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눈으로 보지 않는다

15분

by NT


2017년 12월 어느 아침.

샤워를 마치고 욕실을 나왔다.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켰다.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35,000,000원.


1년을 야근해야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이, 샴푸 거품을 헹구는 15분 사이에 두 배로 불어 있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소리 질렀어?"


기억 속 그 순간은 환희가 아니었다. 기괴한 얼얼함에 가까웠다. 등골이 서늘했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도 되는 건가?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뚝'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30년 넘게 지탱해온 인과율—"돈은 시간과 땀의 대가"—이 산산조각 났다.




며칠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흥분해서가 아니었다. 세상이 낯설었다. 몸은 침대에 있는데, 뇌는 현실과의 연결 끈을 놓친 채 허공을 맴돌았다.


오랫동안 이 현상을 설명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능동적 추론 이론'이라는 개념을 만났을 때, 비로소 무릎을 쳤다.


핵심은 간단하다.


뇌는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예측'한다.


뇌는 두개골이라는 칠흑 속에 갇혀 있다. 바깥세상을 직접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감각기관이 보내는 전기 신호만이 유일한 통로다. 그래서 뇌는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0.1초 앞서 추측한다. "지금 밖은 이럴 것이다."


뇌는 카메라가 아니라 예측 기계다.

그리고 뇌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예측과 현실 사이의 오차를 줄이는 것이다.


나에게는 강력한 예측 모델이 깔려 있었다.

돈 = 고통 + 시간.


30년 넘게 강화된 삶의 운영체제였다. 그런데 그날 아침, 전혀 다른 데이터가 입력됐다.

돈 = 클릭 + 15분


뇌에 엄청난 오류가 발생했다. 해결 방법은 둘 중 하나다. 현실을 부정하거나, 믿음을 바꾸거나.

통장의 숫자는 부정할 수 없었다.


결국 뇌는 기존 모델을 폐기했다. 그리고 새로운 가설을 채택했다.


성실함은 치워라. 이 세상은 15분 만에 인생 역전이 가능한 곳이다.


이걸 증명하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캘리포니아 공대 연구진은 피험자들에게 똑같은 와인 두 잔을 줬다. 한 잔은 5달러, 다른 한 잔은 90달러라고 말하면서.


피험자들은 90달러 와인에 "향이 풍부하다"며 극찬했다. 실제로 뇌의 쾌락 중추가 더 강하게 활성화됐다.

그들은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다. 뇌가 혀보다 "비싸니까 맛있을 거야"라는 예측을 더 신뢰했고, 실제로 감각을 바꿔버린 것이다.


뇌는 종종 팩트보다 믿음을 더 신뢰한다.




나는 그때, 뇌가 만든 환상에 갇혔었다.

15분 만에 번 돈이라는 강렬한 쾌락 앞에서, 무의식은 회사 업무를 가성비 떨어지는 행동으로 분류해버렸다.


이후의 삶은 엉망이 됐다. 회사 모니터를 보면 견딜 수가 없었다. 몸은 의자에 앉아 있는데, 뇌는 이미 다른 세계의 속도를 기억하고 있었다. 친구들과의 대화도, 적금 통장도 빛을 잃었다.


뇌가 '가치'를 계산하는 기준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져 버렸기 때문이다.

15분이면 벌 돈을, 왜 1년을 일해야 하지?

이 질문 하나로 모든 일상이 시시해졌다.


돌이켜보면, 내가 무너지기 시작한 건 샴푸 향기 가득하던 그 욕실에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내 뇌 어딘가에 '돈 복사기'라는 모델이 설치됐다.


그게 얼마나 끈질기게 나를 괴롭힐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참고: 칼 프리스턴, 능동적 추론 이론(2010) / 캘리포니아 공대 와인 실험(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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