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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Feb 17. 2019

한국인들은 왜 떼창을 할까?

떼창의 문화적 배경

어느덧 한국을 상징하는 공연문화로 굳어진 떼창. 오늘은 그 떼창에 대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사실 한국이 떼창의 원조국은 아닙니다. 락이나 메탈음악이 먼저 시작된 서구에서 먼저 시작된 문화죠. 최근 개봉한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볼 수 있는 퀸의 라이브 에이드(1985) 공연장면에서도 열정적인 떼창을 부르는 영국 관객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떼창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8년 락밴드 메탈리카의 내한 때부터였습니다. 큰 기대없이 내한한 메탈리카는 관객들의 열정적인 떼창에 감명을 받고 전통시장과 노래방 등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후 메탈리카는 당시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몇 번에 걸쳐 한국을 더 방문합니다.

메탈리카

그 중에서도 2006년 공연 때는 관객들이 노래들은 물론 간주 부분의 기타 애드립까지 떼창으로 따라하는 진기명기를 선보였고 점차 떼창은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문화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노래의 클라이막스 부분이나 공연 말미의 몇 곡 정도를 따라부르는 외국 관객들에 비해, 한국 떼창은 몇가지 특이한 점들이 있습니다.


기타나 드럼 소리를 따라하기도 하고 가수는 노래를 하지 않는 간주 중에 노래를 부르기도 하죠. 어떤 뮤지션들은 아예 한소절을 부르고 마이크를 관객에게 넘겨 돌림노래를 만들기도 합니다. 댄스 가수인 경우는 춤을 따라 추고 래퍼들의 랩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기도 합니다. 노래가 아닌 다양한 비명과 구호(예, 우윳빛깔 아무개..), 추임새(?) 등도 한국 떼창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이후, 한국을 방문하는 뮤지션들은 관객들의 열정적인 떼창에 놀라고 또 감격하면서 즐거운 무대를 만들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떼창 영상이나 뮤지션들이 떼창을 언급한 영상들은 유튜브에 많이 있으니 확인하실 수 있구요. 팬들에게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에미넴 하트 사건'도 한국 공연에서 일어난 일이죠. ㅋㅋ

당시 에미넴은 일본 오사카 공연을 마치고 한국에 왔었는데요. 일본 공연에서 일본 특유의 조용한 관람분위기 때문에 김이 팍 샜다가 그 빠르고 어려운 랩을 다 따라하며 호응해준 한국팬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띄운 것이 이 하트입니다. 이게 논란이 된 이유는 에미넴이 평소에 팬들한테 하트 날리고 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인데요.


팬들 사이에서는 저게 하트가 아니라 새로운 욕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했었죠. 그럼 우리의 떼창이 이렇게 유명하더라는 얘기는 그만하고 이제부터는 왜 떼창이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문화가 되었는지 그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떼창을 하는 건 해외 뮤지션들의 공연 때만이 아닙니다. 국내 가수들의 콘서트에서나 대학교 축제, 군대 위문공연, 길거리 버스킹 등 공연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 어디든 떼창이 함께 합니다. 심지어 탄핵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16년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도 떼창이 울려퍼졌는데요. 저도 그 자리에 있어서 잘 압니다.

(사진 출처: IEtudel님 유튜브채널)

이건 떼창이 그만큼 자연스럽게 우리 삶에 녹아들어 있다는 것으로, 다시 말해 떼창은 한국 문화의 산물이라는 얘깁니다. 떼창을 가능하게 하는 한국의 문화로는 첫째, 한국의 전통적 공연문화를 꼽을 수 있는데요. 무대와 관객이 명확히 분리된 서양이나 일본의 연극들과는 달리 한국의 전통극들은 무대와 관객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관객석 안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관객들은 그런 배우들과 말을 주고받으며 스스로 극의 일부가 되지요. 어쩔 때는 먼저 배우에게 말을 걸기도 합니다. 아직도 전통 탈춤이나 마당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장면은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의 공연문화였습니다.

