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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Apr 28. 2022

(심화) 문화란 무엇인가?

사회 유지를 위한 제도로부터 어린이들이 꾸는 꿈 속까지

이 주제는 예전에 한번 다룬 적이 있습니다. 한선생 문화심리학의 제일 처음 글이었던 거 같은데요. 제 글들이 문화에 관련된 것들이다보니 문화에 대한 정의가 먼저 필요했죠(문화란 무엇인가https://brunch.co.kr/@onestepculture/3).


그 글에서는 인류학자 타일러의 고전적인 정의("문화란 지식, 신념체계, 예술, 도덕, 법 그리고 관습을 비롯해 사람들이 사회의 성원으로 살아가면서 획득하는 능력 및 습속을 포함하는 복합적 총체다(Tylor, 1871))와 함께 문화의 범위와 속성을 네 가지로 정리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E. B. Tylor

첫째, 문화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들이다. 형체가 있는 것들(건물, 의복, 기구, 예술품 등)로부터 형체가 없는 것들(법, 제도, 종교, 도덕, 가치관 등)을 포함한,


둘째, 문화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다. 따뜻한 많은 평야지대에 살던 사람들은 농경문화를, 풀이 많은 초원에 살던 사람들은 유목문화를, 해안가에 살던 사람들은 어업과 상업을 발달시킨 것처럼,


셋째, 사람들은 문화를 지키고 전달한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에 가장 유리한 일이기 때문이다. 


넷째, 그래서 문화는 그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당연하고 익숙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를 기준으로 다른 문화들을 판단한다. ... 였습니다.



그동안 200여 편의 글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면서 문화의 개념에 대한 정리가 한번쯤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화의 정의에 대한 글이 너무 짧기도 했고, '문화란 무엇인가'를 검색해서 들어와주신 분들도 많고 말이죠.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이전 글에서 언급하지 못했던 문화의 몇 가지 측면에 대해 말씀드려 보려고 합니다.


1. 사회 유지 체계로서의 문화

<문화는 사람들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구성원들의 생존과 사회유지는 문화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이자 기능이죠. 이전 글에서는 주로 이 측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정 생태계에서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한 수단들(예, 농경, 유목, 장사, 약탈  등등)과 그로부터 파생한 주거형태, 의복, 음식, 그리고 사회 유지를 위한 제도(예, 결혼, 가족, 형벌 등)가 문화의 사회 유지 체계로서의 측면을 가장 잘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농경문화의 모내기

온대 기후의 강수량이 충분한 평야지대에서는 농경이(아시아), 강수량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유목(북아프리카, 중동)이 생존을 위한 주 산업이 됩니다. 이도 저도 곤란하지만 교통의 요지에 있다면 상업을(그리스), 이도 저도 없고 교통도 불편한 곳에 산다면 전쟁이나 약탈(바이킹)을 생존의 방법으로 선택하게 됩니다.


온대 기후에는 목재를 활용한 집을 짓고 베나 비단 등 다양한 직물로 옷을 해 입습니다. 먹거리도 풍부한 편이라 다채로운 음식문화를 갖게 되죠. 유목민족의 주식은 고기와 동물의 젖입니다. 동물가죽으로 집도 짓고 옷도 해 입습니다. 상업이나 약탈을 하는 사람들은 이것 저것 하겠죠. 문화적 다양성이 커진다고 할까요.


농경사회 사람들은 아이를 많이 낳습니다. 일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많은 유목사회는 일부다처제나 납치혼 같은 풍습이 있습니다. 전쟁이 많으니 인구유지가 관건인데 또 군인(남자)들이 많이 죽으니까 아이를 낳을 사람을 늘리는 겁니다. 같은 이유에서 고산지대처럼 식량이 부족한 지역에는 일처다부제가 나타납니다. 

