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선생 Dec 07. 2022

월드컵을 보는 우리의 마음

한국축구와 자기객관화

월드컵 시즌이다. 한국은 1승 1무 1패로 조별리그를 통과하여 16강에 진출했다. 사상 세 번째 16강 진출도 기쁜 일이지만 더욱 만족스러운 것은 경기 내용이다. 강팀들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강팀을 만나면 하프라인 아래에서 공을 돌리며 언제 올지 모르는 역습의 기회만 노리고 있던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2006년 월드컵 스위스전

2006년 월드컵이 떠오른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던 나는 장인어른과 함께 경기를 보았다. 0:2로 졌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스위스전이었을 것이다. 경기는 잘 풀리지 않았고 장인어른은 연신 탄식을 연발하셨다. 나도 물론 안타까웠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아버님의 말씀이었다. “에이~ 안되겠다. 역시 우린 안돼!”


한국은 그 해 월드컵에서 1승 1무 1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16강에 오른 올해의 성적과 같다. 결코 못하지 않은 성적이다. 그러나 4강까지 올랐던 2002년 월드컵이 4년 전이었다. 그리고 조별리그조차 통과하지 못한 세월이 32년이었다. 한 번의 성취로 풀리기에는 너무 깊은 한이었을까. 4강의 꿈에서 깨어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역시 우리는 안된다는 깨달음이어야만 했을까.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기에 장인어른의 탄식이 더 속상했던 기억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뒤이어 전쟁을 겪으며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현대를 맞았다. 세계에는 일찌감치 열강 반열에 든 서구 강대국들이 있었고 그들과 겨루기에 한국의 현실은 너무나도 초라했다. 한국 전쟁 후 1년이 지나지 않아 출전한 첫 월드컵에서 한국은 헝가리에 9:0, 터키에 7:0 패배를 당하고 짐을 싸야 했다.

무려 푸스카스의 슛

국력이 조금씩 오르며 한국 축구의 도전도 이어졌다. 그러나 세계의 벽은 높았다. 32개국이 오르는 본선에는 꾸준히 진출했지만 16강 진출은 고사하고 1승을 올리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서구 열강들과 한국의 차이는 명확했고 우리의 한계 또한 거기까지인 줄 알았다. 2002년 전까지는.


2002년 월드컵은 한국 축구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한국인들에게 있어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평가전 때부터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등과 대등한 경기를 펼쳐 기대감을 높이더니 조별리그에서는 폴란드와 포르투갈을 꺾고 2승 1무로 사상 최초로 16강에 진출했다. 그 후로도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 세계적인 축구강국과 맞붙어 아시아 국가 최초로 4강에 올랐다.

늘 우리는 안된다며 자조에 빠져있던 한국인들에게 한국 대표팀이 넘어선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축구팀이 아니라, 현대사 이후로 계속해서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던 서구 열강 그 자체였다. 2002년 여름이 그토록 뜨거웠던 이유다.


그래서 2006년의 실패는 누군가에게는 더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제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줄 알았는데 다시 그들을 넘어서지 못하던 옛날로 돌아가 버린 듯한, 그리고 다시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역시 우리는 안된다는 장인어른의 탄식은 열등감으로 가득했던 현대사를 겪어온 한국인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2006년으로부터도 16년이 더 흐른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듯하다. 물론 승패에 일희일비하는 분위기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옛날과는 달리 경기 자체에 집중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기고 지는 것은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늘 있는 일이다. 이기면 좋겠지만 멋진 경기력과 이기고자 하는 투지를 보였다면 지더라도 만족할 줄 아는 것이 강팀, 아니 강팀 서포터즈의 자세다.

가나전 조규성의 골

우리가 축구의 승패에 크게 연연하지 않게 된 것은 지난 20년간 한국이 경험해 왔던 일들과 무관하지 않다. 스포츠에서, 경제에서, 문화에서, 예술에서 한국은 지속적으로 성취를 이루어왔다.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느꼈던 강대국들과 수많은 분야에서 겨뤄왔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축구에서 이기고 지는 것 정도로는 그 사실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한국인들은 이제 깨달은 듯하다.


브라질과의 16강 전에서 한국은 4:1로 패배했다. 크게 진 것 같은 점수와는 별개로 한국팀의 점유율은 45%에 달했다. 선수들은 주눅 들지 않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경기장과 방구석의 붉은 악마들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눈물과 아쉬움이 있을지언정 우리는 역시 안된다는 자조 섞인 한탄은 더이상 없다. 축구를 축구로 볼 수 있게 된 것. 그간의 자기객관화의 결과다.   

**교수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