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커 루이스가 묻는다, "누가 진짜 사기꾼인가?"
점심시간, 종이컵에 담긴 믹스커피를 휘젓던 박 부장이 툭 던진다.
비트코인 이야기다.
걱정하는 척하지만 목소리엔 '내 말이 맞지?' 하는 확신이 묻어있다.
"나중에 들어오는 사람 돈으로 먼저 들어온 사람 배 불려주는 거잖아. 딱 다단계지 뭐."
나는 그저 웃으며 쓴 커피를 삼켰다.
직장 생활 13년 차. 밥 먹고 체하기 싫으면 상사와의 논쟁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무엇보다 그 마음, 내가 제일 잘 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나도 똑같이 떠들고 다녔으니까.
"저게 뭐야. 한번 고점에 물려봐, 그대로 주저앉을 걸?"
파커 루이스(Parker Lewis)는 칼럼 <비트코인은 다단계 사기가 아니다>를 통해, 이런 내 생각에 의문을 품게했다.
다단계, 피라미드 사기. 말은 쉽지만 정확히 따져보자. 파커 루이스는 이게 성립하려면 딱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물건 파는 회사가 있을 것. 둘째, 수요도 없는 물건을 밀어내는 악성 재고가 있을 것. 셋째, 물건 파는 것보다 사람 데려오는 게 더 돈이 되는 강요된 인센티브가 있을 것.
나도 비트코인이 그런 건 줄 알았다. 근데 자세히 보니 좀 이상하다. 이론이고 뭐고, 직감적으로 뭔가 비어 있다.
비트코인 주식회사가 있나? 없다. CEO도, 홍보팀도 없다. 비트코인 사라고 등 떠미는 사람 있나? 없다. 내가 산다고 사토시 나카모토 통장에 수수료 꽂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이걸 다단계라 느끼는 건, 가격이 오르려면 너도나도 사야 한다는 구조 때문이다. 근데 뒤집어 생각해 보자. 세상 모든 혁신이 그랬다. 1996년 델 컴퓨터, 2007년 아이폰. 우린 친구들한테 "야, 이거 써봐"라고 권했다. 쓰는 사람이 늘수록 생태계는 커졌고 가치는 올랐다. 우린 그걸 다단계라 부르지 않는다.
비트코인엔 주인이 없다. 중앙 통제도 없다. 전 세계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역사상 가장 투명한 장부 쪼가리 하나가 있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오랫동안 비트코인이 불편했다. 하루에 수십 퍼센트씩 널뛰는 차트를 보면 멀미가 났다. 저건 도박판이지 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근데 파커 루이스는 내 머리통을 잡고 비트코인이 아니라 우리가 쓰는 돈, 법정화폐를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기가 막힌 비유를 던진다.
"현대 화폐 시스템은 물침대 위에서 하는 축구 경기다."
축구에서 제일 중요한 건 골대가 박혀있는 거다. 경제에서 골대는 가격이다. 가격은 가치를 보여주는 신호니까. 근데 중앙은행은 경기 안 풀린다 싶으면 돈을 찍어서 물침대 한쪽을 꾹 누른다. 돈이 풀리면 물침대가 출렁이고, 골대 위치가 바뀐다.
어제 5억 하던 아파트가 오늘 10억이 된다. 집 가치가 두 배 된 건가? 아니다. 물침대가 출렁여서 돈 가치가 반토막 난 거다. 우린 골대가 도망가는 줄도 모르고, 내가 골을 못 넣는다고, 노오력이 부족하다고 자책하며 더 미친 듯이 뛴다.
우린 이 물침대 위에서 안 넘어지려고 안간힘을 쓴다. 더 일하고, 더 아끼는데 삶은 팍팍하다. 물침대가 쉴 새 없이 출렁이며 내 자산 가치를 어디론가 흘려보내니까. 퇴근길마다 느꼈던 그 원인 모를 피로감의 정체가 이거였다.
물침대 위에서 헛발질하던 나에게, 파커 루이스는 뼈 때리는 질문을 던진다.
다단계에서 누가 사기꾼인가? 시스템을 만든 놈, 가치 없는 물건 떠넘기는 판매자가 사기꾼이다. 근데 비트코인 판에선 이게 묘하게 뒤집힌다.
"비트코인에서는 사는 사람이 사기꾼이다."
처음엔 뭔 소린가 싶었다. 근데 곱씹을수록 입맛이 쓰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매년 가치가 녹아내리는(인플레이션), 중앙은행이 클릭 한 번으로 찍어내는 종이돈을 남한테 건네준다. 그리고 그 대가로 절대 양이 늘어나지 않는 디지털 자산을 받아 챙긴다.
나는 구멍 난 튜브를 주고, 황금을 받아오고 있다. 정보의 격차를 이용해서 더 좋은 자산을 선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트코인 매수자는 지능적 사기꾼인 셈이다.
물론 농담이다. 하지만 이 역설적인 문장이 나를 하나의 숫자로 데려갔다. 아주 단순해서 더 기이한 숫자였다.
비트코인 총발행량은 여기에 못 박혀 있다. 신이 와도 이 숫자는 못 늘린다.
다시 점심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솔직히 말해봐. 그거 폭탄 돌리기 아니야?"
부장님 질문에 나는 그냥 빙긋 웃었다. 논쟁하기 귀찮아서가 아니다. 사실 나도 여전히 겁이 나기 때문이다. 내 선택이 틀릴 수도 있다. 비트코인이 망할 수도 있다.
하나는 확실하다. 나는 평온을 원한다. 내가 13년 동안 책상 지키며 흘린 땀방울이 누군가의 클릭 한 번으로 희석되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 내가 아껴 쓴 시간이 10년 뒤에도 온전히 나를 위해 쓰이길 원한다.
세상 모든 게 변하고 출렁거리는데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2,100만 개의 수학적 약속.
그 위에서 나는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나는 지금 이 선택이 맞다고 믿는다. 다만, 몇 년 뒤의 내가 현명한 투자자로 기억될지 아니면 무모한 사기꾼으로 남을지는 이 출렁이는 물침대 위의 세계가 증명해 줄 문제일 것이다.
나는 답을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그저 지금은 흔들리는 바닥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를 뿐이다.
[작가 노트] 이 글은 Parker Lewis의 칼럼 'Bitcoin is Not a Pyramid Scheme'을 직장인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그는 비트코인을 단순한 투자 상품이 아닌, 왜곡된 경제 신호를 바로잡는 '진실의 도구'로 정의합니다.
출처: https://www.unchained.com/blog/bitcoin-is-not-a-pyramid-scheme