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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햇살 Jul 19. 2023

우리집 생일 리츄얼

  우리집은 기념일 챙기기에 있어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가족의 생일상을 당일 저녁이 아닌 아침에 챙기는것. 맞벌이 부부가 퇴근하고 만나려면 시간이 너무 늦어지다 보니, 맘 편하게 아침 시간에 생일상을 차리고 축하 이벤트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자라나고 각자의 아침 시간이 더욱 바빠지면서 아예 그 전날 밤 열두시에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익을 자르는 것으로 당겨졌다. 생일 당일 아침에는 생일축하 인사만 나누고 각자 일터로, 학교로 간다. 이벤트는 미리 했어도, 생일 당사자는 생일날 아침에 꼭 미역국을 먹는다.






  남편의 생일 전날. 남편이 미역국을 미리 시댁에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행동이 빠르신 시어머니께서 먼저 미역국을 끓여서 우리집에 갖고오실까봐 그런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생일 당사자가 자기 미역국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건 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퇴근 후 집안을 정리하고 미역국을 끓여 시댁에 한 냄비 들고 갔다. 하필 비가 쏟아지는 날씨였는데, 남편은 출장을 가서 기차 연착으로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난 살림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미역국 하나만은 맛있게 끓인다고 자부한다. 그러다보니 국을 끓일 일이 있으면 미역국을 하게 되고, 시부모님께도 기꺼이 갖다드리게 되며 칭찬받을 기대감도 살짝 품게 된다. 미역국을 들고 시댁에 도착해보니 불이 다 꺼져있고 두분 다 이미 잠자리에 드셨는데, 며느리의 급작스런 등장으로 황급히 일어나셨다. 그런데 국을 내려놓고 보니 식탁과 바닥에 국물이 흘러 있다. 국 그릇에 국물이 넘쳐서 새었는데 그게 밖으로 흐른 거다. 욕심내서 많이 담았는데 들고오는길에 수평이 유지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시부모님과 셋이서 국을 다른 그릇으로 옮긴다, 바닥을 훔친다, 갑자기 허둥지둥 바빴다. 잘하는거 하나 만들어서 의기양양 밤중에 들고갔는데 모양새가 빠져버렸다. 그리고 애써서 끓여낸 국물인데 약간이라도 버리게 되는것도 아까웠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어머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미역국이 너무 맛있다, 그 뜨거운 걸 들고오느라 데지는 않았냐, 아까는 미처 물어보지도 못했다고 하신다. 아이고 데기는요. 꽁꽁 싸매고 들고갔는데도 쏟아졌네요, 밤중에 주무시는데 들이닥쳐서 죄송해요, 여름이지만 비가 많이 오는데 내일 따뜻하게 국 데워드셔요, 라고 말씀드렸다. 사실 밤중에 국을 들고 나설때는 약간 귀찮은 생각도 없지 않았는데, 전화 한통에 마음이 사르르 녹었다. 어머님은 항상 생각지 못하게 챙겨주신다.

 밤 열두시에 남편의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고 케익을 잘라 먹고, 다음날 아침에는 미리 끓여둔 미역국을 먹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에 남편과 어머님을 비롯한 우리 가족들이 내가 만든 미역국을 먹고 속을 든든히 할 것을 생각하니 내가 무슨 장한 일이라도 한 기분이었다. 평소 아침을 잘 먹지 않지만 나도 따뜻한 미역국을 한그릇 챙겨서 남편과 서둘러 먹었다. 어제의 폭우로 인해 아침 출근길은 유난히 날씨가 개어 있다.




이미지 출처. 티스토리 '요리날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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