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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Jan 12. 2023

전통은 어떻게 현재가 되는가

한류의 기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한류가 세계적 문화현상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한류가 어디서 비롯되었느냐에 대한 이견이 많습니다. 그 기원을 알아야 변화, 발전에 대한 청사진을 그릴 수 있으니 한류의 기원에 대한 논의는 꼭 이루어져야 할 것임에는 틀림없겠죠.


그러나 그 중요성에 비해서는 또 뾰족한 답이 없는 논의이기도 합니다. 사실 한류의 기원을 밝히는 일은 산업적, 문화교류적 측면에 비해서는 딱히 돈 되는 분야도 아니고; 잘못 접근했다간 국뽕 논란에 휘말릴 수 있는 민감한? 주제인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궁금합니다. 제가 또 원래 돈 안 되는 걸 궁금해 하는 사람이기도 하구요. 한국에서 발생한 현상의 이유를 탐구하는 것이 제 일이기도 합니다. 모르죠. 언젠간 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 시작해 보겠습니다.


우선은 한류가 우리의 문화적 전통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가 있습입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문화 콘텐츠가 한국의 문화적 배경에서 나왔으리라는 아주 당연한 생각이지요. 그러나 한류가 한국 문화의 어느 시대, 어느 분야의 어디서 비롯되었는가를 따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피 땀 눈물~

일단, 한국은 조선에서 이어지는 나라입니다. 조선은 유교를 국시로 공맹의 도리가 500년을 흘러넘쳤던 나라죠. 사농공상, 선비의 나라이자 광대를 천민으로 차별하던 나라에서 춤과 노래, 연기를 바탕으로 하는 한류가 넘쳐난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시대의 아무 전통을 끌어 오는 것 역시 한류의 기원을 밝히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과거 실제로 발표된 '학술 연구' 중에는 싸이의 말춤에서 수렵도를, 걸그룹들의 약진에 무용총 벽화를 갖다 붙이며 '고구려의 자유롭고 분방한 기상'이 한류의 뿌리라는 주장도 있었죠.

지지지지 베이베베이베베이베~

현대 한국인의 심성은 물론 고조선부터 이 땅에 살아온 선조들에게 이어받은 것이겠습니다만, 고구려의 음악과 춤도 남아있지 않은 지금 한류의 기원을 고구려에서 찾는 것은 무리입니다.


음악과 춤, 연기의 전통이 남아 있어도 전통과 현대의 접점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국악과 K-pop 사이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습니다. 박자체계, 악기의 구성, 연주법, 창법 등 아예 모든 것이 다르죠. 탈춤과 K-드라마,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시대의 국악인들이 K-pop으로 이어지고 조선시대 탈춤 추던 사람들이 연극, 영화의 기틀을 다졌다는 뚜렷한 실증적 증거는 찾기 힘듭니다. 그러다보니, 한류는 한국의 전통과는 관계없는 현대 한국의 산물이라는 주장도 거센데요.


현대 사회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한 분야들에서 한류의 기반이 만들어졌고 지금 세계적 현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죠. 극단적인 이들 중에는 한류는 개개인의 성취이지 한국 문화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YG의 양현석 대표

K-pop은 SM의 이수만씨나 JYP 박진영씨의 선견지명과 소속 가수들의 뛰어난 재능이, K-드라마와 영화는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이나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같은 뛰어난 감독이 만든 것이지 그들이 한국의 전통 문화에서 배운 것은 없다는 이야기죠.


앞서 말씀드렸듯이, 전통 문화와 현재 사이의 접점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이런 주장까지 나오는 것 같은데요. 저는 이러한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을 뿐아니라 강력하게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문화는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답은 문화 '심리'에 있습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한국인들의 '문화적 동기'가 전통과 현재의 간극을 메우고 미래의 문화 현상을 예언할 것이라는 점이죠.

그 문화적 동기는 '표현 욕구'입니다.


지금부터는 표현 욕구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전통과 현재를 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국악, 즉 전통음악의 특징 중 하나는 다양한 박자 체계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 음악은 보통 2분박(4박자) 계열의 박자 체계를 갖는데, 2분박 계열의 음악은 세계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3분박이 존재하는데요. (인도와 아프리카 일부 문화, 서양음악에도 있긴 하지만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쉬운 예로, 우리나라 사람이면 모를 수 없는 '아리랑'이 3분박입니다. 보통 서양악보에서는 9/8박이라는 낯선 표기로 표기됩니다. 더군다나 굿할 때 치는 무속음악에는 2분박과 3분박이 혼합된 혼합박이 등장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박자가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 알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혼합박의 예는 '엇모리' 장단을 들 수 있는데요. 급작스럽거나 신비로운 분위기로 국면을 전환하는 대목에서 자주 쓰입니다. 대표적으로 수궁가의 '범 내려오는 대목'이 있죠.

또 하나의 특징은 '농현(弄絃)'인데요. 악기의 줄을 연주자의 마음대로 '갖고 놀아' 음의 변화를 주는 기술입니다. 부는 악기에서는 농음이라고도 하지요. 바이브레이션이 이 농현/음의 예인데, 한국음악은 이 바이브레이션의 음폭과 주파수?가 악기마다, 연주자마다 각각 다르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러한 특징은 조성진 씨를 비롯한 한국인 서양음악 연주자들에게도 나타납니다. 저는 이것이 한국문화의 특징이라 보고 있는데요. 서양음악에는 '루바토'라고 합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씨가 이 루바토로 유명하죠.

피아니스트 조성진

농현, 농음, 루바토.. 등은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 본인만의 스타일입니다. 한국인들이 옛날부터 이런 음악을 향유해 왔다는 사실은 한국인들이 그만큼 '표현욕구가 강하고 표현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방증합니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한국의 음악이 저러저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사람 마음의 섬세한 변화를 표현하는데 적합하다는 것이고, 나아가 한국인들이 자신의 마음을 그토록 섬세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춤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짓을 음악에 싣는 것이 춤이니까요. 한국인 댄서들의 위엄이야 이미 잘 알려져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수들과 아이돌 그룹의 퍼포먼스가 훌륭한 것도 이유가 있는 것이죠.

탈춤을 접목한 BTS 정국의 무대

마지막으로, 공연문화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이 부분은 제 글 '한국인은 왜 떼창을 할까https://brunch.co.kr/@onestepculture/283'를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요약하자면, 연희자와 관객의 경계없이 현장에서 호흡하며 함께 공연을 만들어가는 문화라는 말씀입니다.


종합하자면, 한국 예술은 연희자(연주자, 창자, 연기자, 무용가)의 재량을 특히 강조해 왔습니다. 이러한 전통에서 때와 장소, 같이 연주하는 동료와 관객에 따라 다른 음악, 다른 춤, 다른 연기가 나오는 것이죠. 이는 동료와 관객, 감상자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새로운 문화적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는 바탕이 됩니다.


K-pop과 K-콘텐츠의 주된 특징으로 꼽히고 있는 특징들은 모두 한국의 전통문화에서 발견되는, 한국인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결국 한류의 기원이자, 한국에서 만들어진 문화콘텐츠를 시대를 초월하여 한국 문화다울 수 있게 만드는 것은 한국인들의 '마음'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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