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란은 악(惡)의 경전인가?
많은 영화에서 테러리스트들은 항상 아랍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누추한 옷차림에 광기어린 눈빛으로 ‘착한사람들’을 위기로 몰아넣습니다. 그러나 항상 특정 국가의 위대한 영웅이 나타나 단숨에 테러리스트들을 쳐부수고 그 시체들 앞에서 웃음짓죠. 마지막 순간에 테러리스트들은 코란 구절을 암송하며 숨을 거둡니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시다)’
이슬람 교도들은 모두 테러리스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 이슬람 인구는 16억 명에 달합니다. 그 모두가 피에 굶주린 범죄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독한 오류죠. 이슬람 교도 중 테러를 저지르고 무고한 시민들을 공격하는 부류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도 서구 제국과의 복잡한 역사적 관계 때문이죠.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습니다. 아랍권 국가들과 이슬람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테러리스트’, ‘석유’, ‘사막’, 정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뉴스를 보며 무의식적으로 내리는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평가는 과연 정당할까요.
우리에게 익숙한 영어와는 달리 이슬람 문화권은 언어조차 생경하여, 이슬람(Islam)은 테러리스트들의 종교, 무슬림(Muslim)은 테러리스트 그 자체, 알라(Allah)는 테러리스트들이 믿는 전쟁의 신 쯤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단어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슬람’, ‘신자들-무슬림’, 그리고 ‘하나님-알라’와 같은 뜻의 단어입니다. 우리말 ‘사랑’을 중국에서는 ‘愛’라 하고 영어권 국가에서는 ‘Love'라 하는 것과 같은 방식인 것이죠.
코란(꾸란)은 이슬람의 경전으로 기독교(카톨릭+개신교)의 성경과 같은 지위를 갖습니다. 이슬람과 코란에 대한 오해를 가장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표현은 아마도 “코란이냐 칼이냐”는 문장일 것입니다. 이 말은 이슬람교도들이 주변국을 점령하면서 폭력적으로 그들의 종교를 강요했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나아가 지금 중동의 불안한 상황과 연관지어 이슬람은 폭력적인 종교이고 코란은 그것을 조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슬람 제국은 점령지에 대해서 다른 어떤 제국들보다도 관대한 정책을 펼쳤으며 절대 자신들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점령지의 시민들은 세금부담을 덜기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후대에는 이 때문에 세금수입이 줄어들어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금지하는 조치마저 나타나기도 했었습니다.
이슬람 제국이 종교상의 이유로 전쟁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의 ‘피의 역사’는 기독교 문화권의 역사와 성경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교회 갈 때나 들고 다니는 소품으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벌(?)이 얼마나 많은 선주민의 피를 흘리게 했는가 정도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쉬운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우상숭배자들을 몰아낸 사건)
코란에는 아담과 이브가 나오고, 노아와 아브라함이 등장하며, 야곱, 요셉, 모세의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다윗왕과 솔로몬, 욥과 요나, 심지어 마리아와 예수도 나타납니다. 노아와 아브라함, 야곱, 모세, 예수가 부른 ‘하나님’은 ‘알라’입니다. 과연 이슬람과 기독교는 ‘다른’ 종교일까요?
종교적 관점에서 이슬람과 기독교의 가장 큰 차이는 예수를 구세주(Christ)로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입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종교가 기독교이고, 이슬람은 예수를 하나님의 선지자들 가운데 하나로 보지만 구세주로 인정하지는 않죠.
그 외에도 이슬람은 ‘원죄설’과 ‘삼위일체설’ 등을 부정하고 있고 인간은 ‘믿음’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선의 실천’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등 기독교와 비교했을 때 분명 교리상의 차이점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서구세계와 이슬람권의 대립이 단지 이러한 교리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두 ‘문명’이 최초로 충돌한 사건은 중세의 십자군 전쟁입니다.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이 이슬람 제국으로 쳐들어간 이 전쟁의 가장 큰 명분은 ‘이교도들이 점령하고 있는 성지 예루살렘의 회복’이었죠. ‘이교도’란 하나님 즉 GOD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무슬림들은 진정한 의미의 이교도였을까요?
1096년 1차 십자군 전쟁을 시작으로 13세기까지 계속된 십자군 전쟁으로 중동의 화려했던 문명은 파괴되었고 십자군의 중간 기착지였던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의 꽃을 피웠으며 세계사의 중심은 유럽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결국 문명의 충돌을 야기한 것은 어느 한 쪽의 무지와 거기서 비롯된 일방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전쟁과 파괴, 살육과 핍박도 근본적으로 같은 원인에 기인합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6차에 이르는 중동전쟁과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분쟁,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이슬람의 공격성 때문일까요.
많은 이들이 이슬람 교도들의 배타적인 태도를 우려합니다. 다른 문화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신과 문화만을 유지하려는 이슬람인들이 결국 세계의 평화에 위협이 될 거라는 거죠. 물론 이슬람의 신앙에는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배타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배타적 태도는 유일신 계열 종교의 본질적인 특성에 기인합니다. 자신들의 신만이 유일한 신이기 때문에 그 신이 아닌 신들과, 신의 가르침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태도가 나타나는 것이죠. 그리고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 하면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배타성이 훨씬 더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는 종교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교조적이고 독단적인,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는 종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빠른 속도로 다문화 사회가 되어 가는 한국, 더구나 적지 않은 이주민들이 이슬람 문화권에서 유입되는 현실에서 이슬람에 대한 바른 이해는 더이상 미룰 일이 아닙니다. 일부의 극단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그들도 우리와 공존해야 할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하루 빨리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몇 가지 교리상의 차이점과 의식절차 및 외관상의 특색들을 접어 둔다면, 이슬람교도(무슬림)들이 “라 일라하 일랄랄(La illaha illallah: 하나님(알라) 외에는 다른 신이 없도다)”, “알라후 아크바르(Allahu akbar: 하나님(알라)께서는 가장 위대하시도다)” 등을 말할 때,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든지 ‘아멘’이라고 화답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코란, 저자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