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솜씨가 유난히 좋은 시어머니께서는 신혼 초부터 며느리인 내게 먹고 싶은 음식을 자주 물어보셨다. 시어머니의 사랑이었겠지만, 며느리로서는 시어머니께 뭔가를 만들어 달라고 입을 떼기가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임신을 한 후에는 정말 다양한 음식에 군침이 돌았고, 배가 불러오면서 어쩐지 시어머니께 부탁드려도 될 것 같은 괜히 당당한 마음도 생겨났다.
“어머님, 저 실은 탕국이 먹고 싶어요!”
“뭐라고? 탕국이 뭐라냐?”
“소고기랑 무, 두부 큰 덩어리로 넣고 팍팍 끓여서 먹는 국이요!”
“난 또 뭐라고. 알겠다, 내가 만들어 줄게!”
탕국은 제사에 올리는 국으로 큼직한 쇠고기 양지머리에 두부, 무를 큼직하게 썰고, 다시마나 간장, 소금 정도로만 간을 한 슴슴한 국물이다. 자극적이지 않고 달짝지근하면서도 시원한 투명한 국물이 특징이다. 경상도 출신인 우리 가족은 연중 제사가 많았던 이유로 소고기와 무로 만든 탕국을 자주 먹었다.
결혼하고 나니 양쪽 집안의 많은 부분이 달랐지만 특히 음식 문화가 확연히 차이가 났다. 하다못해 고기를 먹어도 친정은 생고기를 굽는 형태로 고기 본연의 맛을 즐기는 반면 시댁은 양념고기를 선호하는 식이었다. 남편 집안은 독실한 기독교라 제사가 없었고, 어머님께서는 양념을 듬뿍 사용하는 스타일이셨다.
따라서 결혼 이후에는 탕국 혹은 탕국 비슷한 음식도 먹을 일이 없었다. 임신한 이후, 별 맛이 없는 제사 음식이 그리울 줄은 미처 몰랐는데 갑자기 탕국이 불쑥 떠오른 것이다. 말씀드리고 나니 탕국이야말로 굉장히 오래전부터 먹고 싶고 그리운 음식이었던 기분이었다.
시어머니께서는 다음날 당장 탕국을 끓였으니 먹으러 오라고 전화를 하셨다. 괴로운 입덧이 끝나고 한창 입맛이 샘솟던 나는 즐겁고 고마운 마음에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칼퇴를 하고 시댁으로 달려갔다.
“국 끓여놨다. 뜨거울 때 많이 먹어라.”
“와~~ 어머님! 감사합니다!!”
김이 펄펄 나는 탕국 냄비뚜껑을 열어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앗, 어머님, 이게 뭐예요?? 이거 탕국이 아닌데요?”
“왜? 쇠고기에 무, 두부 넣고 팍팍 끓였다?!”
냄비 속 국은 말간 국물이 아니고 빨간색이었다. 쇠고기에 무, 두부 넣고 팍팍 끓였을 뿐만 아니라, 어머님은 특유의 양념 맛을 가미해서 고춧가루, 마늘, 버섯, 양파, 파 등을 풍부하게 추가하신 것이다. 빨간 국물에 수북한 각종 건더기들, 빨간 기름이 둥둥 떠 있는 것이 탕국이 아니라 거의 육개장에 가까운 비주얼이었다. 게다가 쇠고기와 두부는 커다란 조각이 아니고 먹기 좋게 가느다랗고 작게 손질된 조각들이었다.
“어머니~~! 탕국은 고춧가루나 마늘 양념이 안 들어가고, 커다란 쇠고기 덩어리에 두부랑 무만 큼직하게 들어가는데요. 간장 정도만 넣고요.”
“뭐라고, 아무 맛도 없이 밍밍해서 어떻게 먹냐? 그거보다 이 국이 훨씬 맛있다!!”
네. 그럴 수도 있지만 제가 먹고 싶은 건 바로 그 밍밍하고 맛없는 탕국인걸요, 흑흑. 손맛에 일가견이 있는 시어머니께서는 임신한 며느리를 위해 양념을 듬뿍 해서 쇠고기 뭇국을 끓여주신 거다. 설마 싱거운 국에 입맛이 당기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시고.
어찌하여 간 퇴근 하여 배가 고프고 입맛이 좋았던 며느리는 탕국이 아닌 빨간 쇠고기뭇국을 그 자리에서 한 그릇 뚝딱 해치웠고, 어머님은 임신한 며느리가 잘 먹는 모습에 매우 흐뭇해하셨다. 빨간 쇠고기뭇국은 매우 맛있었다. 하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와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친정에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요즘 탕국이 너무 먹고 싶어!”
“아이고, 탕국은 내가 전문이지. 내일 끓여서 갖다 줄게.”
솔직히 탕국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지 만들기 어려운 음식이 아니라서 전문이고 말고 할 게 없다. 하지만 몇백 번의 제사를 맞이해 본 친정엄마야말로 탕국 전문가임을 부인할 수 없겠다. 다음날 나는 탕국 전문가가 자체 레시피로 손수 끓여서 직접 가져다 주신 탕국을 먹었는데, 그때처럼 맛있게 먹은 음식이 아직까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날 이후 탕국은 나의 ‘소울 푸드’가 되었다. 지금도 친정에 가는 날이면 엄마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탕국을 끓여놓고 나를 맞이하신다. 어떨 때는 한여름에 탕국을 끓였다가 쉬어버려서 제대로 먹지 못한 때도 있다. 내 몸이 아프거나 힘들 때 엄마에게 끓여 달라고 투정 부리는 음식도 물론 탕국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결혼한 지 아주 오래된 지금에는 아무리 탕국이라도 두어 번 먹고 나면 질린다는 점이다. 그러면 바로 탕국에 고춧가루, 마늘, 버섯, 양파, 파 등을 넣고 끓여 빨간 쇠고기뭇국으로 변신시켜서 먹곤 한다. 바로 임신한 내게 시어머니가 끓여 주셨던 국처럼. 세월이 흘러 내 입맛도 시댁에 많이 맞춰진 것이겠지. 내게 탕국이라는 건, 이처럼 친정엄마와 시어머님의 각기 다른 나에 대한 사랑의 표현 방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