한 아내와 다섯 남편

인간에게는 인간 종(種)으로서 공유하는 기본적 욕구(basic needs)가 있지만 각자 생존에 필요한 조건들이 다르기 때문에 그 기본적 욕구들을 다른 방식으로 충족하게 됩니다. 문화의 다양성은 일차적으로 여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2. 가치관 및 욕구 체계로서의 문화

이러한 문화의 사회 유지 기능으로부터 사람들의 가치관과 욕구들이 파생됩니다. 사람들은 사회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가치들을 공유하고 후대에 교육합니다(문화의 공유성과 학습성). 법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어떤 가치관을 내면화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으로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 


예를 들어, 농경사회의 구성원들은 어디 돌아다닐 생각 말고 농사를 열심히 지어야 합니다. 농자천하지대본(農子天下之大本)입니다. 농경민족이었던 한국인들이 농사를 열심히 짓기 위해 발달시킨 가치관은 효(孝)였습니다. 사시사철 제사 지내고 부모님 모시려면 장기간 집을 떠나는 일은 엄두도 못 낼 테니 말이죠.

아 좀 나가라고

반면 자원이 부족하고 인구가 많은 지역에는 사람들을 밖으로 내모는 가치관이 발달합니다. Boys, be ambitious! 꿈을 가져라! 나가서 기회를 잡아라! 집에 처박혀 있지 마라! 전쟁이 많은 유목사회나 약탈사회(?)에서는 명령체계에 대한 충성이나 강한 남성성이 요구됩니다. 그래야 잘 싸울테니까요.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도 마찬가지인데요. 물론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가 있고 거기서 비롯된 행동의 차이가 있습니다만 문화에서 요구하는 성역할은 상당 부분 문화화(사회화)의 결과입니다. 남자들이 약탈하러 가면 자기 동네의 생업과 치안을 맡아야 했던(심지어 전투에도 참여했던) 바이킹(북유럽) 여성들의 성역할과 다른 조건에서 살았던 여성들의 성역할은 상당한 차이가 있죠.

바이킹 여전사 (shieldmaiden)

이러한 욕구와 가치관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구성원들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지고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3. 투사(projection) 체계로서의 문화

문화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중 가장 은밀하고 심층적인 부분입니다. 말 그대로 무의식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죠. 투사(projection)란 정신역동이론의 용어로 나의 욕구나 의도를 다른 사람 또는 대상에게서 찾는 방어기제입니다. 


문화심리학에서는 다소 폭넓은 의미로 문화에는 사람들의 무의식적 욕구가 '반영된다', '투영된다' 정도로 쓰이고 있다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주로 전통놀이나 신화, 전설, 민담 등 이른바 '문화콘텐츠'에서 이러한 내용들을 발견할 수 있고요. 

제 책 <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이 이쪽 방면의 접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두 나라의 전통놀이(씨름 vs 스모, 탈춤 vs 노오(能)), 귀신(사연 많은 한국귀신 vs 나와바리가 중요한 일본 귀신), 현대의 문화콘텐츠(실사의 한국 vs 애니의 일본) 등에는 두 나라 사람들이 내면화한 가치관과 욕구들이 투사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차이를 요약한 것이 '선을 넘는 한국인 vs 선을 긋는 일본인'이라는 책의 제목인데요. 두 나라의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어느 정도 있는 분들에게는 직관적으로 탁 들어오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또는 지식을 얻는 데는 '과학적인' 절차와 검증이 필요하다고 믿는 분들에게는 세상 모호하고 애매한 접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문화라는 게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요. 그리고 지식에 도달하는 길은 '과학' 말고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뻔하게 존재하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고 방치하는 것이 진정 과학적인 태도인지 의문입니다.


암튼, 이렇게 오늘은 문화의 정의에 대한 심화과정으로 준비해 보았습니다. 문화라는 거대하고 모호한 주제를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 표지 사진은 <매거진 한경K전통문화 글로벌 트렌드로 주목 │ 매거진한경 (hankyung.com)>에 삽입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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