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차고 다니던 스마트 워치 액정이 깨진 걸 오늘 아침에야 발견했다. 언제부터 이랬던 걸까. 하긴,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이 액정을 제대로 들여다봤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활동량, 소모 칼로리, 수면 시간… 한때였지만 내 성실함을 증명해 줬던 그 숫자들이 어느 순간부터 나를 평가하고 다그치는 잔소리꾼처럼 느껴졌다. ‘목표 미달’, ‘수면 부족’. 이런 빨간펜 첨삭 같은 결과를 매일 확인하느니 차라리 외면하는 쪽이 속 편했다. 언젠가부터 매일 내 손목 위에 꼬박꼬박 붙어 있긴 했어도 그냥 스마트 워치 모양을 한 팔찌와 다름없었다.
‘액정까지 깨졌으니 이제 정말 놓아줄 때가 되었나.’
정신적으로 이미 유령 취급한 지 오래고 이젠 물리적으로까지 파손되었으니 말이다. 버리려고 손목에서 풀려다 문득 궁금해졌다. ‘작동은 하려나? 마지막 가는 길에 내 형편없는 성적표나 한번 볼까?’ 물론 기대감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지난 몇 달간 내 무기력한 생활 패턴을 증명하는 처참한 숫자들만 남아있을 게 뻔했다. ‘일일 활동 시간: 소파에서 TV 보기 8시간’ 같은 기록이 저장되어 있다면 모를까. 그래, 마지막으로 내 불성실함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를 마주하고 미련 없이 보내주자.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금이 간 액정 너머로 희미하게 불빛과 함께 숫자들이 보였고 내 예상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물론 ‘이 주의 운동왕!’ 같은 찬란한 배지는 없었다. 다만 내가 ‘오늘은 정말 소파 붙박이였다’고 자책했던 날에도 최소한의 생활 활동으로 기록된 걸음 수와 칼로리 소모량은 꼬박꼬박 찍혀 있었다. ‘어젯밤은 정말 망했다’고 생각했던 날의 수면 기록도 의외로 ‘보통’ 수준은 되었다. 심지어 액정이 깨진 이후로 보이는 날짜에도 이 녀석은 묵묵히 내 심박수를 재며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 나… 그래도 꽤 잘 살았네?’
균열이 생긴 화면 너머 희미하게 깜빡이는 그 꾸준한 기록들. ‘이 정도는 한 것도 아니지’ 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렸던 그 시간들을 이 깨진 시계는 ‘어쨌든 당신은 존재했고 움직였다’며 담담하게 기록으로 남겨주었다. 벅찬 감동 같은 건 아니었지만 뭐랄까, 뒤통수를 살짝 맞은 듯한 머쓱함이 들었다.
결국 나는 그 시계를 버리지 못했다. 그날 액정 너머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숫자들은 어쩐지 큰 위로가 되어서. 마치 암막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한 줄기 햇살처럼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했던 내 시간들 속에도 나름의 생명력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말해주는 듯싶어서.
'그 정도면 아주 망가진 시간은 아니야.'
늘 함께했지만 제대로 봐주지 못했던, 녀석이 건네는 따뜻한 격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