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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Feb 26. 2021

환상의 일본 애니 vs 현실의 한국 드라마

문화콘텐츠에서 두 나라 사람들이 보고자 하는 것의 차이

일본의 문화콘텐츠는 신기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보여줍니다. 더이상 수식어가 필요없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아름다운 작품들은 물론, 과거와 현재, 지구와 우주, 현실과 환상을 초월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상상력은 제가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매출은 연 10조원에 달할 정도이고 그중 절반이 해외에서 판매된 금액일만큼 일본 애니메이션의 입지는 확고한데요.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비교할 수 있는 한국의 문화콘텐츠는 드라마나 영화(실사)입니다. 일본에도 드라마와 영화가 있고 한국에도 애니메이션이 있지만 두 나라의 문화가 가장 잘 반영된 문화콘텐츠는 애니메이션(일본)과 드라마(한국)라고 생각되는데요.      


두 나라 사람들이 현실을 보는 방식과 관련되어 애니메이션과 드라마(영화)의 차이는 두드러집니다. 일본인들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환상의 세계를 보려 하는 반면, 한국인들은 드라마(혹은 영화)를 통해 현실 세계를 보려 한다고 할까요?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는 현실을 다룹니다. 일본이나 중국 등 주변국들에 비해 한국은 역사 관련 콘텐츠의 제작이 단연 두드러지는데요. 일제강점기, 6.25, 군사정권, 민주화운동, IMF 등 가슴 아픈 역사도 거침없이 다룬다는 점이 한국의 특징입니다.     

일제강점기 위안부와 학도병의 사랑을 다룬 <여명의 눈동자>, 6.25 전쟁에서 피어난 형제애 <태극기 휘날리며>, 전후 혼돈의 시기를 그려낸 <야인시대>, 개발시대의 꿈과 야망 <야망의 세월>, 군사정권 시기 정경유착의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 남녀의 우정과 사랑 <모래시계>.     


한국의 문화콘텐츠들은 드라마 <서울의 달>이나 <6남매>, 영화 <국제시장>이나 <장수상회>처럼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온 개개인의 삶에 집중하기도 하고 <제 N공화국 시리즈>처럼 생존하는 인물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며 아예 현대사를 통째로 옮겨놓기도 했습니다.     


물론 일부 작품들은 논쟁에 휘말리기도 하지만 한국 문화콘텐츠들은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새로운 시각으로 당대의 사건과 그와 관련한 개인의 삶을 조명해 왔습니다.      


그 나라의 특수한 사정들이 반영되어 있으니만큼 이러한 콘텐츠들은 세계인들의 폭넓은 관심을 얻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만, <변호인>, <택시운전사>, <1987> 등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들은 홍콩 등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회의 시민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기도 했죠.     

주제가 남녀 간의 사랑이든 친구 사이의 우정이든 가족의 소중함이든 깡패 조폭이 나오는 범죄영화든 간에 한국인들은 현실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아니면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적어도 한국 사람이 나오는 한국 이야기인 경우에 말입니다.      


왜 이 말씀을 드리냐하면, 한국인들은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마블 코믹스의 영화같은 환타지, 슈퍼히어로물도 대단히 열광적으로 보거든요. 헐리우드 영화사들이 한국 시장을 일종의 테스트 마켓으로 본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입니다. 온갖 환상적인 이야기가 넘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입지도 꽤 탄탄하구요.     


그러나 한국에서 생산 및 소비되는 문화콘텐츠의 성격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 콘텐츠에서는 괴물이나 귀신도 대단히 현실적으로 묘사되는데요. 귀신, 도깨비나 수백 년을 사는 외계인이 나와도 집세 걱정하고 월급 걱정하며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초자연적 존재가 갖는 특성은 분명히 있지만 하는 행동들은 영락없는 사람들이죠.     

군대만 스물네번 실화냐...