불려나와 연기를 하고 있는 관객들 (출처, 낙화유수님 블로그)

판소리 같은 전문 음악인의 공연에서도 관객들은 수시로 '얼씨구', '잘한다', '그렇지', '그래서' 등의 추임새를 넣어 창자 및 연주자와 소통해왔습니다. 이렇듯 무대와 관객이 소통할 수 있다는 생각이 공연에서의 떼창을 가능케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런 생각은 궁극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된다고 추정되는데요. 요약하자면, 한국인들은 나와 타인 사이의 경계를 언제라도 서로 오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제 이전 글(가면으로 본 한국인과 일본인의 대인관계https://brunch.co.kr/@onestepculture/222)를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는 우리의 노래 부르는 방식입니다. 우리의 옛노래들은 '메기고 받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많은데요. 메기고 받는다는 것은 한 사람이 앞 구절을 부르면 여러 사람이 뒷 구절을 받아 부르는 형식을 말합니다. 그리고 선창자는 누구 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한 구절씩 돌아가면서 맡습니다. 판소리나 가곡 등 전문 창자가 부르는 노래가 아닌 민요들 중에 이런 종류들이 많지요.

논밭에서 일터에서 쉬면서 놀면서 불렀던 이런 노래들은 '노래는 같이 하는 것'이라는 인식으로 현대 한국인들에게 전해졌을 겁니다. 요즘도 노래방 가면 남 노래 부를 때 서로 같이 불러서 어느새 떼창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고, 각자 순서 지켜 노래를 부르다가도 시간이 10분쯤 남으면 함께 부를 수 있는 '말 달리자' 같은 노래들을 찾아 부르곤 하죠. 노래 좀 불러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같이 부를 때가 더 재미있습니다.


반면, 일본인들의 공연 관람문화는 우리와 정반대입니다. 유튜브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공연실황을 비교해 놓은 영상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일본 공연에서는 떼창을 거의 들을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가수가 노래할 때 박수를 치는 정도고 가수가 떼창을 유도해도(sing with me!) 호응하는 관객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일본인들이 떼창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일단 공연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 때문입니다. 일본의 전통 공연은 무대와 관객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고 배우가 관객에게 들어가거나 관객이 무대로 올라가는 일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일본은 메이와쿠, 즉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매우 강한 사회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위의 글, '가면으로 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 중에는 다른 이들이 가수의 노래를 잘 들을 수 있도록 조용히 노래를 감상하는 일본 관객이 더 성숙(?)한 거 아니냐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이런 분들은 문화와 문화적 동기를 잘못 이해하시는 겁니다. 문화적 행동은 '성숙'이라는 척도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일본인들은 공연은 '가수의 노래를 들으러 가는 것'이고, '그러려면 남들을 방해해서는 안된다'라는 동기를 가졌기 때문에 떼창을 안 하는 것이고, 한국인들은 공연은 '신나게 놀러 가는 것'이고 '그러려면 가수와 관객과 하나가 돼서 마음껏 놀아야하니까' 떼창을 부르는 것이죠.


한국문화의 입장에서만 말해 볼까요? 떼창은 단지 가수의 노래를 따라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가수와 관객, 공연과 현실,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고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불과 두어 시간의 짧은 공연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뮤지션의 숨소리 하나도 그 의미를 알 수 있고 옆에 서서 함께 노래부르는 사람의 눈빛으로 하나 될 수 있는 공간. 그 안에서 우리는 함께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고 서로 공감하고 위로받고 에너지를 얻습니다.


뮤지션들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음악을 사랑해주는 팬들과 하나되어 만들어내는 새로운 경험이 어찌 즐겁지 않겠습니까? 공연은 팬들과 소통하는 자리입니다. 음악을 제대로 들으려면 공연장을 찾을 게 아니라 집에서 헤드폰 쓰고 음반을 듣는 게 낫겠죠.


“우린 정말 한국 팬들을 좋아한다. 99년 처음 방문했을 때 관객들의 반응과 음악에 열광하는 모습에 놀랐다. 한국 팬들이 아마도 일본 관객들처럼 ‘조용하게’ 미쳐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완전히 생각과 어긋났다. 한국인들은 우리처럼 미쳐있었다. 시끄럽고 에너지가 넘치며 노래를 부르고... 야외공연을 하는 동안 너무 습해서 셔츠를 벗고 기타를 쳤다. 기타 스트랩이 살에 닿는 게 싫어서 절대 상의를 벗지 않지만 한국에선 예외였다. ”

--메탈리카의 기타리스트 커크 해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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