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를 위한 심리사전 ⑧
외톨이. 부끄럼쟁이. 혼자 있기 좋아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으나 회피성 성격은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에 대한 다른 이들의 부정적인 평가를 가장 두려워한다.
낯선 상황이나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며 불안을 원하지 않아, 늘 익숙한 환경에 머물고자 한다. 다른 사람과 대면할 상황을 피하고 가능하면 사회적 책임을 맡지 않으려 한다.
강렬한 애정 욕구가 있지만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에 불안과 슬픔, 좌절감 등 부정적 정서를 자주 경험한다. 우울장애와 불안장애(사회공포증 등)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으며, 소수의 친한 이들에게 지나치게 의지하는 모습으로 의존성 성격장애와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부끄러움이 유난히 많고 낯선 사람과 새로운 상황을 두려워하며, 친구 없이 홀로 지냈던 경우가 많다. 청소년기에서 성인기 초기에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지만, 성인기 이후 점차 완화되는 경향이 있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의 라스(라이언 고슬링 분)는 내성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정도가 지나쳐 마주치는 것도 최소화하기 위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형과 형수에게 집을 내어주고 자신을 헛간에서 생활한다. 직장에서 라스에게 호감이 있는 직장 동료 마고(켈리 가너 분)에게도 전혀 반응하지 않으며, 형 부부와 함께 식사하는 일도 어려워한다.
어느 날 라스에게 수상한 상자 하나가 배달되는데, 그것은 성인용 리얼돌로, 라스는 리얼돌을 ‘비앙카’라고 부르며 마치 살아있는 사람으로 대한다. 형 부부는 그런 라스가 걱정되어 비앙카와 함께 병원을 찾는다. 의사는 비앙카를 대하는 라스를 보며, 그가 망상을 겪고 있지만 치료해야 하는 정신 질환은 아니라고 한다. 또한 형 부부에게 비앙카를 라스가 대하는 것처럼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해 달라고 한다. 이에 형 부부는 마을 사람들과 라스의 직장 동료들에게 찾아가 비앙카를 사람처럼 대해달라고 부탁한다.
그 후 마을에서 비앙카는 정말 살아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졌고, 처음에는 어색해했던 마을 사람들도 비앙카로 인해 라스가 사람들과 조금씩 교류하는 것을 보고 더욱 애정을 쏟는다. 비앙카와 함께 라스가 규칙적으로 병원을 찾는 가운데, 의사는 라스의 마음속에 있는 깊은 상처를 알게 되었다. 라스 자신을 낳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사람들과 교류하기를 피하고 다른 사람의 피부가 몸에 닿기만 해도 통증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는 강한 회피성 성격의 인물이 자기 내면의 상처를 알아채고 사람들과의 연결감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비록 리얼돌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망상의 단계가 있었지만, 라스 주변의 인물들의 따뜻한 헌신과 조금씩 노력해가는 라스 자신의 노력으로 현실에 직면할 수 있게 된다.
행동 특성
부끄러움이 많으며 조심스럽고 경계하는 모습. 보통 말이 느리고 부자연스러우며 자주 머뭇거린다. 대체로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않으나 때때로 들뜨고 빠른 폭발적 행동이 나타난다. 잠재적 위협을 두려워하며 별일 아닌 일들에 과민하게 반응하고, 다른 사람들의 조롱과 비난을 걱정한다. 극단적일 경우에 은둔 수준으로 위축되기도 한다.
정서가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고 내면에서 풍부한 환상과 상상의 형태로 발산한다. 타인과의 교류와 애정에 대한 이들의 욕구는 시나 음악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자의식이 강하지만 자존감이 부족한 편이다. 타인의 부정적 평가를 두려워하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성취를 평가절하하며, 스스로 고립시키고 삶이 공허하다고 생각한다.
〈김씨 표류기〉의 여자 김 씨(정려원 분)는 외모 때문에 왕따를 당하고, 그 충격으로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 바깥 생활은커녕 가족들과도 마주치지 않고 좁고 어두운 방에서만 생활한다. 그녀가 세상을 만나는 유일한 방법은 인터넷과 카메라다. 인터넷으로는 가상의 자신을 만들어 타인들에게 사랑받는 삶을 즐기며, 카메라로는 일 년에 두 번 민방위 훈련일에 모든 것이 멈춘 세상을 관찰하는 것이 취미다. 이 영화의 재미는 ‘스스로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사는 인물들이 서로를 알아챈 유일한 사람이라면 어떡할까?’라는 물음에 있다.
