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성격 유형론
저는 제 책 <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에서 한국인의 성격을 '자기애성 성격', 일본인의 성격을 '회피성 성격'으로 분류한 바 있습니다(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성격https://brunch.co.kr/@onestepculture/399).
요약하자면, 부모의 관대한 양육을 받은 한국인들은 자기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자기상을 갖게 되어 자신의 영향력을 타인에게 미치려 하고 자신의 가치가 무시받는 것을 참기 어려워하는 특성이 있고, 다소 통제적인 양육을 받은 일본인들은 타인의 평가에 불안을 느끼고 그러한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한 규칙에 집착하거나 자신의 내면에 빠지기 쉬운 성격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또 이런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인 모두가 자기애적이진 않을 텐데? 일본인들 중에도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역시 케이스 바이 케이스 아냐? 오늘은 이러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문화적 성격의 유형에 대한 논의를 조금 확장해 볼까 합니다.
문화는 특정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유무형의 사회 유지 시스템입니다. 옷이나 건물, 도구 등 눈에 보이는 것들 외에 어떤 사회의 가치관과 욕구 등도 그 사회를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죠. 이 관점에서 문화를 가치-태도 체계로 보기도 합니다.
여기서 문화의 유형(pattern)이 결정되는데요. 생존과 사회유지를 위한 가치관들은 해당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특정 욕구는 제한하고 특정 행동은 권장하는 과정에서, 또 이러한 내용이 교육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되고 내면화되면서 사람들이 행동하는 범위가 결정되는 것이죠.
개인수준으로 내면화된 한 사회의 표준화된 행위유형이 곧 그 문화의 성격(personality)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국은 생존을 위해 농업이 대단히 중요했고 농업을 장려하기 위해 효(孝)라는 가치를 권장했습니다.
삼강행실도 등 효를 장려하기 위한 책들이 보급되었고 전국에 효자비와 효자각이 섰으며 불효하면 벌을 받고 효를 행하면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들이 퍼져나갔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행동도 효를 행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한 사회에는 효처럼 그 사회의 유지를 위한 핵심 가치들이 있는데요. 이렇게 핵심 가치에서 비롯된 성격유형을 핵심유형(core pattern)*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문화의 대표적인 성격유형이라 할 수 있는데요. 아무래도 핵심가치를 내면화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대체로 효자효녀들이 많다는 인상은 여기서 오는 것입니다.
*핵심유형은 인류학의 '기본성격(basic personality)' 또는 '최빈성격(modal personality)'과 유사한 개념입니다. 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기본적인, 또는 가장 많이 나타나는 성격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핵심가치라고 해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수준으로 받아들여지진 않겠죠. 사회에서 너무나 한 가치를 강조하다보면 의도적으로라도 그 가치를 거부하고 오히려 반대되는 행동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반(反)유형(anti pattern)입니다. 효를 그렇게 강조했던 과거에도 가끔씩 나타났던 불효자/녀들이 이 유형의 사람들이죠.
또한 모든 사회에는 핵심가치 외에도 계층, 성별, 연령, 직업 등등에 따라 권장되는 중요한 가치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모두 사회유지와 관계 있는 가치들이죠. 이를테면, 선비들은 학문에 힘써야 한다던가, 관리는 청렴해야 한다던가, 일하는 사람은 부지런해야 한다던가.. 하는 것들 말입니다.
이러한 중요한 몇몇 가치들에서 주(主)유형(main patterns)*들이 파생됩니다. 각 주유형에서는 그에 반하는 반-주유형(anti-main patterns)들이 따라나오겠지요. 선비들이 열심히 글을 읽지만 놀기 좋아하는 한량들도 있고, 욕심 안 부리고 제 일 잘 하는 관리들 가운데 탐관오리도 나오는 것처럼 말이죠.
*주유형이라는 개념은 인류학자 린튼(Linton)의 '지위성격(status personality)'과 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지위성격은 계층이나 직업 등 한 사회에서 표준화된 역할을 수행하면서 얻게 되는 성격을 뜻합니다.
부(附)유형(sub patterns)은 주유형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가치들에서 비롯되는 유형을 의미합니다. 학문에 힘쓴 선비들 중에서도 학문을 들고 파는 학자, 행정을 잘 하는 관료, 권력에 뜻이 있는 정치인 등이 나뉘는 것처럼 말입니다. 주유형에 비하면 보다 개인적인 특성이 관여되는 유형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각각의 부유형에는 그에 반하는 유형들(anti-sub patterns)이 분화되어 나올 겁니다.
따라서 한 문화 내에 하나의 성격유형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화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가치들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구성방법(제도 등)과 역사적 특수성에 따라 요구되는 가치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각각의 가치를 내면화하는 정도에 따라 각 유형의 스펙트럼(?)도 생길 것이고 개개인의 속성에 따른 차이도 있겠죠.
그러나 모든 변수를 다 고려하다보면 결국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문화의 어떤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유형에 주목해야 할 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가장 효율적으로 설명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유형론이 갖는 장점이니까요.
또한 문화적 성격은 핵심가치의 차원이나 주요한 가치의 경중, 우선순위에 따라 다른 측면이 부각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국의 전통적 가치관으로 본다면 효(孝)가 핵심가치일 수 있습니다만, 양육방식이라는 차원에서는 자기가치감..이 핵심가치일 수 있는 것이죠.
따라서 한국인들의 문화적 성격도 보는 관점에서 다양한 측면이 조명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 아니구요. 다만 제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은 보다 '심리학적인'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 성격의 형성과정에서 부모의 양육방식을 강조하고 있고, 무의식의 영향을 강조하는 정신역동이론의 관점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쪽부터 논의를 풀어나가기 시작한 것이죠.
오늘은 다소 낯선 용어들을 써가며 문화적 성격의 유형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제가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의 성격을 규정하거나 방어기제 이론을 차용하여 문화적 행위양식들을 말씀드린 것이 어떤 이론적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되셨으리라 봅니다.
한국인(또는 일본인)들의 성격 중 반유형과 주/부유형에 대해서는 다음 글들에서 또 차차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이 글에서 소개한 핵심유형/반유형, 주유형(반주유형), 부유형(반부유형)은 문화심리학자로서 제가 개념화한 용어입니다. 성격(personality) 대신 유형(patter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핵심/주/부/(반)..라는 차원이 문화적 성격의 하위 유형에 대한 분류이기 때문입니다.
이 개념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인용하실 때는 출처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