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성 정체감 장애
창작자를 위한 심리사전 ⑬
※흔히 다중인격장애로 알려진 장애
(1) 일반적 특징
해리장애의 가장 독특한 유형. 해리(dissociation)란 개인의 정신이 통합된 형태로 유지되지 못하고 일부가 분리되는 것을 뜻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적 충격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나타난다고 여겨진다. 아침드라마에서 남편의 바람을 목격한 사모님이 기절했다가 깨어난 뒤 자기가 본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상실증 역시 해리의 일종.
다중인격장애는 아예 다른 사람의 인격이 나타나는 경우인데 현상의 특이성과 희귀성 때문에 종종 영화의 소재가 된다.
11개의 인격을 가진 연쇄살인마를 다룬 <아이덴티티>, 23+1개의 인격이 등장하는 <23아이덴티티>, 자신의 또 다른 인격과 마주하는 <파이트 클럽> 등
행동특성
본래의 자신과 전혀 다른 자기인식, 행동패턴을 보인다. 나이, 성별, 출신지역 및 과거의 기억이 전혀 다른,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 환각과 망상 등 조현병과 구분하기 어려운 면이 있으나 다중인격장애의 해리된 인격들의 행동은 상당히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특성이 있다.
실존인물이자 영화 <23 아이덴티티>의 모티브가 된 빌리 밀리건은 고등학교 중퇴의 학력이었지만 아서(Arthur)라는 인격이 나타나면 아랍어와 아프리카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수학, 물리학, 의학을 전문가 수준의 능력을 보였으며, 레이건(Ragan)일 때는 크로아티아어를 자유자재로, 타미(Tommy)로 변신하면 전자제품을 능숙하게 다루었다고 한다.
<23 아이덴티티>의 케빈(제임스 맥어보이 분) 안에는 9살 소년 헤드윅, 우아한 여성 패트리샤, 강박적 성격의 데니스, 패션 디자이너 배니 등 서로 다른 연령대, 성별, 성격을 가진 23명의 인격이 살고 있다. 심지어 24번째도..
보통 본래 인격일 때는 해리되어 나타나는 다른 인격의 존재를, 새롭게 나타난 인격은 본래 인격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러나 주변인들의 증언이나 정황증거 등에 의해 알게 될 수 있다. 다중인격장애의 이러한 특성은 영화의 반전을 위한 장치로 사용될 수 있다.
<프라이멀 피어>의 성직자 살해 용의자 애런(에드워드 노튼)은 다중인격(로이)이 나타난 상태에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받는다. 그러나 사실 애런은 다중인격장애 환자가 아니며 무죄를 받기 위해 다중인격을 연기한 것이었다..
무의식적 행동/욕구
다중성격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적 동기의 발현이다. 주인공들은 끔찍한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잊고 싶은 누군가와의 관계 때문에, 의미없는 삶을 견디기 힘들어 새로운 세계와 거기에 걸맞는 새로운 인격을 창조한다.
<파이트 클럽>의 주인공(에드워드 노튼)은 소심한 자동차 리콜 심사관으로 이케아 가구를 모으는 것이 유일한 낙으로 지루하고 의미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비행기에서 만난 불법 비누제조업자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을 만나면서 무료했던 그의 삶은 짜릿하과 활기 넘치는 삶으로 바뀌게 되는데...
융은 사람들이 밖으로 드러내어 유지하는 이미지가 강조될수록(빛을 많이 받을수록) 그에 반대되는 그림자(shadow) 역시 커진다고 보았다. 우리는 문화적으로, 또는 양육과 학습에 의해 자신의 어떤 모습은 숨기고 어떤 모습은 드러내며 살아갈 것을 요구받는다. 그 괴리가 개인의 정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게 되면 해리가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빛과 그림자의 갈등은 고전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나 마블 히어로 ‘헐크’ 등 서구권 해리물(?)의 주요 주제다.
(2) 왜 다중성격이 되는가
부모의 끔찍한 학대나 도저히 통합된 자아를 유지할 수 없는 외상적 사건들이 원인이 된다. 빌리 밀리건은 9살 무렵부터 양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으며, <아이덴티티>의 연쇄 살인마 말콤은 창녀인 어머니가 모텔을 전전하며 일을 하는 동안 밖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핵심.원인
통합된 자아를 유지할 수 없게 만드는 외상적 경험들. 대개 확고한 자아가 형성되기 이전 시기(영유아기), 주로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일들이 많다.
병리
다중인격 자체가 병리다. 심리학과 정신의학은 일관되고 통합된 자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정신건강의 척도로 본다. 자아가 분열되었다는 것은 개인이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한편, 해리장애로 분류되고 있는 다중인격은 과거에는 ‘귀신들림’, ‘빙의’로 이해된 측면이 있다. 갑자기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이들에 대한 과거의 설명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귀신이나 영혼 등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논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현대의학은 개인의 정신이 ‘분리되어’ 다중인격이 나타난다고 하지만, 전혀 가본 적 없는 나라의 말을 자유롭게 구사하거나 해본 적 없는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등 다중인격에는 본래 인격의 경험에서 유추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
범죄
자신도 모르는 인격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다. 다중인격의 원인으로 꼽히는 주인공의 불행한 과거 때문에 다중인격 중 일부는 과격하고 불법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좌절된 욕구를 해소하려는 경향이 있다.
범죄자의 일관된 범죄의도를 중시하는 법체계 상(?) 다중인격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는 처벌받지 않기 때문에 다중인격 범죄 영화(드라마)는 범죄행위의 판단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프라이멀 피어>처럼 이를 악용해서 무죄 혹은 감형을 받으려는 시도 또한 소재가 될 수 있다.
3)설정하기
(1)부모와의 관계/양육/외상
부모와의 관계 면에서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자 그대로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해 인류애를 상실할 정도의 ‘끔찍한 학대’. 앞서 살펴본 성격장애들에서도 부모의 학대가 영향을 미치지만 이 경우는 부모가 사이코패스 수준으로 도를 넘어야 한다.
빌리 밀리건의 24개 인격아이들의 자아는 보통 2~3세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청소년기에 발달이 마무리되는데 이 시기 아이들과 핵심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이들이 부모다. 부모가 적절한 모델이 되어주지 못하거나 안정적인 자기상을 발달시킬 피드백을 제공하지 못하면 아이들은 부적응적 성격(성격장애)이 되거나 분열된 자아(조현병), 또는 심리적 위기에서 분열하는 자아(다중인격)을 갖게 된다.
(2)취약상황, 갈등요인
애초에 다중인격을 만들 정도로 회피하고자 했던 심리적 위기 또는 그와 비슷한 상황에서 다중인격이 촉발될 수 있다.
다중인격의 수가 많을 때는 다중인격들 간에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문제해결 또는 치료를 위해 다중인격들 사이의 갈등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 <아이덴티티>의 등장인물들<아이덴티티>에서 심리학자는 연쇄살인마 말콤의 다중인격을 치료하기 위해 형사 인격 (에드)를 이용해 다른 인격들을 제거한다. 에드는 결국 최악의 적 범죄자 인격(로즈)을 죽이고 자신도 숨을 거둔다. 마지막까지 남은 인격인 창녀(패리스)는 고향으로 돌아가 오렌지 농장을 꾸리려는데.. 죽지 않았던 진짜 범죄자 인격(티모시)이 나타나 패리스마저 죽이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