남자 김 씨는 자살을 시도했다가 한강의 작은 무인도 ‘밤섬’에 갇히게 되는데, 김 씨는 처음에는 밤섬에서 벗어나고자 발악해 보지만 실패한다. 여자 김 씨는 민방위 훈련일에 멈춘 세상을 카메라에 담던 중 밤섬에 갇힌 남자 김 씨를 발견한다. 남자 김 씨를 오래 지켜보다가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여자 김 씨는 3년간의 은둔 생활을 끝내고 집 밖으로 나와 한강까지 뛰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 김 씨가 그 방을 극적으로 벗어난 것은 아니다. 다시 방 안에 들어오지만, 그 과정을 통해 조금씩 변할 뿐이다. 그 뒤로도 남자 김 씨는 흙바닥에 커다랗게 메시지를, 여자 김 씨는 사람들을 피해 한강으로 가 병에 담긴 메시지를 던지며 소통한다. 둘이 짧은 영어 메시지로 아주 천천히 관계를 쌓아가던 중 밤섬에 공사하는 인력들이 오르게 되고, 남자 김 씨는 밤섬에서조차 쫓겨난다. 자신이 살던 세상과 분리된 밤섬에서 비로소 평안을 찾은 김 씨는 또 한 번 절망하고, 죽기 위해 63빌딩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뒤늦게 여자 김 씨가 그를 만나기 위해 쫓기 시작하지만, 간만의 차이로 여자 김 씨는 남자 김 씨가 탄 버스를 아쉽게 보내게 된다. 그러나 때마침 민방위 훈련이 시작되어 도로 위 모든 차량이 멈추면서 여자 김 씨는 버스를 잡아 타고 남자 김 씨와 만나게 된다.
영화는 둘이 서로의 이름을 처음 밝히며 인사하는 것으로 끝나며, 물리적, 심리적으로 갇힌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고 소통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통해 조금씩 회복해나가는 과정을 다룬다. 훌륭한 사람 한 명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고 조심스럽게 소통하면서 서로를 구원해나가는 이야기다.
무의식적 행동과 욕구
타인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현실에서 충족될 수 없는 욕구와 소망은 환상(상상)을 통해 충족한다. 환상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거나 그들의 부정적 평가를 두려워할 필요 없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고립으로 안전감을 얻고, 반면에 사회적 교류 결핍의 외로움은 환상을 통해 채워나간다. 이런 환상은 뛰어난 작품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영화 〈네버랜드를 찾아서〉의 극작가 제임스 배리(조니 뎁 분)는 동화극 〈피터 팬〉을 쓴 원작자가 극을 쓰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제임스 배리는 사교적인 만남을 불편해하고 유일한 가족인 아내와도 내밀한 소통을 하지 못하고, 최소한의 사회적 관계만 구축하며 글을 쓴다. 자신이 쓴 극이 관객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까, 무대 위에서 극이 올려지는 동안 커튼 뒤에 몸을 가리고 관객들의 반응을 살핀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주목받는 상황에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다.
우연히 산책길에 만난 실비아와 아이들이 제임스의 영감을 자극하고, 특히 피터라는 아이에게서 특별한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아이의 이름을 딴 〈피터 팬〉이라는 동화극을 쓰게 된다. 그러나 영화 속 피터의 대사에도 있듯이 〈피터 팬〉의 ‘피터’는 제임스 자신이며, 어른이 되기를 멈춘 자신을 ‘피터’라는 인물로 형상화한 것이다.
제임스가 〈피터 팬〉 동화극을 완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비아가 병으로 죽게 되는데, 아이들의 후견인으로 제임스를 지목했다. 제임스는 아이들의 후견인이 되겠다고 결정한다. 이는 아이들을 통해 자신을 객관화하게 되었고, 아이들을 위해 자기 자신의 회피성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
내향적이고 소심한 기질
대단히 내향적이고 소심한 기질은 가족력이 어느 정도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기질적으로 수줍음이 많고 억제적이다. 외부의 위협에 과도한 민감성이 있는 경우, 사소한 위협에도 교감신경계가 과도하게 흥분할 수 있다. 일상에서 빈번하게 겪을 수 있는 불쾌한 일에도 높은 긴장도를 보이며, 경계하는 모습을 취한다.
부모의 지나친 개입이 불러온 수치심
과도한 수치심과 죄의식을 유발하는 양육 태도가 회피성 성격장애의 원인이 된다. 대개 2살 무렵에 시작되는 배변 훈련은 스스로 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율성을 경험하게 해 주지만, 부모의 지나치게 엄격한 개입은 수치심을 일으킨다(에릭슨의 ‘자율성 vs. 수치’단계). 또한 4살 무렵부터 아이들의 인지능력과 신체 능력이 발달하여 행동의 주도성을 획득하려고 한다. 이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제재는 죄의식을 불러일으켜 주도적이지 못하고, 타인의 평가에 민감한 성격을 형성한다(에릭슨의 ‘주도성 vs. 죄의식’ 단계).
부정적 자아상이 관계를 회피하게 만든다
부정적 자아상과 연관된 수치심. 어렸을 때 경험한 수치심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구나’, ‘나는 뭘 해도 잘하지 못하는구나’와 같은 부정적인 자아상으로 연결되고,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평가가 두려워 관계와 새로운 상황을 회피하게 된다. 이는 지속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회피하게 되고, 자신에 대한 부적절감으로 괴로움을 호소한다. 자신에 대한 부적절감으로 타인들에게 주목받는 상황을 피하게 되고, 어쩌다 가끔 듣게 되는 부정적인 평가에도 과민하게 반응한다. 이를 피하려고 고립과 회피를 선택하게 되고, 이 과정이 패턴화된다.