한국에서는 괴물도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가 형상화된 존재로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괴물과 싸우며 괴물보다 더한 현실을 마주하죠.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그렇고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킹덤>의 좀비들이 그렇습니다. 괴물은 죽지만 괴물을 탄생시킨 현실은 그대로 남아있음을 보며 관객들은 통쾌함보다는 찝찝함을 느끼게 되죠.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인데요. 영화 <기생충>의 원작(?)이라는 웃지못할 평까지 받고 있는 <아기공룡 둘리>는 공룡과 외계인, 타조가 등장하지만 그 이야기는 매우 현실적입니다. 제가 어릴 때 방영했던 <달려라 하니>나 <영심이>는 물론 <검정고무신>, <안녕 자두야> 등등 모두 현실세계에 있을 법한 주인공의 어디에나 있음직한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해서 한국 애니메이션은 부모님의 시청지도가 은근히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알록달록 예쁜 색감에 귀엽고 아기자기한 캐릭터가 나온다고 아이들에게 보여줬다간 아직 현실을 감당할 능력이 안되는 아이들이 충격을 받을 수도 있거든요.      


이를테면 <마당을 나온 암탉>이나 횟집에서의 고등어 탈출기 <파닥파닥> 같은 경우는 충격적 결말 때문에 극장에서 아이들이 울고 막.. 뭐 그런 해프닝도 있었다네요. 이것이 한국 문화콘텐츠가 현실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충격의 고등어회

그러면 한국 문화콘텐츠들은 현실만을 보여줄까요? 사실 현실을 잊고 싶을 때 보는 게 드라마나 영화입니다. 한국인들 현실을 잊고 싶을 때 어떤 드라마를 볼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막장 드라마’입니다. 막장 드라마에는 현실에선 구경도 하기 힘든 재벌 3세들, 판검사와 의사들이 즐비합니다. 그들은 대개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은 대략 배다른 남매 사이입니다.      


막장 드라마는 그 설정이나 등장인물들의 면모, 그들의 언행 등에서 극도의 비현실성을 보여줍니다. 한두 번도 아닌 서너 번 꼬인 관계에 일상생활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대사와 리액션까지.. “예나 선정이 딸이에요”같은 얘기를 들으면 마시던 쥬스 정도는 바로 흘려줘야 하고, 따귀를 때려도 물따귀는 기본이요 정성스레 준비한 김치 싸대기 정도는 돼야 기억에 남죠.      

그러나 우리는 현실이 때로는 더 막장일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막장이라고 비웃었던 설정들이 심심찮게 공중파에 보도되는 현실에서 사람들은 ‘00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느끼지 않을까요. 이런 점 때문에 막장드라마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이처럼 현실성이야말로 한국 문화콘텐츠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요. 물론 일본에 현실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심야식당>이나 <고독한 미식가>,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 된 <리틀 포레스트> 등 일본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고즈넉하고 잔잔하게 묘사되는 일상은 한국 콘텐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맛이 있죠.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나 <어느 가족> 등의 영화도 있습니다. 특히 <어느 가족>은 <기생충>보다 한 해 먼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기도 했죠. 차이가 나는 지점은 영화에 대한 반응입니다.      


한국에서는 <기생충>의 수상에 대해서 대통령과 여러 정치인들을 비롯하여 각계각층의 찬사가 이어진 반면, 일본에서는 <어느 가족>에 대해 냉담한 반응 일색이었습니다. 적어도 정치권의 반응은 그렇습니다. 정치와 일상이 서로 나뉘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일본에 이런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로 요약할 수 있는 이러한 반응에서는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애써 보지 않으려는 어떤 절박함마저 느껴집니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의 무게가 감당하기 어려워서일까요.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의 트렌드로 ‘이세계물’이 떠오르고 있는 이유도 한편으로 살짝 짐작해 봅니다.     


예로부터 공자님이 괴력난신(怪力亂神)을 금하신 까닭일까요. 아니면 단군신화에서부터 보여지듯,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일까요. 한국인들의 관심은 현실에 있습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처럼 한국인들은 거기가 개똥밭일지언정 이승(현실)에서 구르고 부딪치고 싸우며 살아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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