물론 친구들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루피라는 캐릭터의 힘도 무시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일본 콘텐츠에서 친구들과의 갈등이나 반목, 배신 등은 좀처럼 보기 힘든 요소입니다.      


친구들은 친구가 위험에 처하면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친구를 구합니다. 평상시에도 늘 즐겁게 웃고 서로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 주죠. 약간의 다툼이나 갈등이 있을라치면 누군가가 나타나 원론적이고 아름다운 표현으로 우정의 소중함을 설파합니다.     

특히 파워레인저 류의 전대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본의 이러한 친구 개념을 ‘나카마’ 의식..이라고 하는데요. ‘나카마(친구 혹은 동료)’는 일본인들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 중 하나입니다.      


문화인류학자 요네야마 도시나오에 따르면, 나카마(仲間)는 일종의 직업적 공동체, 혹은 패거리를 뜻하며 나카마 의식이란 그들이 갖는 동료의식을 말합니다. 나카마는 나카마 의식을 통해 집단을 결속하고 집단의 이익을 공유하며, 타 집단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성격을 갖게 되는데요.      


나카마에는 나카마를 유지하기 위한 규칙들이 존재하며 이를 위반하거나 집단에 비협조적인 이들에게는 가차없는 응징이 이루어집니다. 야쿠자 영화 같은 데서 많이 볼 수 있는 장면들이죠.      


나카마는 일본인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해주는 기본적인 집단입니다. 나와 비슷한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하는 이들로 구성된 나카마의 존재는 일상적으로 역할갈등을 겪는 일본인들의 자아에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나카마의 규범에서 벗어나거나 나카마의 눈 밖에 나는 일을 극도로 피하게 됩니다. 나카마 안에서는 늘 화기애애하고 서로를 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죠. 역할갈등을 겪는 청소년들이 또래집단의 규범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편, 이러한 나카마 의식의 폐해를 지적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사회학자 도이 다카요시는  일본의 젊은 세대는 소위 ‘친구지옥’에 빠져있다고 말합니다. 친구, 즉 나카마로부터 따돌림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겉으로 보여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에너지를 쏟게 되고, 결국 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학자 미야다이 신지는 일본의 젊은 세대가 ‘섬 우주’에 살고 있다는 표현을 씁니다. 자신과 중요한 관계에 있는 나카마에 대해 과도하게 몰두하면서 다른 집단들과는 단절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입니다. 타인과의 단절, 그리고 집단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의 회피가 나카마로 이루어지는 일본식 친구관계의 문제입니다.      



한국에서도 친구와 우정은 대단히 소중하게 그려집니다. 친구는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고 곁에 있어주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콘텐츠에 등장하는 친구들은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언행만 주고받지는 않습니다.     


친구(2001), 써니(2011), 응답하라 시리즈(1988, 1994, 1997) 등에서 볼 수 있는 친구들은 끊임없이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합니다. 사이가 좋을 때도 있지만 사소한 오해나 주도권 싸움, 이성을 사이에 둔 삼각관계 등 이런저런 갈등이 계속해서 나타나죠.      


한국인들에게 우정이란 그런 오해과 반목, 갈등과 질투 속에서 단단해져가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친구기 때문에 사이좋게만 지내야 한다는 생각은 유아들이 주로 보는 뽀로로에서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다음은 뽀로로 주제가 가사 중 일부인데요. 아시는 분은 따라 부르셔도 좋습..      


생긴건 다르고 성격이 달라도 우리들은 친구죠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토라져도

언제나 돕고 언제나 이해하는 우리들은 친구죠 사이좋은 친구죠

조금 큰 아이들이 보는 ‘안녕, 자두야’나 ‘검정 고무신’만 봐도 친구들 사이의 꽤 심각한 갈등들이 묘사됩니다. 때로는 모질고 심한 말로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대놓고 치고받다가 쌍코피가 터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러한 갈등의 정도나 묘사가 꽤 심해서 “교육상 좋지 않다”는 부모님들도 계실 정도죠.     


우리에게 친구는 그런 겁니다. 재수 없을 때도 있고 기분 나쁘게 굴 때도 있죠. 오해일 수도 있고 성격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친구와는 오해는 풀고 잘못은 사과하고, 잘 모르겠으면 혼나고 배워가면서 지내는 겁니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것들은 술 한잔 하면서, 그래도 안되겠으면 주먹을 주고받고서라도 해결하면서 사는 거죠.      


친구에 대한 이러한 생각의 차이는 우선적으로 나카마와 친구의 개념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나카마는 직업 및 계층 공동체에서 비롯된 개념인지라 다소 공적인 성격이 강하고 나카마 내에서의 의무 등이 강조된다면, 한국의 친구는 ‘오래 사귀어 친한 사람’이라는 어원에서 드러나듯이 역사성이 두드러집니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는 수많은 오해와 반목 갈등과 화해의 기억들이 함께 하는 것이죠. 그 모든 시련을 함께 한 사이가 친구이니만큼 친구끼리는 서로 과하게 예를 차리거나 입에 발린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허물없다’는 말은 친구 사이에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한국인들에게 친구는 긴장되고 피곤한 일상에서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친구 지옥>의 저자 도이 다카요시는 나카마 내에서의 원만한 관계만 추구하는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직면의 용기라고 말합니다. 갈등을 회피하고 누군가의 고통과 상처를 외면하는 것으로는 타인과의 진정한 관계는 불가능합니다. 인간에게 타인과의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삶이란 있을 수 없으니 말입니다.  

    

과거의 역사를 외면하고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기준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태도는 어쩌면 일본의 뿌리 깊은 나카마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국은 몬스터볼 안에 조용히 있다가 일본이 “너로 정했다!”하고 던지면 아무 때나 튀어나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는 ‘한국몬’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많은 일을 함께 겪어온 두 나라가 진정한 친구가 되려면 다른 나라 사람들은 친구를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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