네덜란드 영화 〈블라인드〉에서 마리아(핼레나 레인 분)는 백색증으로 태어나 어릴 때 받은 학대로 얼굴과 몸에 깊은 흉터가 있는 인물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옷으로 온몸을 감싸고 다닌다.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루벤(요런 셀데슬라흐츠 분)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괴로움에 물건을 마구잡이로 부수는 등 광폭한 행동을 보인다. 루벤를 위해 어머니가 고용한 책 읽어주는 사람에게도 난폭하게 굴어, 마리아를 제외하곤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다.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마리아는 루벤을 통제하고 시력을 잃은 삶에 적응하도록 도와준다.
어머니는 얌전해진 아들을 보고 마리아가 미인이라고 속여 루벤이 더욱 그녀를 따를 수 있게 거짓말한다. 그러다 루벤은 시력을 살릴 수 있는 수술을 받게 되고, 루벤의 어머니는 마리아에게 떠나달라고 부탁한다. 시력을 서서히 회복해가며 루벤은 마리아를 찾기 위해 노력하며, 우연히 찾은 도서관에서 마리아의 목소리를 듣고 알아보게 된다.
그러나 시력을 회복한 루벤이 자기 자신의 외모를 사랑할 리 없다고 생각한 마리아는 루벤을 떠난다. 설상가상으로 루벤의 엄마 또한 지병으로 죽게 된다. 홀로 남은 루벤은 엄마가 마지막으로 전해준 마리아의 편지를 읽으며, 마리아가 사람들을 회피하게 된 경위와 자신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다. 이에 루벤은 ‘진정한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자기 자신의 눈을 손상해 다시 시력을 잃은 채 마리아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영화는 끝이 난다.
회피성 성격이 병(disorder)이 될 때
자기주장을 하지 못하고 극도의 내성적인 모습을 보인다. 사회적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우울장애와 불안장애, 특히 사회 불안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대인관계에 대한 높은 긴장과 자신에 대한 부적절감이 지속되며 사회 불안 증세가 악화하면,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자신을 완전히 고립시키기도 한다.
은둔형 외톨이까지는 아니더라도, 회피성 성격의 인물은 직업을 선택할 때 사람과 많이 접촉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을 선택한다. 오랜 시간 혼자 있으면서 환상이 심해져 망상장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내겐 가장 사랑스러운 그녀〉의 라스처럼 내적인 갈등이 환상에 투영될 수 있다.
범죄 가능성은 크지 않다
회피성 성격장애가 있는 이들은 대인관계나 익숙지 않은 상황을 회피하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거나 범죄에 관련될 가능성이 비교적 낮다. 회피성 성격장애의 사람은 큰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손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산다.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주변 환경도 자신이 조절 가능한 범위 내에서 능동적으로 바꾸려고 한다. 타인으로부터 거부당하는 것이 두려워, 일정한 거리를 두고 타인을 배려하고 친절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많지만, 회피성 성격 인물들은 낯선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해 의도치 않게 종종 오해를 받기도 한다.
자신이 상처를 잘 받기 때문에 남들이 어떻게 상처받는지도 잘 안다. 따라서 집단에 문제가 생겼을 때 안정적이면서 보수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들이 내놓는 해결책은 집단의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현명한 전략으로 무리수를 두지 않으며, 희생양이 필요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범죄자라기보다는 환경과 집단을 지키는 인물로, 적극적으로 자신을 지지해주는 파트너를 만나면, 이들에게 내재된 장점이 극대화할 수 있다.
부모와의 관계 _ 양육
수치심과 죄의식을 강조하는 양육 태도. 자녀에게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경우, 아이는 자기 자신의 행동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수치심을 경험한다. 부모의 완벽주의적 성격이나 주위의 높은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는 경우(종손, 집안의 운명을 책임진 장남, 장애가 있는 형제를 가진 사람 등)에 이러한 양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취약 상황, 갈등 요인
원치 않아도 해야만 하는 대면 상황이나 원치 않는 사회적 책임을 맡아야 하는 경우(회피하고 싶지만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의 압박), 회피성 성격의 사람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한, 타인의 부정적 평가는 회피성 성격을 가진 이들을 더욱 위축되게 한다.
유아·청소년기, 타인들의 평가로 인한 트라우마적 사건이 있을 수 있다. 〈김씨 표류기〉의 여자 김 씨와 같이 자아 정체감을 형성하고 타인의 시선에 민감해지는 청소년기의 트라우마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경험한 학대나 보호자를 잃는 트라우마적 사건을 경험하면서 타인에 대해 높은 긴장감을 가지게 되고 이것이 성격에 고착되어 회피성 성격으로 굳어지기도 한다. 〈블라인드〉의 마리아나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의 라스처럼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고, 타인의 존재가 상처로 다가와 대인관계 자체를 회피하게 만들기도 한다.
회피성 성격과 관련된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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